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당진 시골에 있는 텃밭에 다녀왔다. 시골 텃밭에는 지난달에 심은 몇몇 채소들이 꽃을 피웠다. 가지꽃도 피고 오이꽃도 피고 감자꽃도 피었다. 지금은 가지와 오이와 감자가 꽃을 피우는 시기지만 조금 지나면 고추와 들깨와 고구마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부추가 또 꽃을 피울 것이다.
시집 온 이후로 매년 보는 꽃이지만 시골 텃밭에서 보는 꽃들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꽃이 피고, 지고 나면 그 자리에 어김없이 열매를 맺는다. 마치 마법의 향연을 보는 것 같다.
시골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박노해 시인의 시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가 떠오른다.
"꽃들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
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
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중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중에서)
젊어서는 책에서 주로 지혜와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연에서 지혜와 위안을 얻게 된다.
조급증이 들 때면 자연은 언제나 내게 앞다퉈 피지 않는 꽃들처럼 타인의 삶에 눈 돌리지 말고 오롯이 스스로의 리듬에 집중하라고 말을 건넨다.
누군가를 밉게 보려는 마음이 들 때면 자세히 보아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 사람도 자세히 보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고 속삭인다.
늙음과 죽음에 덜컥 두려움이 들 때는 썩은 열매가 땅에 스며들어 새로운 영양분을 제공하듯 죽음은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향해 스며드는 것이라고 등을 토닥인다.
이번에도 자연이 건네는 말을 차곡차곡 새겨들으며 상추와 대파와 아욱을 풍성하게 뜯었다. 이웃에 사는 막내시누와 여동생과 함께 나눠 먹을 먹거리가 바구니에 차고 넘쳤다. 차고 넘치는 작물을 보며 나눌 것이 많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연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