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나이였을 때, 음식을 남기거나 물건을 살 때, 불편한 마음을 느꼈었나요? 학교에서 기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줬나요? 저희는 이미 학교에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위기가 닥친 상황에서도 살아가야 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12세) 양
초등학생 6학년인 한제아양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발언대에서 남긴 말입니다.
이날 헌재에서는 정부의 미흡한 기후대응으로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제기된 기후헌법소원의 2차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 헌재는 2020년부터 제기된 4건의 기후소송을 병합해 심리 중입니다.
4건의 기후헌법소원 모두 현재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을뿐더러, 미래세대에 과도한 감축 부담을 떠넘긴단 취지로 제기됐습니다. 반면, 정부 측은 현재의 감축 목표가 도전적이란 입장입니다. 나아가 불확실성만을 가지고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침해했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난 4월 열린 1차 공개변론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정부의 기후대응 적절성 여부를 판단했다면, 2차 변론은 국제법 관점에서 현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적정한지 등이 중점적으로 논의됐습니다.
헌재는 이날 변론에서 청구인들의 최종 진술을 들었습니다.
"빙하 위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 노동자, 모두 같은 처지"
한양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22년에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단에 참여한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은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라며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없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 역시 2021년 시민기후소송 청구인 대표자 자격으로 발언대에 섰습니다. 그는 "기후운동을 하며 사과 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열사병으로 쓰러진 건설노동자, 폭우를 걱정하는 반지하방 거주 주민 등 기후위기가 우리 사회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목격해 왔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빙하 위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 노동자 모두 같은 처지에 있다"라며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우선적 책무가 시민의 삶과 기본권을 지키는 것임을 헌재가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청소년 19명을 주축으로 '청소년기후소송'을 제기한 김서경(22)씨 역시 최후진술을 했습니다. 청소년기후소송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으로 주요 외신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사건입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김씨는 소송 제기 후 4년이란 기간 기대와 좌절을 반복했다고 했습니다. 국회 기후위기비상선언 채택 이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통과됐습니다. 법 제정 후 탄소중립위원회(현 탄녹위)도 꾸려졌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인 김씨 역시 탄녹위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청소년은 장식이었다"며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여 만들었단 명분을 위해 (청소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라고 성토했습니다. 즉, '유스워싱(Youthwashing)'을 당했단 것이 그의 말입니다. 이는 기성세대가 정치·정책적인 목표를 위해 청년의 목소리를 이용해 홍보하거나 포장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이에 김씨는 "청소년은 학교 결석한 이야기나 하란 말을 듣고 끝내 탄녹위를 탈퇴했다"며 "정부나 정책 결정자들에게 기후대응을 요구했던 이유는 (기후위기가)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재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헌법소원은 우리가 던지는 마지막 믿음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대론 2.9℃ 상승"… 헌재 결정, 아시아 감축 강화 영향 줄 것
이후 청구인 측과 정부 측의 최종 진술이 이뤄졌습니다.
현 기후헌법소원의 쟁점은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40%를 감축하기로 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설정이 타당한지, 나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지입니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최종 진술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복잡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재의 감축 목표가 미래세대에 과한 부담을 전가함으로 인해 '이시적(異時的) 자유권'을 침해한단 것이 윤 변호사의 말입니다. 이는 현 정책의 위헌성 여부 판단 시 미래 국민의 자유권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는 정부가 "2030년까지 감축 부담을 뒤로 미룬 경로를 채택했다"라며 "CCUS(탄소포집·활용·저장)나 국제 감축 같은 불확실한 수단에 굉장히 의존한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이병주 변호사는 1.5℃와 2.9℃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2.9℃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3년 배출량 격차' 보고서에 등장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배출량이 유의미하게 감축되지 못할 시 지구 평균기온은 210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최대 2.9℃까지 상승합니다. 과학계는 지구 기온이 2.9℃ 이상 상승할 경우 극지대 대륙 규모 얼음인 빙상(氷床)이 걷잡을 수 없이 녹고, 아마존 열대우림이 소멸되는 등 여러 불가역적인 재앙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두 온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라며 "아시아 선도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아시아 각국 최고법원이 감축 목표를 강화할 것"이라며 헌재 결정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현재 목표 사회적 합의 통해 도출… 기본권 침해 아냐"
반면, 정부 쪽은 현재의 감축 목표가 충분하다는 점을 견지했습니다. 기후대응은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정부 측 대리인을 맡은 김재학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현 감축목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5차례가 넘는 토론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논의 끝에 나온 사회적 결과물이란 것이 그의 말입니다.
또 한국의 탄소중립기본법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2030년 이후 5년마다 국가기본계획을 점검하도록 국가 비전을 명확히 설정했다"라며 "이 정도 체계와 시스템을 갖춘 법률이 어느 선진국에 있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현 사건이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기후대응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자녀 모두의 문제다"라며 "우리와 자녀(미래) 세대를 분리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되레 기후헌법소원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진 것을 계기로 현 감축 목표를 초과 달성할 필요가 있다고 김 변호사는 말했습니다.
헌재 결과 이르면 9월 전망 "전기본 등 하위계획 모두 영향 받을 것"
한편, 2차 변론을 마친 헌재는 추가 심리를 거쳐 결정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9월 전에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헌재가 법률 위헌을 결정하기 위해선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합니다. 위헌 결정이 나올 경우 탄소중립기본법과 탄소중립기본계획 모두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수립한 탄소중립기본계획도 수정돼야 합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하위 계획이나 법령 역시 영향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