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골 텃밭에 처음 심은 작물은 당근과 아욱이다. 둘 다 씨를 뿌렸을 뿐인데 엄청나게 무성하게 자랐다.
그러나 무성한 잎을 보고도 처음에는 그다지 많이 가져다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욱은 특유의 향 때문에 된장국에만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당근은 아예 잎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날이 무성해지는 잎을 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 두 채소를 무쳐 먹을 수는 없을까?
모든 채소는 무침을 할 때 가장 헤프다. 보기에 많아 보이는 채소도 데치면 한 줌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시도해 보기로 했다. 무침을 말이다.
무턱대고 무침을 할 수는 없어서 만능박사 포털 네이버 사전을 열었다. 오호!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반갑게도 아욱도 당근잎도 무침이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먼저 아욱 무침. 그런데 여느 채소와 달리 아욱은 무침을 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바로 치대기다. 아욱은 데치기 전 반드시 굵은소금을 뿌려 바락바락 치대야 했다. 그래야 풋내와 쓴맛이 사라진다고 한다.
막상 치대려고 하니 잎이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웬걸! 소금을 뿌리고 치대니 잎이 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초록색이 짙어졌다. 아무래도 여느 채소보다 섬유소가 질겨서 그런 모양이었다.
잔뜩 나온 초록물을 맑은 물로 헹궈 내고 팔팔 끓는 물에 데쳤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아욱은 짙은 초록을 지우고 다시 파릇파릇한 색으로 살아났다.
데친 아욱을 찬물로 헹궈 건져서는 들기름과 소금, 참치액젖만으로 무쳤다. 미끌거림도 없고 특유의 향도 사라져 맛나다.
이번엔 당근잎 무침. 당근잎은 그냥 데쳐도 되어 끓는 물에 바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당근잎은 데치니 향이 진해졌다. 좋게 말하면 쑥내음 같고, 나쁘게 말하면 고약한 한약재 같은 냄새가 났다. 찬물에 헹궈 한 번 맛을 봤다. 쓰다.
당근잎에 관한 자료를 다시 뒤졌다. 당근잎은 줄기와 큰 잎에 알칼로이드라는 독성이 있어 쓴맛을 낸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당근잎은 여린 잎만 사용해야 한단다.
이런! 당근잎이 식용으로 흔하게 쓰이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데친 것 중 작은 잎만 골라내고, 삶지 않은 잎은 다져서 물에 갠 부침가루와 버무려 전을 만들었다.
다행히 전으로 만든 당근잎은 쓴맛도, 자극적인 향도 나지 않는다. 저녁 식탁에 내놓으니 남편도 아이들도 맛있다며 잘 먹는다.
아욱 무침은 남편이 가장 좋아했다. 시금치나물보다 더 맛있다며 내어준 한 접시를 다 비웠다.
아욱은 중국에서는 '채소의 왕'으로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한 채소라고 한다. 특히 단백질과 칼슘의 함유량은 시금치보다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비타민 중에서는 비타민 A의 함유량이 가장 높은데, 아욱 100g을 섭취할 경우 하루 권장 섭취량의 약 163.3%를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차가운 성질이 있어 변비 예방, 비만증, 숙변 제거에 효과적이며, 열로 인한 피부발진에 좋고 술을 마신 뒤 먹으면 해독작용을 하기도 한단다.
영양가가 이렇게 풍부한 채소인 줄도 모르고, 얼마 전까지도 무성한 아욱을 보고는 우리가 얼마나 먹는다고 씨를 저리도 많이 뿌렸냐며 남편을 타박했었다.
그런데 이리 맛나고 영양가 있는 반찬으로 변모할 줄 누가 알았을까. 앞으로는 남편을 타박할 게 아니라 궁리에 인색한 내 머리를 탓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