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 가족을 만났다. 엄마와 아이 둘이다. 둘 중 어린아이가 유모차에 앉았고 그보다 큰 아이가 유모차를 잡고 엄마를 따르고 있었다. 외출의 시작과 마무리를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 나갈 때와 달리 들어올 때 큰 아이는 화가 나 있었다. 엄마를 외면하며 거부하는 몸짓이었다. 이때 엄마의 단호한 말이 낮고 묵직하게 들렸다.
"그만해!"
신기하게도 4살도 안돼 보이는 그 아이는 자세를 고치고는 바로 엄마를 따랐다. 표정은 금방 울 듯했지만 칭얼거리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아이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고 싶었지만 이내 아이 엄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하고 힘겨운 외출이었던 것 같았다. 아이 엄마의 그런 모습이 아니었어도 내게 그런 오지라퍼의 자질은 없었다.
오래전 아이 둘을 데리고 멀리 외출했던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아이는 포대기로 업고 힘들다고 낮게 투정 부리는 큰 아이를 달래 가며 먼 길을 오갔던 기억이었다. 택시를 불러 집 앞에서 출발해서 목적지까지 가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등에 업힌 아이와 엄마의 보폭을 따라 걸어야 했던 아이, 그리고 기저귀 가방까지 짊어진 나, 모두의 힘든 하루였다.
엄마로서 경험하는 순간들
수미 작가의 에세이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어떤 책 펴냄)에는 작가 자신이자 엄마의 우울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는 동안 느꼈던 모든 순간에서의 우울이기도 하다. '우울'이라는 표현 때문에 거부감이 든다면 우울을 지워도 된다. 그냥 엄마들의 엄마로서의 모든 순간에 관한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 엄마라서 간과했던 마음속 깊은 상처를 기록한 책이다.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은 경남 창원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남편과 함께 살면서 글쓰기를 이어가는 저자의 체험이 책의 전반에, 저자가 만난 우울한 엄마들의 목소리가 후반부에 실려 있다. 저자의 체험은 너무나 생생하며 날 것 그대로라서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경험한 어떤 장면이든 소환이 될 수밖에 없다.
임신과 동시에 찾아오는 젖몸살, 상처 난 젖꼭지를 아기에게 물릴 때마다 고문받는 듯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상황,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엄마들이 겪었던 고통의 일부다. 수면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지는 '수면 부재'의 고통을 나는 엄마로서의 당연한 통과의례로 감수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정상적 수면을 빼앗겼던 4~5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매일 스무 장 이상의 기저귀를 빨고 삶아 햇볕을 찾아 말리고 개는 것을 반복했던 시간은 빨랫줄에 기저귀가 펄럭이는 풍경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겨울철 온수가 아닌 손이 얼 것 같은 수돗물에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기저귀를 헹궈냈던 시간은 이성을 내던진 시간이었다. 잠깐의 휴식 사이 찾아오는 고립감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 엄마의 얼굴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분명 우울의 그림자였다. 아이에게 던진 감정을 삭제한 낮은 목소리는 분명 그 엄마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고단함은 엄마의 행복뿐만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도 소멸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미안하게도 내 눈에는 그 엄마와 아이가 딱해 보였던 것 같다.
확산되는 차별과 배제, 더 우울의 늪에 빠지는 엄마들
"우울하다는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잖아요. 특히 우울한 엄마가 키우는 자녀를 (딱하게) 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우울하다고 말하기가 더 쉽지 않아요. 지역 육아 카페만 가봐도, 우울하다는 이야기는 익명 게시판에 올라와요. 그래서 저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저자는 기혼 유자녀 여성이 우울증에 취약한 건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하여 엄마들의 우울증은 '사회적 질병'이라고 진단한다.
책에선 현 시점 큰 문제로 여겨지는 낮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여러 요인을 지적한다. 우선은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육아비 등의 경제적 부담을 얘기한다. 출산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의 부담은 출산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청년층 맞벌이 부부 중 무자녀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이 지표를 통해 누군가는 대한민국의 인구소멸을 전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회적 인식의 문제도 있다. '노 키즈존'에서 시작되어 요즘에는 '노 시니어존', '노틴에이저존' 등으로 차별과 배제는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나아가 어린이들의 비행기 탑승을 금하는 '노 키즈 데이'도 있다고 하니 상술의 전략으로 특정 대상을 향한 차별과 배제가 일상화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스럽다.
저자가 이웃의 항의로 겪은 층간소음에 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소음이 이웃 간의 법적 문제가 되는 요즘, 아파트는 더는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안전지대라 하기 어렵다. 책 속 이야기다.
"종종 스팸문자나 다른 사람에게 문자가 올 때도 층간소음 항의 문자일까 봐 몸이 경직됐다. 어디선가 쿵쿵하고 소리가 울리면, 또 우리 집을 의심할까 봐 선수 쳐서 "지금 소리, 우리 집 아니에요"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새벽 3시에 문자를 받았다. "자요?" 두 글자에 잠이 확 달아났다. 나는 홀린 듯 밖으로 나갔다. 아랫집 여자에게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와 나는 2층과 3층 사이, 계단참에 서서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저자가 겪은 것처럼, 소음이 문제시되기 시작하면 이후는 소음 자체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가 된다. 사소한 감정싸움을 막기 위해 선물, 아니 어쩌면 뇌물 공세를 펴기도 하지만 소음을 둘러싼 당사자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쟁에서도 총대를 메는 것은 엄마이며, 그 덕에 엄마들은 점점 더 우울의 늪에 빠진다.
그 밖에도 '일하는 사람'과 '엄마'라는 지위 사이에서 오는 미묘한 편견, 아이가 아프면 곧 아이를 방기하는 무책임한 엄마가 되어버리는 상황, 남편과의 성생활에 대한 솔직한 심경, 코로나 시기 긴급 돌봄에 관한 내용 등 가정과 밖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엄마의 우울한 사연들에 대해 밝히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저출생 문제 해결을 헌법에 못 박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현금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자는 지자체도 한두 곳이 아니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법제화하자는 얘기는 마땅한 발상이지만,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 아빠에게 적용되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엄마들의 우울은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었지만, 사실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진득하고 촘촘하게 쌓여 온 문제이겠다. 엄마들의 우울은 임신과 출산의 문제이며 동시에 양육의 문제다. 노동과 복지의 문제이며 정치와 경제의 문제다. 결국 아이를 둘러싸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이 엄마들의 우울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봄과 꽃이 주는 계절감에 더해 유독 어버이, 어린이, 스승, 부부를 예찬하며 행복한 구호가 넘치는 계절이다. 그 와중 엄마들은 오늘도 눈물을 삼키고 잠시 숨을 참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에 이 책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이 엄마들에게 위로를 주기를. 더불어 엄마들을 우울에서 구출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 나눌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