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교육청이 하윤수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다른 현수막으로 노골적으로 가려 물의를 빚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을 선고받은 하 교육감을 꼬집은 내용인데, 교육청은 출근 전 '꿈을 현실로'라고 적힌 현수막으로 이를 안 보이게 덮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난 '입틀막(입을 틀어막는다)'에 이어 과도한 '심기 경호'를 위한 '현수막틀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29일 <오마이뉴스>의 취재를 정리하면, 하루 전인 28일 오후 6시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아래 부산교육희망넷)는 시교육청 앞 인도 펜스에 '전국 최초! 선거법 위반 당선무효형 판결! 하윤수 교육감은 시민에게 사죄하고 당장 사퇴하라'라고 쓴 하얀색 배경의 펼침막을 부착했다.
부산고법 형사 2부가 지난 8일 공판에서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된 하 교육감에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하자 이를 규탄하는 의미로 게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펼침막은 부착 3시간 만에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같은 날 오후 9시쯤 시교육청이 연두색 색상의 펼침막으로 먼저 달린 글귀를 덮었기 때문이다.
정한철 부산교육희망넷 상임대표는 "심기 경호처럼 느껴져 어이가 없다"라고 반응했다. 정 대표는 "2심 판결까지 나온 상황이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부착했다. 이후 갑자기 밤에 교육청 간부에게 전화가 와서 떼어 달라고 하더니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감이 출근할 때 못 보도록 하겠다는 건데 입틀막과 무엇이 다르냐"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부산시교육청 "환경 정비 차원서 이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시교육청은 불법적인 현수막인데다 직원 사기 저하가 우려돼 이렇게 조처했다고 해명했다. 총무과 관계자는 "옥외광고물법상 노동행위나 정치활동 관련 게시물은 허용된다. 반면 이번 건은 아니라고 판단해 이렇게 조처했다"라고 말했다. 불법으로 보여 철거를 요청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아 교육청 펼침막을 위에 덧붙였다는 주장이다.
부산교육희망넷의 '심기 경호' 거론엔 동의하지 않았다. 관련 질문에 이 관계자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기 위해 (인도를) 올라오는데 흔들림 없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며 "(다른 현수막은) 노조 차원 게시물이니 인정하더라도 이 펼침막은 환경 정비 차원에서 이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과 학부모 단체는 이번 사태를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논쟁이 된 '입틀막'의 연장선으로 바라봤다. 강진희 부산학부모연대 대표는 "'현수막틀막'과 똑같다. 이걸 교육청 앞에서 볼 줄은 몰랐다"라고 지적했다. 최민정 전국학비노조 부산지부장 역시 "가린다고 (유죄 선고) 사실 자체가 가려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비판까지 수용해야 함에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거들었다.
부산교육희망넷은 애초 달린 펼침막의 복구를 요구하는 한편, 이행되지 않는다면 규탄 1인시위 등에 나서겠단 계획이다. 이를 놓고 시교육청은 공식적인 요청이 들어와야 내부 검토를 해보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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