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2012. 1. 1. 친구 B에게 1억 원을 빌려줬습니다. B는 A를 만날 때마다 A가 자기 인생의 은인이라며 최대한 빨리 갚겠다고 약속해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좋아져도 B가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A는 괘씸한 마음에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말하기를,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10년이므로 이 대여금 채권은 2022. 1. 1.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소멸시효란 권리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기간동안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계속된 경우 그 권리를 소멸케 하는 제도입니다. 10년을 초과하였으니 A는 패소할 확률이 높습니다. 본인이 권리 위에 잠자지 않고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시효를 중단시킨 증거가 없다면 말입니다.
즉 A가 그 전에 재판상 청구,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을 했거나 반대로 B가 채무승인을 했다면 시효중단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채무승인이란 시효이익을 받는 당사자인 B가 자신의 채권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표시하는 것인데, 예컨대 이자를 지급하거나, 일부를 변제하거나, 담보를 제공하거나 기한의 유예를 요청하는 경우 등입니다.
시효중단 사유가 없다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B의 채무는 소멸하고, A는 승소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경우를 들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법언이 있는 것이지요.
채권 소멸시효 기간 살펴야 하는 이유
하지만 A가 패소한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은 "변론주의 원칙상 소송당사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주장하지 아니하면 법원이 이를 고려할 수 없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B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지 아니하거나 재판에 불출석하여 무변론판결이 이루어진다면 A가 승소할 가능성도 적게나마 있습니다.
모든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10년인 것은 아닙니다. 상행위로 생긴 채권은 5년입니다. 이자․부양료․급료․사용료 그 밖의 1년 이내 기간으로 정한 금전 또는 물건의 지급을 목적으로 한 채권, 의사 등 치료 등에 관한 채권, 공사대금 채권, 변호사의 직무에 관한 채권(수임료 채권) 등은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숙박료나 동산의 사용료, 노역인이나 연예인의 임금채권, 수업료 채권 등은 1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또한 임금채권과 퇴직금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3년입니다.
채권이 존재하고 그 증거가 명백한 경우에도 채무가 소멸한 것으로 본다니 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채권자에게도 자신의 권리를 적시에 행사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채권자가 장기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채무자는 채무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거나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정한 사실상태가 계속되면 이를 기초로 새로운 다수의 법률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그 사실상태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여 부인한다면 이를 기초로 맺어진 법률관계가 흔들리게 됨에 따라 법적 안정성이 저해될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소멸시효 제도로써 채권자의 권리행사 태만을 제재하고 채무자의 정당한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저는 그 사람이 그럴 줄 몰랐어요", "저는 그를 믿었어요"라는 말입니다. 안타깝지만 법정에서는 아무리 그 말을 외쳐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좋은 게 좋은거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시기보다는 혹여 본인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가 아닌지 떠올려보시고,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놓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조수아 변호사(법무법인 동천 031-334-1600)입니다.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