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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교도소가 세운 묘비에는 '이 무연분묘는 1997년 7월 31일 대전시 서구 도마동 산 10-1번지에서 이장·안치했다'고 썼다. 하지만 대전교도소 측은 무연분묘에 누가 묻혔는지는 기재하지 않았다. 대전교도소는 명단도 비공개하고 있다.
대전교도소가 세운 묘비에는 '이 무연분묘는 1997년 7월 31일 대전시 서구 도마동 산 10-1번지에서 이장·안치했다'고 썼다. 하지만 대전교도소 측은 무연분묘에 누가 묻혔는지는 기재하지 않았다. 대전교도소는 명단도 비공개하고 있다. ⓒ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
 
대전교도소가 복역 도중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고문으로 희생된 박융서씨에 대한 묘지를 비공개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시민단체가 최근 묘소 위치를 확인했다. 박씨의 묘지는 대전 중구 어남동 산속 아스콘 공장 현장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조성돼 다른 무연고 사망자들과 함께 안장돼 있었다.

박융서씨(1921년생)는 지난 1973년부터 시작된 박정희 유신정권의 교도소 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사망했다. 박씨는 인민군 제대 후 1957년 9월 서울로 잠입하다 검거돼 1959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지난 2003년 대통령 직속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씨는 대전교도소 내에 구성된 전향 공작 전담반에 의해 지속적인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교도관들은 비전향장기수인 박씨에게 전향을 강요하며 온몸을 발로 차고 바늘로 찔렀다. 견디다 못한 박씨는 이듬해인 1974년 7월 20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박씨는 고문을 당한 후 옆방에 수감된 좌익수형자 양아무개씨에게 "북쪽에 모든 가족이 살고 있어 전향할 수 없다. 바늘로 온몸이 찔렸다. 정말 이렇게 살아있으면 무엇 하나. 교도소의 만행이 너무 심하다"라고 말한 후 벽에 '전향 공작 강요 말라'라는 혈서를 유서로 남겼다.

대전교도소 측과 중앙정보부는 박씨가 전향 공작원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 사실을 숨기고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씨가 부인과 자녀 등이 모두 북쪽에 있어 전향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대전교도소는 같은 이유로 박씨를 무연고자로 분류됐다.
     
의문사진상조사위는 2004년 교도소 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숨진 박씨 등 비전향 장기수 등에 대해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다 희생됐다'며 '의문사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특히 법무부와 대전교도소는 박씨의 시신을 합장하도고 그동안 관리상 어려움을 이유로 묘소 위치를 비공개했다. 지난해에는 전남의 한 역사 현장답사 단체가 묘역을 답사하겠다며 간곡하게 공개를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부했다. 당시 대전교도소 측은 비공개 이유에 대해 <오마이뉴스> 측에 '주민 민원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 온몸에 바늘고문 당한 재소자 묘소 숨기는 대전교도소, 왜? https://omn.kr/232mi)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연구소장 "묘지·묻힌 사람들 누구인지 공개해야"
 
 74년 대전교도소에서 '바늘 고문' 등에 시달리다가 '전향 강요 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숨진 박융서 씨.
74년 대전교도소에서 '바늘 고문' 등에 시달리다가 '전향 강요 말라'는 혈서를 남기고 숨진 박융서 씨.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박씨의 묘소는 대전 어남동의 한 산속에 다른 무연고자들과 함께 합장돼 있었다. 봉분 없이 평장을 했는데 비문에는 대전교도소 명의로 '합장지묘', '무연분묘로 1997년 7월 31일 대전 서구 도마동에서 이장했다'고 기록했다. 인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아스콘 공장과 유회당 권이진 선생의 묘역(조선 후기 학자)이 있다.

이곳에 박씨의 유해가 함께 안장돼 있는 것은 정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씨의 묘지에 대해 '서구 도마동에 있던 것을 1997년 7월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밝히고 기록했다.  

대전교도소 측은 무연분묘에 안치된 인물이 누구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오마이뉴스> 요청에 "공개정보청구를 해오면 공개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28일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해당 무연분묘에 묻힌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한 상태다. 

최근 묘소를 답사한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은 "대전교도소 측이 무연고 묘역을 비공개하는 연유를 모르겠다"며 "묘지는 물론 박씨와 함께 무연분묘에 묻힌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역 도중 고문으로 희생된 박융서씨의 묘지. 무연분묘로 다른 무연고자들과 함께 안치돼 있다.
복역 도중 고문으로 희생된 박융서씨의 묘지. 무연분묘로 다른 무연고자들과 함께 안치돼 있다. ⓒ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

#박융서#비전향장기수#무연분묘#대전교도소#어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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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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