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뜨뜻미지근한 사람이다. 덕질과는 거리가 먼.
한때 BTS 공연과 영상에 빠져 애들 재우고 잠 안 자며 영상을 본 적이 있고, 2년 전쯤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남자주인공인 '구씨'(손석구 배우)에 빠져서 나도 여주인공처럼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건 모두 덕질이라기 보단, 한때의 일탈에 불과했었다. 반복되는 육아와 지난한 일상에서 해방되고 싶은 바람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나에게 덕질은 간이고 뭐고 다 빼줄 수 있는 '엄청난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나의 정의가 너무 진지한 건지는 몰라도, 내 인생에서 진심으로 덕질이라 할 만한 게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이를 덕질하다
남편과 긴긴 연애 기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혼을 결심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그를 사랑한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저에는 '네가 날 사랑하니 나도 널 사랑해 줄게'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10여 년 전 첫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 내가 한 사랑은 반쪽 짜리였을 수도 있구나. 네가 날 사랑하든 말든, 심지어 내 몸에 오줌을 날리고 내 젖꼭지를 물어 피딱지를 남겨도 그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온갖 희열과 가슴 벅찬 충만함을 주는 존재가 있구나. 매일 밤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온종일 집에 발을 묶어 놓아도, 한숨 한 번 쉬고 다시 안아줄 힘이 생기는 마법 같은 존재가 세상에 있구나.
모두 다 잘 나가는데 나 혼자만 집에서 패배자가 된 것 같은 블랙홀에 빠지다가도 아이의 눈 맞춤 하나, 옹알이 하나에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기가 낳은 아이 덕질 안 하는 엄마들이 있을까 싶다. 모성의 방식과 결이 다르고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때엔 덕질이 지나쳐서 탈인 적도 있겠고.
육아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아이의 열렬한 지지자로 내 인생을 채우던 나는, 강제로 덕질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맞았다. 별생각 없이 연례행사처럼 받았던 건강검진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입원해야 할 처지임을 알려주었다.
금방 끝나리라 믿고 싶었던 실낱같은 기대도 잠시, 난 그 뒤로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긴 싸움을 했다(관련 기사 :
백혈병 투병 과정, 내 가슴엔 3개의 줄이 있었습니다 https://omn.kr/28csf ).
차라리 혼자였다면 덜 힘들었을까? 장기간 치료를 받는 사이, 내게 주어진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도 힘들었지만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예고 없는 엄마의 부재는 아이들에게도 날벼락 같았을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 두려울 때조차, 내가 없어지는 것보다 엄마 없는 아이들을 상상하는 게 더 고역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내가 버텨내고 이겨낼 힘을 주었다. 그러고 보면 덕질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누군가의 존재가 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으니.
나를 살린 아이
얼마 후 내가 덕질하던 아이 중의 하나는 나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골수 이식이 필요했던 나는, 그러나 하나뿐인 동생을 포함한 그 어떤 기증자에게서도 적합한 유전자를 찾지 못했었다. 나의 주치의는 서둘러 차선책을 찾았다. 결국 난 딸로부터 골수 이식을 받았고, 딸의 어린 피로 새 삶을 얻었다.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즈음인 지난해의 일이다.
'딸의 피로 새 삶', 이 한 줄을 쓰기까지 수백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나 살자고 어린 아이의 몸을 저당 잡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두려웠던 탓이다. 아이 얘기를 쓸 때마다 복받치는 마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좀 더 담담하고 담백한 마음으로 그 당시를 돌아보고,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말하길 자기 고통을 소리내어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있다면 그건 참을 만한 고통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아이들 덕분에, 글쓰기 덕분에, 나는 지금 나름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몇주 전 아이 학교에서 '효'를 주제로 한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골수를 이식하기 위해 입원했던 일, 소아과 병실에서 엄마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던 6살 아이와 친해졌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이를 불러 물어봤단다. 이게 정말 실제로 네가 겪은 일이 맞냐고. 학생들을 혼낼 때만 따로 부르는 선생님의 호출에, 아이는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쫄아있었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가 세상을 다 얻은 개선장군처럼 시끌벅적 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나 1등이야!" 그녀의 손에는 글짓기 대회 최우수 상장이 들려 있었다.
그때의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까지 아이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겪었을까. '네가 엄마 살리는 거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그 무거움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하지만 아이가 내미는 상장을 보며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이도 뭔가를 글로 쓰며 두려움에서 한 발짝 멀어지는 법, 그 뒤에 있는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 아닐까 싶어서다.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나의 싸움은, 투병은 아직 끝났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알을 뚫고 나가야 하는 병아리처럼, 분명 괴롭고 힘든 순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결국 언제고 벽이 깨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쉽게 잊으려 한다. 간헐적 깨달음이긴 하지만 알을 깨려는 내 노력이 가능한 지점에 있다는 것조차 가끔은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니까.
아이를 덕질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일단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즐겁게 해보려 한다.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인정받지 못해서, 이해받지 못해 속상한 무수한 순간들은 다시 혼자만의 글을 쓰며 희석시키면 된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어떤 고통이 내게 오더라도 빠져나갈 구멍, 생각하면 힘이 나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아이를 향한 덕질이 주는 선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