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7억 원을 갖고 있다면, 역세권 아파트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지하철역에서 1km 떨어져 있는 다세대주택을 사시겠습니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다세대주택 매입에 1채당 약 7억 원을 쓴 것으로 드러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30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최근 3년 동안 주택 매입에 10조 원 이상 사용한 LH에 대해 방만 경영에 따른 혈세 낭비 여부를 조사하라는 것.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서울시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LH 매입임대주택사업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LH의 방만 운영 실태 규명을 촉구했다.
김성달 경실련 사무총장은 "(LH가) 10조 원 이상을 매입임대주택 매입에 투입했는데, 이는 한 가구당 1억 원씩 전세금으로 지원할 경우 8만 가구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예산 낭비, 업자 보호, 집값 떠받치기 정책 아닌지 의심"
이어 "그런데 정작 비싸게 사들여 확보한 매입임대주택 수는 3만 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며 "서민 주거 안정으로 포장된 정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산 낭비와 (건설)업자들을 보호해 주기 위한 정책, 또 집값 상승을 떠받치는 정책이 아닌지 의심하기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앞서 지난 2일과 16일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주택 공기업에 대한 매입임대주택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매입임대주택의 호당 매입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팀 부장은 "지난해 초 강북구 미분양 주택을 LH가 대거 매입하면서 'LH가 혈세를 낭비해 건설사들의 민원을 해결해 줬다'는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에 (국토교통부가) 감찰까지 진행했는데, 갑자기 올해 들어 정부가 매입임대주택 가격 기준을 상향하고, 매입임대 물량도 늘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다시 매입가격 기준을 높여주겠다는 것은 결국 현재 얼어붙은 건설 경기를 혈세를 투입해 완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혈세를 들여 일부 업자들과 건설사를 위한 행위를 한다면 온 국민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균 면적 30㎡, 평균 거래가 3억원인데... LH는 왜?
LH의 매입임대주택 매입 가격이 통상적인 수준을 크게 웃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정흔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감정평가사)은 "(최근 논란이 된) 해당 지역의 2020~2024년 국토부 실거래가를 보면, 전체 거래량이 1만3000건 정도인데, 그중 3억5000만 원 이상으로 거래된 매매건수는 752건으로 전체의 5.8%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신축 다세대주택의 평균 면적은 약 30㎡(10평)이고, 평균 거래 가격은 3억 원"이라며 "LH에서 매입임대주택을 매입한 금액은 5억 원, 6억 원을 넘어 7억 원에 육박하는데, 그 주변에 거래되고 있는 거래 가격을 현저히 벗어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화곡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역세권도 아닌 다세대주택을 (LH가) 6억9900만 원에 매입한 사례가 있는데, 화곡역에 있는 아파트 가격이 약 7억 원"이라고 했다. 조 위원장은 "시장, 소비자의 판단에 비춰봐도 현저히 벗어나는 매입 가격"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엄중하게 감사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LH의 고가 매입 행태가 공공주택특별법 취지를 역행하는 처사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백혜원 경실련 시민입법위원(변호사)은 "공공주택특별법 43조에선 LH와 같은 공공주택 사업자가 기존 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 또는 지자체로 하여금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사문화한 공공주택특별법
이어 "또 공공주택특별법 44조에선 건설업자가 건설 중인 주택을 LH와 같은 공공주택 사업자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 매입할 것을 제안할 수 있게 하고 있다"며 "공공주택 사업자가 이를 매입하는 경우 국가 또는 지자체가 재정 등의 수준을 고려해 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뿐만 아니라 LH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따라 자본금 전액을 정부가 출자한 공기업"이라며 "따라서 LH가 공공주택특별법에 의해 국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을 사용하는 경우 혹은 자체 예산을 사용하는 경우 모두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위원은 "공공주택특별법 1조를 보면, 이는 서민의 주거 안정 및 주거 수준 향상을 도모해 국민의 쾌적한 주거생활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됐음을 알 수 있다"며 "당연히 관련 예산은 서민의 주거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LH가 고가에 주택을 매입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주택을 새로 짓는 과정에서 기존 세입자들을 내보내 주거를 불안정하게 하고, 고가 매입으로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서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공주택특별법 목적에 역행하는 모습"이라며 "LH의 사업 방식과 공적자금 사용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실련은 매입임대주택 제도 개선 방안으로 ▲ 신축 매입약정 방식 전면 중단 ▲ 매입기준 대폭 강화 ▲ 공공우선 매수권을 활용한 전세사기 주택 적극 매입 ▲ 매입임대 주택 정보 투명 공개 등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