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권리가 한국사회의 보편적 시민권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오래되었지만 본격적인 제도 시행으로 이어진 것은 코로나19 영향이 컸다.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경제발전이 일정수준 이상인 국가들 가운데 상병수당을 사회제도로 갖추지 못한 몇 안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첫 걸음으로 2022년부터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하여 2025년에 본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아프면 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 위해서는 아프면 쉴 수 있는 소득이 일정기간 보장되어야 하고 동시에 아파서 쉬어도 해고당하지 않을 법적 권리와 대체인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흔한 질병에 대해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과 여건 개선 등 조치가 뒤따라야 비로소 아프면 쉴 권리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상병수당 제도,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첫걸음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주요국가에서 가장 길다. 또한 노동자의 64%가 아파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업무 대체인력 부재와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문제를 꼽았지만 기저에는 병가제도가 없다는 점 그리고 소득상실에 대한 염려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 부터 "짧은 상병수당 보장기간"과 "낮은 상병수당 보장액" 그리고 "연령제한 등 혜택을 받을 사람을 제한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범사업은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시범사업이 끝나면 조만간 본격적으로 한국사회도 상병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범사업 시행도중 등장한 윤석열 정부는 상병수당 제도의 본래 비전을 변질 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스가 소득하위 50%만 혜택을 받는 선별복지 제도로 전환해 버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2025년 도입되기로 한 제도를 다시 2-3년 연기하겠다고 하고 있다.
상병수당은 직업성 질환이 아닌 일반 상병으로 치료를 받는 기간 어쩔 수 없이 소득을 갖지 못해 질병치료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이다. 노동자들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영업자 등 일하는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 사회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직업관련성이 없는 일반 상병은 일하다 아플 경우 이 상병수당제도가 정립되어 있지 않아 치료기간 동안 소득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소득보전 체계가 없다.
이런 제도의 부족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우선 질병으로 인해 소득계층 하락이 쉽게 일어난다. 또 다른 문제는 아플 때 소득 상실이 두렵기 때문에 참고 일하는 현상이 일반화 되어 질병이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하다 아프거나 다친 경우 직업성질환으로 판정이되면 산재보험으로 연결되어 소득보전이 이루어지지만 직업성질환 판정에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심사를 통해 직업관련성 인정받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하는 도중에 아프거나 다치면 하던 일 때문인지 혹은 개인부주의 때문인지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독일 같은 경우는 일단 일하다 아픈 사람은 무조건 유급병가 혜택을 받다가 나중에 산재 관련성이 나오면 산재보험으로 연결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상병수당 및 장애연금 쪽으로 연계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일부 시민은 이 상병수당과 유사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바로 공무원과 대기업 노동자등 단체교섭으로 유급병가를 회사차원에서 제도화 한 곳들이 그곳이다. 하지만 소수의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동자 및 자영업자들은 같은 한국사회에 살면서도 중요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을 개선하고 일하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아프면 쉴권리를 확보하자는 것은 굳이 국제노동기구(ILO)이 2012년 발표한 "사회보장최저선에 관한 권고"에 상병수당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거론하지 않아도 일하는 사람의 인권 보호 측면에서도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제도이다.
제도 도입이 직면한 어려움들
그러나 상병수당 제도 도입은 지금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하위 50%만 선별로 상병수당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이 지금 3단계를 앞두고 모든 시범사업 지자체에 공히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상병수당이라는 예산과 더불어 아파서 쉬어도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를 법제도 측면에서 보장하는 노력을 이 정부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상병수당 제도화는 보건복지부의 소관업무라고 할 수 있지만 근로기준법 등 법제도에 유급병가를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명시해야 비로소 아파도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상병수당 제도가 3일~2주간의 대기기간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대기기간 동안에는 고용주의 유급병가 보장이 뒤따라야 하면 이때 고용주 부담을 최소한으로 하여 유급병가 제도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대기기간을 3일로 최소화 시키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영세자영업자 및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종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체인력과 함께 지자체 유급병가 소득보전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정책도 병행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지역별로 어떤 상병으로 상병수당을 많이 신청하는가를 분석하여 해당 지자체 및 고용노동부 등과 협력하여 해당 상병을 예방하는 보건사업을 도입하는 등 조치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한국사회가 과연 이 제도를 도입할 만큼 예산이 충분한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병수당 사업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추진하는 것이어야 하며 지난 한해 건강보험 재정은 2024년 2월 시점으로 2023년 한해만 약 4조 원의 흑자를 보이고 있다.
또한 누적 재정 준비금이 28조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유급병가 추진하는 고용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재정 인센티브와 지자체 유급병가 지원 등 별도의 재정 투자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법인세, 건강보험재정, 산재보험기금 등에서 일부 재정을 모아 유급병가 기금(가칭)을 만드는 등 별도의 재정 관련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제도 개선은 아프면 쉴 권리의 보장으로 인해 중병예방과 산재예방으로 재정 절감효과를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개선 및 노동 생산성 증가와 노동 년수를 증가시켜 세수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등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상병수당으로 쏘아올린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의 신호탄은 단순히 상병수당만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산재보험과 연계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으로만 그쳐서도 안된다. 자영업자 및 특수고용직 등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권리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단순히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라는 소득보장 측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어떤 상병으로 많이 아파서 쉬게 되는지를 분석하고 생활습관과 환경도 분석해서 재발이 되지 않고 건강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돌봄체계를 구축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쪼록 22대 국회에서 이러한 취지를 이해하고 시민 및 노동자들과 함께 진정한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이자 아프면 쉴권리 공동행동(준) 공동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