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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게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위치하다보니 양 옆으로 여러 모양의 가게와 사무실이 나란하다. 일반 사무실도 있지만 주로 배달을 하는 프랜차이즈 김치찌개개가게, 떡볶이 가게 등이 있다. 우리 가게 바로 옆엔 미용실 그리고 세탁방이 있다. 두 달 전쯤인가 고기 배달점이 나간 자리에 아구찜을 배달하는 가게가 들어왔다.

배달점이 늘어난 데는 코로나 영향이 컸다. 대부분 호황을 누리는 듯 했다가 어쩐지 요즘은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우리 가게도 도시락을 배달하는 가게이다. 매일 새벽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하고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한 지 17년째다.

처음부터 다회용용기 도시락

도시락 가게를 준비할 때 남편과 나는 황학동을 몇 주간 누비고 다니면서 주방용품과 집기를 모두 중고로 구입했다. 돈이 많지 않아서도 그랬겠지만 경험도 없는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자영업을 오랜 시간 할 수 있는 확률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황학동 주방용품 시장엔 이미 폐업한 가게로부터 나온 새 것 같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마지막날 우린 우연히 일본도시락 전문점에서 사용한 칠기도시락(벤또)를 보았는데 붉은빛이 도는 튼튼한 도시락에 한식을 담으면 더 예쁠 것 같아 새것같은 중고를 구입한 것이 지금 우리 도시락 용기가 되었다.

가끔 상처가 난 도시락은 새로 구입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그때 구입한 도시락을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일회용기에 배달되는 줄 알았다가 회수용 도시락에 담긴 도시락을 만나면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김치볶음밥 도시락-행복한만찬
김치볶음밥 도시락-행복한만찬 ⓒ 임경화
 
물론 우리는 배달과 이후 회수라는 이중의 수고와 엄청난 설거지를 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따르지만 지금껏(코로나 시기 포함)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도시락의 모양새가 사각의 홈으로 되어 있어 식기세척기 사용도 불가해 수작업으로 설거지를 한다. 누가 보면 참 미련하다 할 것이다.

요즘 새벽에 가게에 출근을 하면 예전보다 동네에 쓰레기 양이 무섭게 나온다. 아구찜 가게가 오면서 일회용품을 담은 박스며 비닐이 쌓여 수거하는 아저씨께 우리가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은 너무 당연하다

만약 우리도 일회용 도시락에 배달을 한다면 어땟을까? 하루에 사용하는 도시락이 100개 이상이니 한 달이면 2천 개 이상의 도시락 용기가 쓰레기로 나올 것이다. 일년이면 2만개 이상, 10년이면 30만개 가까이 된다. 지금껏 사용한 도시락이 50만개 이상 쯤 되겠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홍보와 캠페인이다. 플라스틱 해양 쓰레기를 먹은 바다거북이, 물고기들이 해안가에 죽어 있는 사진을 보면서 내가 하는 일은 어떤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는 500년 넘게 우리 주변을 떠돈다고 한다. 전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고 이미 곳곳에 플라스틱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무덤은 우리집 앞이 될 수도 있다는 광고 문구가 선명하게 내 뇌리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은 너무 당연하다. 아침마다 모든 식기를 열탕 소독하고 숫가락과 젓가락도 끓는 물에 데쳐내고 다회용 도시락을 매일 설거지하는 일을 미련한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껏 해온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중이다.

고객들도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것 같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10년 이상 단골들이니 우리는 공생관계(?)이다. 가끔씩 실수를 해도 배달전문점에게 해가 되는 별점테러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다. '같은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는데 나는 고객들을 식구라 생각한다. 그래서인가 서로에게 너그러운 편이다.

요즘은 남편과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날이 올 때까지 다회용기를 쓰는 이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김치볶음밥 도시락이다. 얼갈이와 열무를 섞어 새콤달콤 겉절이를 담갔다. 프랑크소시지볶음과 숙주나물 그리고 분식 기분 좀 내시라고 궁중떡볶이와 계란프라이도 담았다. 일터에 매여 있을지라도 점심시간 만큼은 소풍온 기분으로 즐거웠으면 좋겠다.

#쓰고뱉다#서꽃#행복한만찬#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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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곧60의 아줌마. 부천에서 행복한만찬이라는 도시락가게를 운영중이다.남은 인생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살았다고 소문날지를 고민하는 중이며 이왕이면 많은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행복한 미소를 글과 밥상으로 보여주고 싶어 쓰는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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