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 5 : 4 의견으로 기각한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30일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에는 5 대 4가 많았다.
▲ 헌정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현직 검사(안동완) 탄핵심판이 5 대 4로 기각됐고 ▲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10년만에 결론이 나온 세월호 참사 신속한 구조 실패 위헌 확인 사건은 5 대 4로 각하됐으며 ▲ '양심적 병역 거부자' 대체복무제 위헌 확인 사건도 역시 5 대 4로 기각이었다. 모두 사회·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다.
같은 날, 비슷한 성격의 사건에서, 똑같은 5 대 4 결론은, 현재 헌법재판소의 지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보적인 소수파 3인이 똘똘 뭉쳐 있지만, 보수적인 4인이 역시 뭉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개별 헌법재판관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향후 헌재의 방향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현재 2건 심리중인 검사 탄핵(손준성, 이정섭)이든, 정치권에서 공개적으로 터져나오는 대통령 탄핵이든, 막상 헌재에서는 통과가 만만치 않다.
[3건 모두 기각·각하] 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
5:4로 의견이 갈린 세 사건에서 일관되게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을 낸 재판관은 4명이다. 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이다. 이들은 모두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은애·김형두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는데, 취임 시기가 이 재판관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반(2018년 9월)이고 김 재판관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2023년 3월)이다. 2018년 10월 취임한 이영진 재판관은 국회 선출 몫으로 바른미래당이 추천했고, 정형식 재판관은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했다.
이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정부가 구호조치를 적절히 이행하지 않아 희생자와 유가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면서 제기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이미 법원에서 위법성에 대한 구체적 판단이 이뤄졌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심판청구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36개월의 교정시설 합숙근무' 형태의 대체복무제가 과도한 복무 부담으로 선택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제기한 위헌확인 소송에서는 관련 법률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에 섰다.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에서 이들은 살짝 입장이 갈렸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은 공소권 남용이라는 대법원 판단을 뒤집으면서 안동완 검사에게 어떠한 법률 위반도 없었다고 판단했지만, 이은애 재판관은 옛 검찰청법을 위반해 권한을 남용하고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으나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는 입장이었다. 결론은 모두 기각.
[2건 기각·각하, 1건 인용] 이종석 헌재소장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안동완 검사 탄핵심판과 세월호 참사 사건에서 위 4명 재판관들과 같은 입장에 섰다. 좀더 구체적으로 안 검사 탄핵심판에서 이 헌재소장은 이은애 재판관과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사건에서는 소수 입장이었다. '36개월의 교정시설 합숙근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실상의 징벌로써,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 헌재소장은 2018년 10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헌재에 입성했고,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의 지명으로 헌법재판소장에 올랐다. 그는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1건 기각, 2건 인용] 정정미 재판관
정정미 재판관은 3건 중 2건에서 소수의견에 섰다. 안동완 검사탄핵과 세월호 참사 사건에서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과 함께 인용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사건에서는 이은애·이영진·김형두·정형식 재판관과 함께 기각 의견이었다. 보수 성향의 이종석 헌재소장이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밝힌 이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분류되는 정 재판관이 기각 쪽에 서면서 기각 5 : 인용 4가 거꾸로 뒤집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정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3건 모두 인용 의견]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3건 모두 소수의견에 함께 했다.
이들은 안동완 검사가 형법상 직권남용을 저질렀다면서 그를 파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중한 헌법적 징벌을 가함으로써 더는 검사에 의한 헌법 위반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적법할 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가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고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들은 해경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도 이렇게 지적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발생시부터 침몰시까지는 물론 침몰 후 상당 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집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서면보고와 전화보고만 받았고 그럼에도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였으며, 17:15경 중대본을 방문하기까지 공식적으로는 승객의 구조를 위한 아무런 구체적인 지휘를 하지 않았다."
결론은 유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김기영 재판관은 2018년 10월 국회(더불어민주당 추천)에서 선출됐고,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이들은 다른 사건에서도 뜻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6:3 의견으로 기각 결정이 나온 'KBS 수신료 분리징수' 방송법 시행령 사건에서도 함께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규정한 시행령을 두고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해 KBS의 방송운영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망] 1년 내에 6명 교체... 소수파 3인 모두 임기 막판... 헌재 보수화 가속화 전망
그런데 진보적 소수파 3인 재판관이 앞으로 1년 내에 모두 교체된다. 이들을 포함해 향후 1년 내에 임기가 끝나는 재판관이 모두 6명이다. 이중 윤석열 대통령 몫이 2명, 국회 몫이 3명, 대법원장 몫이 1명이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헌재의 구성과 임기를 볼 때 향후 재판관 교체로 헌재의 보수화 성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으로 헌법재판소 지형도에서 국회 몫 3명이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통상 국회 몫은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이었지만, 6년 전에는 여야 합의 몫을 당시 원내 제3당인 바른미래당이 가져갔다. 그런데 현재 국회에서 그 자리는 조국혁신당이 차지하고 있다. 또 국회 몫은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힘이 추천하더라도 192석 야당의 동의가 필수인 것이다.
헌재에서 최종 인용 의견이 나오기 위해서는 9명 중 6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