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방용철 및 김성태, 안부수 전문진술의 원진술자인 김성혜, 김영철, 리호남의 각 진술은 그 진술을 하였다는 것에 허위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진술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외부적인 정황도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 이화영에 대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거의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9년 6개월 중형을 선고한 가장 중요한 근거는 김성태-방용철-안부수 3인의 '일체된 말'이었다. 재판부는 더 나아가 이들이 전하는 북한 인사의 발언(전문진술)에까지도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판부가 전문진술로 인정한 북한 측 인사의 발언은 김영철 조선아태위(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 송명철 조선아태위 부실장, 리호남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등이다.
전문진술이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라고 제3자가 전하는 것으로, 이런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재판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만 엄격히 허용되는데, '북한' 등의 단어가 종종 등장하는 공안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치인의 뇌물 같은 특수사건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이재명 오면 문재인보다 더 크게..." 김성태가 전한 북한 인사 발언 모두 적시
<오마이뉴스>가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문 전문을 확인한 결과 재판부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방용철 전 부회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의 진술에 거의 전적으로 신뢰성을 부여했다. 판결문 곳곳에 세 사람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일관되며 상호 부합"하며 "진술 자체 또는 전제사실·인정사실을 비롯해 객관적 사실관계와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점, 허위 진술할 뚜렷한 동기도 찾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그 신빙성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렇게 세 사람의 진술로 이 전 부지사의 반대 진술을 배척한 재판부는 이들이 전하는 북한 인사들의 발언에도 증거능력을 인정해 이 전 부지사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했다. 재판부는 "방용철 및 김성태, 안부수의 진술 중 김성혜, 김영철, 리호남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부분은 진술 내용인 사실이 요증사실에 해당하여 전문진술로서 증거능력이 문제된다"면서도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이 실제 만났고, 진술 경위에 특별히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재판부가 인정한 전문진술은 꽤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갑자기 (김성혜가) '피고인(이화영)이 전에도 약속을 어겼는데 이번에도 어겨가지고 입장이 난처하다'고 말하였다. 그 옆에도 박철은 '그게 김 회장의 잘못이 아닌데, 굳이 김 회장한테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 뭐 있냐'고 이야기했었고 '경기도가 이렇게 약속을 어기면 자기들이 앞으로 경기도하고 같이 사업 진행했던 것을 못하겠다'고 하니..." (김성태의 진술)
"당시 송명철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방북하면 자신이 담당할 거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왔을 때는 공항에 김영철, 최룡해 둘 중에 한 명이 나왔는데, 만약 이재명 지사가 오게 되면 둘 다 공항에 나오고 문재인 대통령이 갔던 백두산에 갈 때에도 최신형 헬리콥터, 차량을 준비하겠다. 사람들 나와서 길거리에서 환영회 하는 것도 다 동원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왔을 때보다 더 크게 행사를 치르겠다'고 본인에게 약속하였다." (김성태의 진술)
국정원 문건보다 김성태-방용철-안부수 더 신뢰
통상 공안사건에서 북한 관련 전문증거를 인정할 때 구도는 국정원이 중간에 등장해 신뢰성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에는 북한 인사 관련 김성태 등의 전문진술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국정원 증거를 선택적으로 배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국가정보원 문건에는 '쌍방울그룹이 (이화영이 아닌) 안부수의 권유로 대북 의류지원사업 및 경협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라는 취지로 기재되어 있다"면서 "(하지만) 위 국가정보원 문건의 기재만으로 방용철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안부수와 쌍방울의 주가조작 가능성을 언급한 국정원 비밀 문건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했다.
"국가정보원은 2019년 1월경 안부수 주변인물의 주가조작 실행 가능성과 이에 따른 국가정보원 연루설 가능성으로 인하여 안부수와 협조관계를 종료한 것으로 보이는데, 위 문건에 의하더라도 '사실 여부를 떠나 의혹 제기 시 국가정보원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종결한다'는 것이고, 이후 국가정보원에서 대북사업을 이용한 주가조작 가능성을 검증하였다고 볼 정황도 뚜렷하지 않으므로, 위와 같은 국가정보원의 선제적 조치만으로 김성태 등의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재명과 두번 통화' 진술도 인정
한편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를 통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직접 통화했다는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도 재판부는 인정했다.
판결문에는 "(2019년 1월 17일 쌍방울-북한 아태위) 협약식 이후 이어진 만찬 자리에서 본인(김성태)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 제 돈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고, 이 전 부지사가 이재명 지사와 통화를 바꿔줘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 있다"라는 김 전 회장의 진술이 담겼다.
또 판결문에는 2019년 7월 25~2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태평화 국제대회 기간에 대한 김 전 회장의 진술도 담겼다. 당시 도지사 방북비용 300만 달러 중 70만 달러를 북한 측에 줬는데, "이렇게 돈을 준 상태에서 피고인(이화영)이 이재명 지사에게 전화해서 바꿔주어 통화를 하였는데 70만 달러를 줬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북한 사람들 초대해서 행사를 잘 치르겠다, 저 역시도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 서울 가서 인사드리겠다'는 정도로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강하게 반발했던 이 전 부지사 측은 금요일 판결 이후 월요일인 10일 즉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말 옥중노트를 통해 "쌍방울 직원들도 이전의 증언과 다른 증언을 했다"며 "삼인성호가 아니라 삼십인성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