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최종 : 7일 오후 6시 29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이 선고됐다.
뇌물 및 정지차금법위반 혐의는 물론 대북송금 관련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도 일부 유죄로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가 대북송금 여부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대북송금 혐의가 유죄로 나옴에 따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및 기소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7일 오후 2시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위반, 외국환거래법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전 부지사 선고 공판에서 징역 9년 6월에 벌금 2억5000만 원, 추징금 3억2595만 원을 선고했다. 대북송금 혐의는 전체적으로 유죄가 인정됐지만, 금액이 기소된 800만 달러에서 394만 달러로 줄었다.
재판부는 이 전 지사가 쌍방울의 대북송금을 공모했다는 혐의에 대해 "쌍방울이 경기도가 낼 비용을 대납했다는 김성태 전 회장 발언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면서 "쌍방울의 대북송금이 경기지사 방북 관련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2022년 10월 구속기소 된 지 약 1년 8개월 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월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기소한 이 전 부지사의 혐의는 2018~2022년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 자신의 측근에게 허위 급여 등의 방법으로 3억 3400만 원 상당의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비리 혐의에 더해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소위 대북송금 관련이었다. 쌍방울이 북한에 약 800만 달러를 송금했는데, 이는 이 전 부지사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부탁해서 경기도의 대북 스마트팜 사업비(500만 달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비(300만 달러)를 쌍방울이 경기도 대신 준 것이었다고 검찰은 기소했다(외국환거래법 위반).
하지만 이 전 부지사는 대북송금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이 전 부지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중반 검찰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진술을 했지만 곧바로 이를 번복했다. 오히려 검찰이 직간접적으로 허위 진술을 회유하고 압박했다고 결심공판에서 직접 주장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민주당은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표적 수사하려고 사건을 조작했다고 보고 지난 3일 대북송금 사건을 전반적으로 재수사하는 특별검사법을 발의한 상황이다.
[유죄 나온 결정적 이유] 김성태 진술 신빙성 전적으로 인정
재판부는 쌍방울 관계자들의 진술, 경기도 공무원 진술, 경기도 내부 보고서, 국가정보원 문건 등을 토대로 쌍방울의 경기도 비용 대납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유죄로 인정한 금액은 총 800만 달러에서 394만 달러로 줄었다.
재판부는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 중 164만 달러에 대해서만 '관할 세관의 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국외로 수출'한 것으로 인정했고, 나머지는 "환치기 방법으로 국외로 수출했다는 부분은 지급 수단 휴대수출행위로 볼 수 없어 무죄"라고 판단했다. 비슷한 논리로 도지사 방북비 300만 달러 중 범죄 행위로 인정된 액수는 230만 달러였다.
재판부는 유죄 이유에 대해 "김성태 전 쌍방울 그룹 회장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김성태를 "국내에서 기업집단을 운영하는 CEO"라고 평가하며 "주가 조작만을 위해 대북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 전 부지사가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500만 달러를 지급한 김 전 회장이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 측에) 300만 달러의 비용을 지급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전 부지사의 요청으로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를 대납한 것이 아니라면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추진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이화영 측과 쌍방울 측(김성태, 방용철, 인부수 등)의 진술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후자를 전적으로 신뢰한 것이다.
[이화영 측 강력 반발] "재판부 편파적... 판결 전제 사실부터 잘못"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 김현철·김광민 변호사는 선고 이후 수원지법 청사 앞에서 취재진을 만나 "재판부가 편파적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현철 변호사는 "재판부가 '이화영 때문에 쌍방울이 대북사업을 하게 됐고, 이화영이 쌍방울 대북사업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주가가 폭등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북사업을 하겠다는 의도로 이 사건이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은 주식담보 대출 여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대북사업을 시도했던 것인데, 재판부는 이런 정황을 모두 외면하고 검찰 의견서를 취사선택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화영이 쌍방울 대북사업에 관여했다면 국정원이 이를 놓쳤을 리 없다"고 덧붙였다.
김광민 변호사는 재판부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재판부는 (문제가 된 행위가) '건실한 중견기업 쌍방울 정도 되는 기업에서 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행위'라고 했는데, 귀를 의심했다"면서 "김성태의 전과기록만 살펴봐도 김성태가 쌍방울이란 기업을 통해 무슨 짓을 해서 돈을 벌었는지, 그런 쌍방울이 과연 견실한 중견기업인지는 상식만 가져도 다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재판은 '김성태는 정직하고 이화영은 거짓말쟁이다'를 전제로 진행됐다, 이런 재판이 어떻게 정의로운 재판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조만간 1심 판결에 항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답보 상태 탈출 교두보 확보한 검찰] 이재명 기소에 시동 걸 듯
일부이지만 대북송금 혐의가 1심에서 인정되면서 사실상 유보됐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기소가 초읽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검찰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혐의 중 대부분은 분할해서 불구속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대북송금과 관련해서는 수원지검으로 보낸 후 8개월간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은 그동안 최종 목표가 이 대표에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부지사 공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9월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대북송금과 관련해 제3자 뇌물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시했다.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돈은 결국 이 대표에게 준 뇌물이라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는 김 전 회장에게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와 방북비용 300만 달러 대납을 요구했다"면서 "그 대가로 경기도 차원에서 쌍방울의 대북사업을 보증해주기로 했다"고 이 대표를 공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구속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은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이재명)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후 이 대표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이번에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검찰이 다시 움직일 근거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대북송금 800만 달러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스마트팜 관련이 무죄가 나온 점, 이제 1심이 끝난 상황에서 수사 과정에 대한 각종 폭로가 이어지는 점, 민주당이 검찰 수사를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특검을 벼르고 있는 점 등으로 인해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수원지방검찰청은 이날 오후 6시경 "불법 대북송금 범행의 실체가 명백히 확인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특히 수원지검은 "일부 언론 및 정당이 판결 직전까지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이른바 '쌍방울 주가조작을 위한 대북송금'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고 강조하면서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열거했다. 다만 수원지검은 양형과 일부 무죄가 나온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