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아이가 넷이다. 사람 아이 둘, 동물아이 둘이다. 사람아이는 7세, 6세다. 동물아이는 강아지가 16세, 고양이가 13세다. 지난해까지 동물아이는 셋이었는데 가장 나이 많았던 강아지가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이들은 병이 잦다. 병원 갈 일이 많다. 어느 순간 콜록거리고 열이 오르고 콧물 줄줄 흘린다. 자주 넘어지고 까지고 다친다. 동물아이는 그래도 병원 신세를 많이 지지 않았다. 특히 고양이는 병원에 간 게 지금까지 몇 번 되지 않는다. "너는 엄마 아빠를 많이 도와주는구나"라며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고양이가 아프다
말이 씨앗이 되었던가. 며칠 전 어느 날이었다. 아이 둘 유치원 등원시키고 아내 회사 출근시키고 돌아왔더니 고양이가 토한 흔적이 여기저기 가득이다. 가끔 토한 적은 있는데 이번엔 3일 연속이다. 게다가 토한 양이 많고, 무엇보다 3일째 물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대변도, 소변도 누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단골 동물병원에 연락을 취해서 문의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병원이다. 지금 가면 시간을 맞출 수 없다. 아이들 하원 시간 때문이다. 이튿날인 토요일 아침 9시까지 가기로 했다.
여전히 물도 마시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대·소변을 하지 않는 고양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먼저 엑스레이를 찍는다. 대기. 손님들은 계속 밀려든다. 엑스레이 결과가 나오자 호출. 방광에 결석이 발견됐다. 수액을 맞혀서 영양을 보충하고, 요도가 넓어져서 자연스럽게 배출하기로 했다. 수액 맞는 시간이 길다. 대기하는 대신 집으로 복귀다.
일어난 아이들이 조용하다. TV를 보는 모양이다. "자 출동, 놀러 가자." 그런데도 조용하다. TV에 시선이 고정된 아이들은 아무 응답이 없다.
"아이들, 오전에 TV 얼마나 봤어?"
"........."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아이들이 눈을 굴린다.
"조금밖에 안봤는데..."
그럴 리가 없다.
"아침에 너무 많이 보면 눈 아프다. 나갔다 오자."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첫째인 아들과 둘째인 딸은 노는 게 다르다. 아들은 격렬하게 노는 게 좋다. 처음엔 둘 다 미니자동차를 탄다. 몇 분 동안 그러다 이내 갈라진다. 첫째는 정글짐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공을 던지고 트램펄린으로 간다. 둘째는 인형놀이방으로 간다. 그러다 낚시터. 다시 인형놀이방이다.
첫째는 키즈카페 모든 공간을 다 누비고, 둘째는 앉아서 노는 곳 두세 곳에 집중한다. 첫째는 같이 뛰어다녀야 하고, 둘째는 중간중간 어디 있는지 살피면 된다. 2시간이 금세 지났다. 땀범벅인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쭉' 마시고 이동.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다시 병원으로 출동. 아직도 두 통째, 수액 접종이 끝나지 않았다. 앉아서 30-40분 정도를 대기했다. 이후 의사의 긴 설명이 이어진다.
"수액을 충분히 맞혔으니 어느 정도 영양 공급이 됐고요. 집에 가면 소변을 보고 싶어 할 거예요. 양 체크 잘하시고요. 카테터(임시 오줌길) 다는 걸 생각했는데 나이도 있고, 집에서 관리가 될까 생각해 보니 일단 카테터는 안 달았어요. 집에서 잘 살펴보시고, 월요일 한번 더 방문해 주세요."
오전 9시에 병원에 가서 거의 오후 3시쯤에서야 끝났다. 집에 가면 다시 두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다. 시간이 애매해서 종이접기를 한다. 생각대로 안되니 아이들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밖에 나갈까 생각하는데 아내가 말린다. "당신도 좀 쉬어. 애들 TV 보라고 하고." 아내 말을 듣기로 한다.
밤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고, 아내와 영화 한 편을 본다. 저녁 12시 30분. 아내가 아이들이 잠든 안방에 들어간다. 1층을 보고 2층을 본다. 2층엔 고양이가 자리를 잡았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요즘 2층 침대를 자주 찾는다. 2층은 내 공간이기도 해, 이번 주에 계속 같이 잠을 잤다.
갑자기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빨리 와봐요. 고양이가 이상해."
침 흘리고 몸 떠는 고양이... 아이들은 어쩌지
휴대폰 불빛을 비췄다. 고양이가 살짝 몸을 떤다. 입에선 침이 '줄줄줄' 흐른다.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인다. 지금은 새벽. 그 시간에 문을 연 인근 동물병원은 전혀 없다.
