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컵 사업을 하면서 저는 월경컵보다 시급한 것이 월경 교육이라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이는 단순히 월경과 월경용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월경혐오' 때문입니다. 월경혐오는 자기혐오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경 기간에 느끼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월경 자체를 혐오하는 것을 넘어, 월경하는 자신의 몸을 혐오하는 자기 혐오 감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합니다. 자신감이란 자신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감정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예를 들어, 수영을 배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약속된 시간에 수영장에 가서 물에 뜨고 팔 젖기와 발차기를 연습합니다. 처음에는 물에 뜨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점차 실력이 향상됩니다. 호흡도 길어지고 속도도 빨라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뢰감이 높아집니다. 이런 경험들이 자신감의 뿌리가 됩니다.
반면, 자기 혐오는 자신감을 형성하는 과정과 완전히 반대로 작동합니다. 월경 중 통제되지 않는 몸이라고 느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깊이 새겨집니다. 이러한 감정은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고, 자신을 혐오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월경 컵입니다만
우리나라에 월경컵이 도입된 지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 필자는 2018년부터 월경컵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월경컵의 사용방법이나 월경 관련 증상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혹은 어떤 편견으로 인한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 하루는 아침 일찍 다소 흥분한 고객님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어떻게 이런 물건을 미성년자에게 부모 동의도 없이 판매하는 겁니까?"
"네? 저희 제품은 월경용품으로 성년이 아니어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러시나요?"
"아, 그러니까요. 이거 거기(질)에 넣는 거 아닙니까? 고등학생이 그런 걸(월경컵) 막 넣어도 되냐고요!"
흥분한 고객을 진정시키고, 제품을 반품받는 것으로 신속하게 마무리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드물지만 매년 겪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월경컵 사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월경컵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월경용품으로, 올바른 사용법과 위생 관리만 따르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럴때마다 월경용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편견과의 싸움
한국 사회에서 월경컵을 판매하는 일은 거대한 편견과 싸우는 전쟁터와도 같습니다. 소개한 사례처럼 미혼의 여성이 월경컵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질 입구 주름(처녀막)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출발합니다. "질 입구 주름"은 질 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을 의미합니다. "처녀막"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순결과 연관되어 지속적으로 용어 변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왔습니다. 현재는 '질 주름', '질 입구 주름'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질 입구 주름은 다양한 형태와 두께를 가질 수 있으며, 일부 여성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성경험과 무관한 신체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입니다. 월경컵은 질 입구 주름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청소년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월경컵 사용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플 것 같아서, 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서, 사용법이 어려워서, 위생 관리가 어려울 것 같아서, 내 몸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주변에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월경컵은 이러한 걱정과는 달리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익숙해지면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월경용품입니다. 막연한 두려움과는 달리, 월경컵을 도전해 본 많은 사용자는 3개월 이내에 적응합니다. 또한, 그동안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월경컵 사용시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인 독성 쇼크 증후군(TSS)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월경컵과 탐폰을 모두 합쳐도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에서는 종종 독성 쇼크로 월경컵 사용을 중단했다는 사용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독성 쇼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SNS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1937년 리오나 차머스가 미국에서 월경컵을 최초로 발명한 이후 전 세계에서 단 2건의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사례들도 권장 사용 시간을 한참 넘겨 사용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나를 위한 선택
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과 월경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월경용품 사용을 추천합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외음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때때로 질 입구가 어디 있는지 묻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 부위 위치를 찾아줄 수 없는 노릇인데 이 난처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거울로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거나 힘들어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습니다. 월경컵 사용이 처음에는 낯설고 민망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자신의 외음부와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일단 익숙해지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차차 사라지게 됩니다.
"컵에 맑은 액체가 많이 담겨있어요. 이게 뭔가요?"
"맑은 액체는 질 분비물입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4ml 분비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월경 주기가 4일로 짧아졌어요. 왜 그런 거죠?"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경우, 양이 적은 날에는 질을 통과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잔혈이 1~2일 이상 조금씩 나올 수 있어 기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어요."
상담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월경컵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된 것입니다.
지구를 위한 선택
생리대를 구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기후위기는 생필수품인 생리대와 탐폰을 구하기 힘든 상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22년 미국에서는 6개월간 탐폰을 구할 수 없는 품절대란이 발생했습니다. 2022년은 팬데믹이 진정되는 시기였습니다. 문을 닫았던 공장들이 재가동을 시작한 시기에 생필수품인 탐폰이 6개월간 사라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2년 원면의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1% 상승하였고, 생리대 가격은 8% 상승했고 원자재 수급문제로 6개월간 탐폰은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기후위기와 맞물려있는데, 중국, 인도, 미국의 면화 생산량이 매년 가뭄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대표적 면화생산지인 텍사스는 몇년째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나 면화는 다른 작물보다 물을 더 필요로 합니다. 이에 더해 기후위기는 옥수수와 콩 등의 가격을 상승시키면서 면화 대신 수익성 높은 작물로 대체되는 경향이 뚜렷 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인구가 많은 인도나 중국에서 더 강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회용 생리대의 가격이 급등하고 품절 사태가 나는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계속된다면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습니다. "나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언젠가 본 제품후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드디어, 일회용 생리대를 버리기 위해 두었던 화장실 휴지통이 사라졌어요. 속이 다 시원합니다!"
큰 문제일수록 해법이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내 코앞에 작은 이득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기후위기를 위해 월경컵을 써야지! '보다는 '월경컵 덕분에 휴지통 안 비워도 되니 좋네!'가 더 쉽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테니까요.
일회용 생리대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흡수체는 대부분 나무의 펄프로 만들어집니다. 유기농 생리대도 흡수체는 펄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생리대를 만들기 위해 매년 여의도 면적의 숲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일회용 생리대는 500년간 썩지 않는 비닐필름을 포함합니다.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일회용 생리대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일회용생리대 건강영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중 약 90.3%가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회용 생리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다회용 월경용품과 함께 사용해서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월경컵이나 면 월경대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만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탐폰 대신 월경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심하고 시작하면 금방 익숙해지고, 더 좋은 방향으로 선택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월경은 여성 건강의 중요한 축입니다. 정확한 정보와 긍정적인 경험을 위해 초경이 시작되기 전에 교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월경 교육은 단순히 월경용품 사용법을 넘어, 월경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자기 신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월경혐오와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여성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5월 28일은 '세계 월경의 날'로 월경에 대한 사회적인 침묵과 터부를 깨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여성환경연대는 세계 월경의 날을 맞이해, 여성들의 월경 경험을 가시화하고 사회 의제로 공론화하기 위해 매년 '월경 말하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제8회 월경 말하기 주제는 '하나 뿐인 지구에서 버려지는 1회용 월경용품과 작별하기'입니다. 기후위기 속에서 나와 지구를 위해 다회용 월경용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기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