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성심원(원장 엄삼용 알로이시오) 개원 65주년을 맞아 '마을공동체 그리고 사람살이'를 주제로 열린 열 번째 성심어울림축제가 대구가톨릭합창단(단장 박진우)의 위로와 평화를 구하는 노래와 함께 지난 6일 저녁 막이 올랐다.
순백의 옷을 입고 성당으로 입장한 합창단은 '주여 인도하소서'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한 시간 삼십여 분의 시간 동안 성당을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게 했다. 중증의 장애인들도 더불어 초여름 밤의 음악회를 즐겼다.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 아들로 태어나 방탕하게 살다가 한센인을 만나 회개하고 성인의 반열에 오른 성 프란치스코가 노래했던 '태양의 찬가'가 흘러나올 때는 함께한 이들의 눈과 귀가 활짝 열렸다. 성 프란치스코를 사부로 모신 프란치스칸들이 그를 따라 태양을 찬미했다.
앙코르 요청 때는 합창단 곁으로 성심원 본당 유의배(알로이시오) 신부가 함께 애창곡 '타향살이'를 불렀다. 1946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유 신부는 1976년 한국에 입국한 뒤 1980년부터 성심원 성당 주임신부로 소임을 맡아 한센인과 중증 장애인 곁에서 더불어 살고 있다. "타향살이 몇 해 던가 손 꼽아 헤어 보니~" 타향살이가 울리는 동안 서로에게 한센인과 장애인,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고향 지기가 됐다.
이어서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성 프란치스코 기도가 뜨락에 세워진 성심원에서 '평화의 기도'가 울리며 밤은 깊어졌다.
다음 날인 7일은 가톨릭 전례에 예수성심대축일로 성심원 개원 기념일이기도 하다. 천주교 수도회인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가 1959년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한센인을 위해 산청에 보금자리를 만든 날이다. 이날 성심어울림축제는 성심원 개원 65주년 예수성심대축일 미사와 축복식 '마을공동체, 그리고 사람살이' 특별세미나, 초여름 밤의 음악회(그룹 동물원 콘서트) 순서로 열렸다.
6개 부산·경남 지역 가톨릭정착마을 한센인들의 한마음 잔치가 함께 열렸다. 참가한 이들은 성심대축일 전례가 열리는 요양원 성당으로 가기 전, 입구에 있는 성심원 역사관에 들른 이들은 빛바랜 사진 속에서 마치 보물찾기 옛 추억을 더듬었다.
열 살 무렵 성심원에 와서 3년 동안 생활했다는 경남 거창에서 온 로사씨는 '어린이날 즐거운 소풍 성심학교 1963.5.5'라 적힌 사진 속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웃과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성심원 역사관'을 둘러보던 한센인들은 이제는 말할 수 있는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며 마치 자기 일처럼 회상하기도 했다.
요양원 성당에서 유덕현(야고보) 아빠스(한국 천주교 남자 수도회 사도 생활단 장상연합회 회장)의 주례로 미사 전례가 있었다. 유 아빠스는 "요즘 세상 사람들 마음은 영하 40도 냉동고"라며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의 불가마다.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말랑말랑한 참된 인간이 된다. 우리 가슴에 받아들이자"라고 당부했다.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이날 산청지역 신성범 국회의원과 함께 자리한 안철수(하상 바오로) 국회의원은 처음 성심원을 찾았을 때 남강을 가로지른 성심교를 건너며 아름다운 풍광에 놀랐다고 했다.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육지 속의 섬처럼 성심원은 사회에서 단절되고 고립됐다며 "세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유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인연이 있으며, 배우자 김미경 서울대 교수도 함께했다.
미사 전례와 개원 축하 공시 행사를 끝내고 참가자들은 세상과 성심원을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 '성심교' 앞 예수성심 상을 제막하고 축복했다. 원내 식당과 중정(中庭)에서 모두가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식구(食口)가 됐다.
식후 강당 앞 나무 그늘에서 부산·경남 가톨릭마을 주민 윷놀이 대회가 열렸는데 노래방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실룩이며 일상 속 고단함을 잠시 잊고 윷 하나하나에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 1등은 김해 계림농원이 차지했다. 1등부터 꼴등까지 상금은 모두가 같았다. 순위를 겨루는 것은 흥을 돋을 뿐, 모두가 즐기면 그만인 윷놀이였다.
윷놀이가 끝난 뒤 강당에서는 인구 소멸에서도 예외가 아닌 성심원의 나아갈 '마을 공동체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김호열 목사의 함양 두레마을 소개와 실상사 주지 승묵스님의 실상사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김명철 화목한의원장의 치유마을과 산청의료사협, 이상충 성심인애원 과장이 성심원이 지향하는 장애-비장애 통합 마을인 대구 안심마을 관련 기조 발언이 있었다. 성심원 내에 개설한 화목한의원은 2001년부터 성심원에서 한의 봉사하는 김명철 한의사가 여기 어르신들과 마지막까지 같이 하겠다는 다짐의 결실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는 성심원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서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박레아씨는 "이곳이 마을 주치의가 있는 의료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외부에서 이곳을 찾을 수 있는 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시설에서 만드는) 카페도, 파크골프장도 잘 됐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덧붙였다.
저녁에는 김병찬 전 KBS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산청·함양 지역민이 만든 빈둥밴드와 손송이 가수, 스님과 목사, 신부, 수도자 등이 모인 지리산종교연대 중창단과 동물원의 콘서트가 이어졌다.
음악회가 열리는 은행나무가 있는 뜨락 곳곳에는 돗자리를 펼치고 삼삼오오 모여 감미로운 음악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들도 있었다. 진주에서 아내와 함께 찾은 정원각씨는 매점 생맥주에 노릿하게 구운 노가리 등을 안주 삼아 깊어져 가는 초여름 밤의 정취를 누리기도 했다. 일부 생활인은 흥에 겨워 어퍼컷을 날리듯 하늘에 두 손을 치켜들고 춤을 추기도 했다.
축제에 처음 왔다는 유복순씨는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았다며 '마을공동체 그리고 사람살이'가 잘 이루어가시길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번 축제를 통해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한 것이 큰 성과"라고 한 엄 원장 수사는 "곧 화덕피자 카페와 파크골프장이 개장되면 정말 재밌고 신나는 마을공동체 사람살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며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했다.
동물원의 노래 '변해가네'가 성심원 밤하늘에 울리듯 한센인들의 공동체였던 성심원은 이제 과거를 배경으로 새로운 바람이 덧입혀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성심원은 계속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