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들은 이 전기가 어디서 나는지, 어떤 희생에 의해서 내게까지 오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기는 스위치 하나로 언제나 필요에 따라 쓸 수 있는 것으로만 압니다. 정책적 차별과 불평등이 이면을 지워 나와 밀양이 연결돼 있음을 감각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경남 밀양 영남루 맞은 편에서 김은정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의 말이 굵은 빗방울을 뚫고 울려 퍼졌다. 이어 김 운영위원은 이어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비판하며 "누군가의 눈물을 타고 수백 킬로미터까지 전기를 수송하는 부정의한 에너지 구조는 이제 거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진행된 '밀양 희망버스' 행사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의 풍경이다. 이날 밀양에는 비가 오는 날씨였음에도 10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사람들이 서울·대구·광주·부산·울산을 비롯한 전국 15개 지역에서 총 20대의 희망버스를 타고 모였다. 10년 전인 지난 2014년 6월11일 정부가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을 행정대집행 한 것을 기억하고,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이뤄낼 것을 결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희망버스를 탄 한 서울 시민은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이 아름다운 풍경이 밀양과 같은 지역의 눈물을 타고 오는구나 생각했다"며 "나 혼자만 안온하게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참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정당 활동가도 "이번에 밀양 희망버스 슬로건이 '전기는 피와 눈물을 타고 흐른다'인데, 그 슬로건을 보고 좀 울컥했다"며 "밀양을 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풍요가 누구의 피와 눈물 위에서 이뤄지는 풍요인지 기억하게 되는 것 같아서 참여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밀양은 서울의 전기를 위해 짓밟혀도 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연대자들, 송전탑 마을 5곳 방문
"밀양 어르신들 연세 많아 쇠약해졌지만… 연대자들 있어서 '송전탑 뽑힐 것' 믿어"
밀양에 도착한 이들은 먼저, 버스별로 흩어져 초고압 송전탑이 세워진 밀양 여수·고정·평밭·용회마을과 경북 청도군 삼평리를 비롯한 5개 마을 현장을 각각 방문했다. 이중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을 방문한 이들은 마을에 건설된 121번 철탑 앞에서 모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해당 송전탑은 2014년 6월11일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면서 세워졌다.
이날 이곳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한 정수희 밀양송전탑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송전탑으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는 향후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활동가는 "이 송전선로는 신고리 3·4호기의 전기를 보내고 있는데 지금은 이 선로에서 보낼 수 있는 양의 10~20% 정도의 전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며 "그런데 신고리 5·6호기가 2~3년 내로 완공되면 이곳의 송전율이 최대 40%까지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신고리 5·6호기에 이어 신고리 7·8호기까지 더 짓겠다고 한다"며 "신고리 7·8호기까지 짓게 되면 송전탑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벌써 부터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밀양) 어르신들의 연세가 너무 많고 많이 쇠약해지셨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은 '우리는 지지 않았다. 송전탑은 뽑힐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아나. 여러분들, 연대자들이 있지 않나. 끝까지 함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어 연대자들이 나와 발언에 나섰다. 한국YWCA연합회 한 활동가는 "저에게 밀양은 미안함이다. 제가 쓰는 전기 때문에 저 대신 고통을 받고 있어서다"라며 "제가 쓰는 전기 에너지를 줄이고, 전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2014년에 태어났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아이는 "나에게 밀양은 고마운 곳"이라며 "저 대신 싸워주셨고, 기후위기가 오면 원자력발전소가 터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 옆을 지나가던 한 주민에게 송전탑이 불편한지 묻자 그는 "말을 못한다. 저 소리가 얼마나 무서운데"라며 "바람 불면 빙빙 헬리콥터 날아 가는 거 같다. 아침 되면 전기 흐르는 소리도 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원전 확대 담은 11차 전기본 실무안 폐기' 주장도
마을 방문 뒤에는 밀양 영남루 맞은편에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결의대회에서 "윤석열 핵 폭주, 우리가 막아내자" "송전탑을 뽑아내자"와 같은 구호를 함께 외쳤다.
결의대회 행사장 주변에는 '765kV OUT',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와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결의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사람들은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자리를 지켰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밀양 용회마을에 사는 주민 김옥희씨가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김씨는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조금이라도 깨끗한 하늘을 남겨주고 싶고 후세들에게 떳떳한 할매·할배 되기 위해서 아직까지 버티고 있다"며 "우리 할매·할배들은 아무런 힘이 없다. 하지만 연대자들 때문에 힘 낼 수 있다. 전국에서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도군 삼평리 주민 이은주씨는 "지금 오는 비는 2014년, 아니 그 전부터 우리 주민이 흘린 눈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 눈물이 결코 슬프지 않다. 이렇게 많은 연대자들이 또다시 찾아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비는 다시 한 번 탈핵, 탈송전탑을 위해 같이 일어나자는 의미라고 붙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가 지난 5월 말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 반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11차 실무안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핵산업계의 이익만 대변하는 계획이며, 부풀려진 전력 수요에 기반한 계획은 결국 발전소와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의 피해와 희생을 반복하겠다는 것일 뿐, 결코 기후위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다.
그밖에도 이들은 ▲밀양 행정대집행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김수환 경찰청 차장(당시 밀양경찰서장)의 주민·국민에 대한 즉각 사죄 ▲밀양과 청도 초고압 송전탑 철거와 동해안-신가평 초고압 손전선로 건설 계획 즉각 철회 ▲전력과 생산과 수송·소비 과정에서의 정의로운 전환 등을 요구했다. 이후 이들은 무대 공연을 등을 진행한 뒤 오후 6시쯤 행사를 마치고 해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리의숲'(forv.co.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