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이렇게 잘 흐르는데 왜 수문을 닫아요?"
6일, 초등학교 3학년 주한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천막농성장을 찾아왔다. 내내 오기 싫어했다던 주한이는 눈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금강과 자갈밭을 보자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와 함께 물수제비를 떴다. 아파트에 살다보니 층간소음이 걱정돼 마음껏 연습하지 못했다면서 리코더로 '꽃씨'라는 노래를 연습했다.
조금은 서툴렀지만 청명한 리코더 소리가 거세게 흐르는 금강 위에 얹혀졌다. 아빠와 강가에 나란히 앉아 연습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이런 게 바로 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마음놓고 소리를 낼 수 있고, 몇 시간이고 돌을 던지며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입장료도 없고 이용시간 제한도 없다. 언제든 와서 머물다 가도 되는 '우리들의 강'이다.
하지만 요트와 오리배를 띄우려고 세종보에 물을 채우면 흐르는 강이 주는 이같은 호사를 자유롭게 누릴 수 없다.
강에 접근하려면 우선 돈부터 든다. 세종시가 세종보 담수를 전제로 추진하는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는 친수 공간 확보를 내걸고 있지만, 이는 강과 시민들과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간에 치명적인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맹독을 품고 있는 '녹조라떼의 강'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겉으로는 낭만적일지 모르겠지만, 끔찍하다.
세종보 재가동… 결국 전국의 강을 죽이는 일
6일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와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의 20여명의 활동가들이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낙동강, 영산강, 한강에서 온 강 활동가들이 '세종보 천막농성장이 우리강 자연성 회복을 위한 최전선'이라고 말하며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 시대 물관리 정책인 하천유역 자연기반 해법을 통한 탄소흡수와 생물다양성이라는 국제적 흐름은 외면하고, 구시대적인 준설과 댐 중심의 하천정비로 물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며 "역대 가장 무지한 한화진 환경부장관은 세종보 가동을 기후위기 대응정책이라고 발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이들은 "하천의 자연성 회복은 기후위기 시대 물관리 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하며 "보 처리방안과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원상복구, 한강, 낙동강 수문 개방"을 촉구했다. 이들은 '장벽을 걷어내고 흘러라!'를 한강,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의 이름을 붙여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영산강에서 오신 고령의 활동가는 이렇게 작은 천막에서 싸우고 있는 줄 몰랐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금강과 어우러진 삶… 그 자체가 자연
"강바람이 제법 선선하네요."
낮 더위가 지나가면 시원한 강바람이 느껴진다. 세종시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보다가 1970년대까지 세종의 금강에서 횃불을 들고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밤 사이를 흘러가는 금강을 바라보다가 그 장면을 상상했다. 더 많은 물살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강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모래와 자갈이 있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금강을 오랫동안 살펴온 이가 어떤 이들은 강물이 가득 차 있어야 야경도 멋지다고 했단다. 하지만 도시의 야경은 강물의 양과는 관계 없다고 대꾸하면서 실소했다. 지금도 강물에 비친 금강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붉은 저녁노을이 흐르는 금강과 마주할 때 연출하는 윤슬도 일품이다. 지금으로도 족한데, 악취와 하루살이가 들끓는 썩은 물로 '세종호'를 만들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이다.
횃불을 들고 사람들이 물살이들과 부대끼던 그때의 금강은 어땠을지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부드러운 금은 모래톱 위를 맨발로 걸었을 것이다. 물속 여울에서도 고운 모래들이 서로 뒹굴면서 흘렀을 것이다. 그곳에는 수문개방 이후 회귀한 흰수마자와 미호종개가 지천이었을 것이다. 자갈밭을 걷다가 알과 둥지를 지키려고 사람들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는 흰목물떼새의 의태행위도 목격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녹색 르네상스' '녹색 뉴딜'이라고 우기던 4대강 사업으로 우리는 과연 행복해졌나를 질문해본다. 그때도 친수공간을 확보한다고 했지만, 수심 6m로 판 금강 곳곳에는 '출입금지' 표지판이 세워졌다. 세종보 상류에 있던 마니라 선착장도 녹조라떼와 펄 때문에 문을 닫았을 지경이었다.
또 최첨단 보라고 홍보하던 세종보는 한해에도 몇 번씩 고장을 일으켜서 '고물보'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 수리비는 또 누구의 주머니를 채웠을 것인가. 환경부는 지금도 세종보에 물을 채워 소수력발전소를 정상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잦은 고장으로 가동률이 30%에도 미달했다. '녹색 르네상스'가 언어도단이듯, '정상 가동'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 지자체가 감히 강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용납하기 어렵다."
6일 천막농성장의 밤을 지킨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충북 청주서원)의 말이다. 그는 강은 여러 지역의 주민들과 강의 생명들이 관계됐음에도 세종시가 강을 막으려 하고, 환경부가 거기 동조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광희 의원이 천막농성장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강준현 민주당 의원(세종을)도 현장을 찾아 농성장에 있는 이들을 격려했다. 이 두 의원은 천막농성장에서 진행되는 '슬기로운 천막생활' 유튜브 생방송(
김병기의 환경새뜸)에 출연해서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두 의원이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세종시가 강제철거를 한다면 뛰어 오겠다"는 말이었다.
두 의원은 수달조사를 하러 온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 낙동강의 활동가들도 함께 만나 먹거리를 나누고 농성장의 상황을 알리기도 했다.
농성장에 전달된 2차 계고장으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이 됐지만, 더 많은 시민들과 활동가,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서 안심이다.
며칠 새 농성 천막 옆에 둥지를 튼 '동조 텐트'를 세어보니 일곱 동. 겉으로는 한가롭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세종보에 물을 채운다면 우리와 함께 물속에 뛰어들겠다는 결의와 연대의 표식이기도 하다. 그래서 든든하다.
이날 밤, 그 둥지에 불이 하나둘씩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