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어언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윤 정권의 2년을 돌아보면 '국정 전반의 후퇴'로 점철됐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이태원·오송 지하차도 참사, 한·미·일 군사동맹을 바라보는 굴종외교,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출에 대한 묵인, 검찰독재, 야당 정치인들부터 시작해 서민들까지 강요된 '입틀막'... 이러한 윤 정부에 앞장서서 비판한 곳은 종교계, 특히 천주교계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아래 사제단)은 지난 1년 동안 민주주의를 훼손한 윤 정권의 퇴진을 흔들림 없이 외쳤다. 시국기도회에는 그리스도인들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시민·야권 정치인 및 사회적 참사 피해자(유가족) 등이 함께했다.
이 거대한 대오 속에 하춘수 레오 신부(마산교구 회원동성당)가 있었다. 장소 섭외부터 강론(설교)·주례 등 다양한 실무를 감당한 하 신부는 기도회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늘 분주히 움직였다. 기도회가 폐막한 지 한 달 후, 지난 4월 17일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마산 회원동성당에서 하 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부가 되고 싶던 소년, 사제단과 함께 역사의 격랑기 속으로
통영 출신의 하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다녔다. 그의 세례명은 로마 시절 교회 지키기에 힘쓴 레오 대교황을 본받은 '레오'였다. 어릴 적 미사를 집례하는 신부(사제)들을 보며 '아, 언젠가 나도 저렇게 하느님을 받드는 사제가 되고 싶어'라는 그 뭉클함이 지금의 자신을 이끌었다고 하 신부는 쑥스럽게 고백했다.
그래서 하 신부는 전례를 돕는 복사 활동을 거쳐 예비 신학생 모임에 꾸준히 참석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부로 진학한 뒤 부산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신학과에서 학업을 마쳤으며, 2003년에 성품성사를 받아 정식으로 사제의 삶을 살게 됐다. 이후 하 신부는 경상남도 중·서부지역을 관할하는 마산교구로 발령받았다.
어찌 보면 신부로서 정석 중의 정석 과정을 밟았던 하 신부였다. 그런데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빈곤에 처한 서민들의 삶과 하느님의 복음과 사회의 정의에 합당치 않은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도 두었다. 특히 그가 성품을 받은 2003년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신효순·심미선 학생이 미 육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미국·미군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한 사제단의 전국 순회 미사에 하 신부도 함께했다. 하 신부는 "그 미사를 통해 '사제단이야 말로 사제직 수행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라는 마음을 가졌고, 선배들의 추천을 받아 사제단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제단 일원이 된 하 신부는 특히 그가 속한 마산과 그 일대 지역들의 사회문제 현장에 직접 달려갔다. 지난 2006년 구산면 수정만이 일방적으로 일반산업단지로 용도가 바뀌어 STX가 조선소 개발에 착수하자, 지역민들과 수녀들이 4년간 조선소 건립 반대 활동에 나섰다.
당시 하 신부도 이들과 함께하며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은 '아합의 나봇 포도밭 침탈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강하게 외쳤다. 또 민영화를 반대한 거제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투쟁과,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 반대에 동참하며 사제단으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시국기도회를 위해 발로 뛰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
사제단은 윤석열 정권의 검찰독재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묵인 등 국정운영의 후퇴를 규탄하며, 지난 2023년 3월 21일 전북 전주시 풍남문 광장에서 '검찰독재 타도와 매판매국 독재정권 퇴진 촉구 시국미사'를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매월 월요일에 전국을 순회하며 시국기도회를 진행했다.
이 시기 비상대책위원회 총무를 담당했던 하 신부는 "이번 시국기도회는 사제들이 교회와 사회의 정의를 위한 헌신을 할 수 있도록 시편 72편 2절과 여호수아기 3장 6절을 주제로 잡았다"면서, "최초의 천주교 순교 터 전동성당 앞 풍남문 광장으로 장소를 잡은 것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윤 정권에 맞서는 첫 기도회란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국미사 후 사제단은 한달에 평균 2번 매 월요일마다 기도회를 열었다. 천주교를 포함한 개신교·성공회·정교회 등 그리스도교는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기에 그 다음날 바로 기도회를 진행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특히 윤 정권 시기의 사제단은 시국미사 직후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윤 정권이라는 난국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리고 송년홍 타대오 신부를 비대위원장으로, 또 하 신부를 비대위 총무로 선출했다.
하 신부는 지난해 11월 27일 사파동성당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윤 정권을 겨냥해 "지난 대선서 0.7%p로 간신히 이긴 것 때문이라도 더욱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매력적으로 보이는 강대국들의 힘에 따르다보면 무력과 무력이 부딪히는 전쟁을 불러오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강론했다.
그러나 시국기도회가 늘 순조롭게 마련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천주교계의 극우단체로 알려진 집단은 기도회가 열리는 성당·광장에 찾아와 사제들과 참석자들에게 폭언·물리 충돌까지 저지르기도 했다는 게 하 신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7월 3일에 예정됐던 부산교구 시국기도회도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하 신부는 "기도회를 준비하는 신부들도 정치적 발언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사제의 의무가 아닌가"라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기도회는 지난 4월 18일에 막을 내렸다. 하 신부는 "원래 시국기도회는 지난해 8월 15일에 폐막하기로 이미 결정이 됐는데, 참석자들의 뜨겁고도 강한 의지에도 윤 정권이 요지부동해 '다시 한번 우리의 목소리를 윤 정권에게 들려주자'라는 논의를 거쳐 10월 초 부산에서 시국기도회 2기가 열렸던 것"이라 설명했다. 1년간 함께했던 신도·시민들은 폐막 소식에 아쉬워했지만, 긴 시간 동안 각종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고 앞장서 준 사제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기도회를 집례했던 사제들도 휴식기를 갖고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시국기도회의 끝이 아니라고 하 신부는 강조했다. "윤 정권의 폭정에 민중의 피눈물과 탄식이 그치지 않는다면, 사제들은 언제든지 달려가 쓰러진 이웃들의 손을 맞잡아 주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윤석열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행렬에 가장 먼저 앞장설 것"이라고. 하 신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결기가 묻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