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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2020년,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7년 정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녹음 봉사를 했다(녹음실이 폐쇄된 건 2020년 8월이고 23년 6월에 다시 녹음실이 개방되었다). 그때 봉사를 하며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시각 장애인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었다. 10대, 20대, 30대 그 어느 시기에도 시각장애인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학교에서도, 식당에서도, 거리에서도, 심지어 TV에서도 그들을 본 기억이 없었다.

녹음 봉사를 하기 전까지는 거리에 시각장애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보이지 않으므로 없는 줄만 알았다. 녹음 봉사를 시작하고서야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와 도서관, 미술관, 국악단, 카페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덕을 쌓는 마음으로 시작한 봉사
 
도서 녹음실 녹음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 시각장애인복지관 녹음실을 찾았다.
도서 녹음실녹음을 위해 일주일에 하루 시각장애인복지관 녹음실을 찾았다. ⓒ 전영선
 
녹음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아주 이기적이었다. 큰아이 고2 시절이었다. 급식모니터로 함께 활동한 엄마가 모니터 활동 후 티타임에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발음이 굉장히 정확하세요. 혹시 아이들 가르치세요?"

나는 그녀의 질문에 웃으며 막내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막내가 초등학생이라는 말에 잠시 놀란 표정이던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권하고 싶어 졌다며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를 녹음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것, 그 일은 발음이 정확한 사람이 할 만한 일이라는 것, 낭독 테스트를 거쳐 통과가 되면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을 받은 후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녹음할 자료는 책이나 신문, 잡지, 교과서 등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주어지는 대가는 없지만 대신 봉사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듣는 내내 호기심이 동했다. 하지만 잡다한 집안일과 아이들 학교 봉사활동, 격월로 돌아오는 제사 등 자잘한 대소사가 마음에 걸려 선뜻 나서지 못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녹음 봉사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큰아이가 고3이 되면서였다. 그러니까 순전히 큰아이의 대입에 '운'이라는 녀석을 조금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녹음 봉사를 떠올린 것이다. 행운을 맨입으로 바라기는 그렇고, 종교가 없으니 대신 덕이라도 쌓아야 할 것 같았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뉴스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유난스럽다 흉을 봤었다. 공부는 본인이 하는 것이지 기도로 되는 것이면 얼마나 불공평하고 염치없는 일이냐... 그런데 부모가 되어 보니 '공'을 들이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게 부모의 정상적인 모습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녹음 봉사. 큰아이가 수능 보는 날,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녹음실로 곧장 향했다. 한석봉 어머니도 아니면서 '그래, 너는 열심히 시험을 보거라. 나는 열심히 녹음을 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선물 받은 새로운 세상

큰아이가 고3이었을 당시 1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꼬박 녹음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바탕에는 분명 이기심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이기심은 마중물에 불과했다. 큰아이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녹음 활동을 놓지 않았던 이유에는 책이 한 권 끝날 때마다 시각장애인이 읽을 책이 한 권 더 세상에 나왔다는 뿌듯함과 시각장애인의 세상이 확장된다는 만족감이 크게 작용했다.

보건복지부 KOSIS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인의 수는 2023년 기준 26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이 중 지체장애인은 110만여 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청각장애인이 45만여 명, 그다음으로 시각장애인이 24만여 명으로 뒤를 잇는다.  
 
전국 장애유형별, 성별 등록장애인수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년 기준 장애인 등록 현황
전국 장애유형별, 성별 등록장애인수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3년 기준 장애인 등록 현황 ⓒ 전영선
 
24만이라는 숫자는 군산시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상당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여전히 거리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볼 수 없는 걸까. 그들이 거리로 나서기에는 우리나라의 거리가 아직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밴쿠버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나라에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던 것은 풍경도 시설도 아니었다. 친절하고 느긋하게 인사를 건네는 버스기사, 자전거와 유모차를 끌고도 아무 불편함 없이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전동 휠체어를 탄 채 개를 산책시키거나 흰 지팡이 하나만으로도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는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퍽 인상적이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단박에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블록을 따라 불편함 없이 거리를 거닐고, 편의점에 들어가 상품을 점자로 읽어내 스스럼없이 구매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녹음 봉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런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녹음 봉사는 새로운 인식의 눈을 뜨게 해 준 고마운 경험이었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받고 있었다"라는 말. 예전에는 그 말을 예의상 그저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봉사를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코로나를 앓고 난 이후 목 상태가 좋지 않고 식도염이 생겨 녹음 봉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기심으로라도 많은 이들이 녹음 봉사라는 세계에 발을 들였으면 좋겠다. 그 발길이 새로운 세상을 선물할 테니 말이다.

녹음 봉사를 할 수 있는 곳 : 강서점자도서관(서울),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서울),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서울), 세종점자도서관(세종), 송암점자도서관(인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서울), 하상장애인복지관(서울),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서울), 해밀도서관(부천). 

#전국장애인등록현황#시각장애인복지관#녹음봉사#녹음봉사할수있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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