대도시가 없는 동네에 사는 게 이럴 땐 아쉽다. 아내가 통화 가능한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의사는 오랜 지인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긴 너무 늦은 시간이다. 아내도 심각하고, 나도 심각하다. 지인이 10분 뒤 전화를 걸어왔다. 일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던 상황이란다. 상황을 듣자 빨리 병원 가보는 게 좋겠다 말한다.
집이 있는 예천에서 가장 가까운 24시 동물 병원이 있는 곳은 대구다. 차로 1시간 30분이다. 서둘러 출발하기로 결정. 문제는 두 아이들이다. 두 아이를 차에 태워서 가야 하나. 일단 잠든 아이들을 안고서 차에 태워도 절대 일어나진 않을 거다. 하지만 가서 얼마를 대기해야 할지를 알 수 없고, 병원에 대기하면 아이들도 힘들 게 뻔하다. 아내와 생각해 보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애들 한 명씩 안고서 차에 실을 테니까 출발합시다." 그러자 아내가 "잠깐만요" 하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딩동' 소리가 울린다. '이 시간에 누가?' 싶었다.
이럴 수가. 우리와 여러 번 만났고,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 셋 엄마였다. 아이들 셋을 키우는 그 지인집은 항상 전쟁터다. 항상 머리를 말리지 못하고 출근하는 그 엄마를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내가 그 엄마에게 'SOS'를 친 것이다. 가능하다면 잠든 아이들을 그 집에 옮겨놓고 다녀올 생각이었다.
사정을 들은 아이 셋 엄마는 본인이 오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다. 베개 하나를 들고 바람같이 나타났다. "어디예요?" 물은 뒤 바로 아이들 곁에 누웠다. 뭉클했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말이 엉켰다. "고마워요"라고 말한 뒤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양육이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침을 질질 흘리며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아내가 살펴봤고, 나는 운전에 집중했다. 아픈 걸 잘 표현하지 못하는 건 사람아이나 동물아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안쓰럽다. 1시간 30분이 참 길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손님이 여럿이다.
대기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1분 1분이 참 느리게 지나간다. 오전에 진료를 본 병원에서 받은 진료결과지와 엑스레이 CD를 넘겨줬다.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거라 말한다. 한 번 더 엑스레이를 찍겠단다. 엑스레이를 찍는 동안 수술동의서를 작성한다. 수술동의서를 쓰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같다.
수술 직전 의사를 만나고, 수술 직후 의사를 만났다. 마취가 어느 정도 풀린 다음 고양이를 만났다. 마취약에 취해 우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비틀비틀거린다. 링거를 단 아이들을 볼 때면 항상 마음이 아리다. 수술은 잘 끝났단다. 요도에 있는 돌을 모두 빼냈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되뇌었다. 긴 새벽이 끝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한숨 돌리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올 걸 그랬어. 너무 큰 폐를 끼쳤는데."
"그렇긴 하지. 그래도 어두운 새벽이고, 고양이 상태도 너무 안 좋고, 오빠가 졸릴 수도 있고."
"......................"
대구에서 출발할 때는 새벽이었지만 예천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안방 문을 열었다. 아이 셋 엄마가 눈을 뜬다. "피곤할 텐데 어서 주무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진다. 아이 셋 엄마는 일요일 당직이라 잠시 뒤 출근해야 한단다. 참으로 큰 신세를 졌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이란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이런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다. 우리 집 아이가 옆집 가서 밥 먹고, 옆집 아이가 우리 집에서 밥 먹는 일이 허다했다. 하루는 누구네 집, 또 하루는 누구네 집에서 놀았다. 말하지 않아도 대충 알았고, 밤이 되면 연락이 왔다. "잠들었는데, 여기서 재울까요?"
어느 순간 그런 문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 시절을 잠시 경험했다. 몇 십 년 전엔 대가족도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과 이모가 돌보곤 했다. 형제들이 많아 첫째가 동생들을 돌보는 일이 흔했다. 지금은 아이 한 명이 대세니 형제가 돌보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대가족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를 키우는 건 오로지 그 가족에게 달렸다.
온 마을이 돌봐주는 대신 오롯이 그 가족이 키워야 하니 지금은 힘들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과거가 옳다 하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 그 시대엔 그 시대만의 가치가 있다. 항상 지금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현재가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바뀌고 사라지는 것들이 생긴다. 양육이 어려워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도와주는 이웃이 옆에 있었다. 돌이켜보니 돌아오는 새벽 별빛이 참 맑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