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게 약속한 연간 1000억 달러(약 136조원) 규모의 기후재원 목표를 달성했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각) 밝혔습니다.
선진국들은 앞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개도국에게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 상당의 기후재원을 약속했습니다.
기후재원 대다수는 개도국 내 청정에너지 개발과 에너지효율 개선 등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 사업에 사용됐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기후재원을 저탄소 또는 기후탄력적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재원이라고 정의합니다.
당초 목표는 2020년까지 연간 최소 1000억 달러를 조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고, 그 결과 목표연도는 2025년까지 연장됐습니다.
7일 그리니엄이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22년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제공한 기후재원 규모는 1159억 달러(약 158조원)로 집계됐습니다.
전년 896억 달러(약 122조원)보다 30% 증가한 것입니다.
2022년 기후재원 1159억 달러 달성
지난해 11월 OECD는 2021년 기후재원 추적 이행 현황 발표 당시 "2023년에 기후재원이 1000억 달러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본 바 있습니다.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은 "당초 목표였던 2020년보다 2년 늦었다"면서도 "선진국이 2022년 1000억 달러 목표를 초과 달성한 건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선진국에 귀속된 다자기관의 기여가 크게 늘어난 덕분입니다.
지난해 다자기관은 약 506억 달러(약 69조원) 규모의 기후재원을 내놓았습니다. 민간 부문 투자 역시 219억 달러(약 29조원)로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었습니다.
2022년 기후재원 추적이 지금 나온 이유는 주요국과 다자개발은행에서 나온 데이터 검증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OECD에 의하면, 2022년 모인 기후재원 1159억 달러 중 699억 달러(약 95조원)가 개도국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사용됐습니다. 기후적응 사업에 사용된 재원은 324억 달러(약 44조원)로 집계됐습니다. 나머지 136억 달러(약 18조원) 정도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적응 사업 모두에 사용됐습니다.
특히, 2022년 적응 재원이 전년 대비 78억 달러(약 10조원)가량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고 OECD는 평가했습니다. 그간 OECD는 적응 재원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바 있습니다.
물론 이는 선진국들이 약속한 적응 재원 목표치에는 크게 못 미치는 액수입니다. 선진국들은 2025년까지 적응 재원을 406억 달러(약 55조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연간 1000억 달러 기후재원 달성 목표, 전문가들이 지적한 까닭
다만, 주요 분석가들은 OECD의 계산 방식을 비판했습니다. 하르지트 싱 기후행동네트워크(CAN) 정책전략국장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OECD의 기후재원 집계 방식이 "모호함과 부적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는 개발원조 전문 싱크탱크 글로벌개발센터(CGD)의 연구와 연관됩니다. CGD에 의하면, 2022년 선진국이 제공한 기후재원의 3분의 1 이상이 기존 지원금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안 미첼 CGD 수석정책연구원은 "(기후재원) 증가 상당 부분이 기존 개발재원의 방향을 바꾸고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쉽게 말해 다른 재원으로 돌려막기를 했단 지적입니다. 영국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은 개도국을 위해 2025년까지 116억 파운드(약 20조원) 규모의 기후재원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 영국 독립원조영향위원회(ICAI)는 기후재원 목표 달성을 위해 영국 정부가 회계트릭을 사용하고 있단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른 개발재원을 기후재원으로 돌리는 형태로 17억 2400만 파운드(약 3조원)를 지출했단 것이 ICAI의 설명입니다. 신규 기금 등 기후재원 마련을 위한 별도 노력이 없었단 것.
탐시 바튼 ICAI 최고위원은 당시 영국 정부의 기후재원을 집계하는 방법론 변경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어 "기존 지출을 기후재원 총액에 포함하는 등 영국이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적은 기금을 지원하고 있단 것이 우려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 우크라이나 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로 인한 조치로 풀이된단 것이 ICAI의 판단입니다.
이밖에도 2022년 기후재원 상당수가 보조금이 아닌 '대출' 형태로 제공된 점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개도국들은 기후재원이 대출이 아닌 보조금 형태로 제공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빅테크 독점세·패션세·방산세 필요성 제기"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기후재원이 부족하단 지적도 나옵니다. 비영리단체 천연자원보호협의회(NRDC)의 조 스웨이츠 기후금융 전문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후재원) 목표는 달성됐고 긍정적이다"라면서도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기후정책이니셔티브(CPI) 연구에 의하면, 파리협정 목표 달성을 위해선 2030년까지 연간 약 9조 달러(약 1경 2300조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합니다.
한편, 2025년 이후 새로운 기후재원 목표 수립을 위한 협상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6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SB60)'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SB60은 올해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릴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내 주요 문제를 사전에 조율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회의는 오는 13일 폐막합니다.
최빈개도국(LDC) 그룹 대표인 에반스 은제와는 첫날 기자회견에서 "예측 가능하고 적절하며 접근 가능한 기후금융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1000억 달러규모의 기후재원 목표는 충분하지 않단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SB60에서 빅테크·패션·방산 업체와의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신규 기후재원을 충당하는 방식이 고려되고 있단 소식도 나옵니다.
기후전문매체 클라이밋홈뉴스는 중국과 개도국이 가입한 77그룹(G77)이 이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발표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패션세, 빅테크 독점세, 방위기업세 등을 부과함으로써 연간 최대 4410억 달러(약 603조원) 규모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단 것이 G77의 설명입니다. 패션과 방산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산업군으로 여겨집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협상가가 군사 부문에서 나온 온실가스가 전 세계 총배출량의 약 5%를 차지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허나, 선진국들은 G77의 제안에 대해서 공개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2025년 이후 기후재원 규모와 목표 시점 등은 추후 SB60 종료 후 COP29에서 더 구체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순환경제 전문매체 그리니엄(https://greenium.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