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종합고등학교로 신입생 시절에는 모두 공통 교육 과정을 배우지만 2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 문과, 이과, 상과(취업반)로 계열이 나누어져 있었다.
2학년 취업반은 한 반이었는데, 여기에 모이는 학생의 면면을 보자면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 취업 전선에 빨리 뛰어 들어 돈을 벌고 싶은 학생,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등 실로 다양했다.
해님보다 빛나고 해사한 얼굴을 지녔어야 할 십 대 후반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사가 다사다난하여 달의 뒷면처럼 조금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우리가 잠시 몰두해 있던 행위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헌혈이었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신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여서 그랬을까. 우린 그 시절 낮에 헌혈을 한 후 백지영의 DASH를 들으며 게임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새벽이 다가오면 기차에 몸을 싣고, 정동진으로 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벌써 알아버린 인생의 쓴맛을 깊이 음미했다. 우울하고 미약했지만 그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옳다고 생각하는 행위가 피를 나누는 거였고, 그러고 나면 조금은 뿌듯해졌다.
몇 번을 이렇게 헌혈을 하다가 사달이 났다. 친구가 헌혈을 하던 도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팔이 시커멓게 멍이 든 것이다. 겁이 많았던 나는 너무 무서웠고, 그 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건강염려증이 도져 근거도 없는 감염에 대한 공포 때문에 헌혈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이십여 년이 흐른 후에서야 비로소 해사한 얼굴을 하고 겁이 없어진 나는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수영으로 풀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영장에서 만난 동갑내기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단 얘길 듣고 '우와, 멋지다! 대단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건 또 따라 해야 하는 심보라 친구가 알려준 '레드커넥트'란 앱으로 일정을 예약하고 헌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사용하는 일 중에, 이렇게 쉽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평소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쉽다는 신념을 지닌 나는 이웃과 세계 시민에 대한 연대를 몸으로 직접 하기보다는 각종 단체에 기부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해왔다.
그런데 내가 몸을 움직여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것도 8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30분만 투자하면 할 수 있다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뽑은 피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주니 일석이조 아닌가(혈액의 모든 성분을 채혈하는 전혈은 8주에 한 번 30분 정도 소요되고, 성분 헌혈의 경우 50분 정도 걸리지만 2주에 한 번 할 수 있다).
올 초 헌혈을 하고 나서 일정이 맞지 않아서, 또 약을 복용하고 있어서 몇 번이나 예약한 것을 취소하며 여태껏 헌혈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14일이 '세계 헌혈자의 날'이라 수업이 끝난 후 공가를 쓰고 헌혈을 하러 가기로 했다(공무원은 헌혈 시 공가가 가능하다).
나이스로 공가를 올리고 나니 교감 선생님이 헌혈하는 분 존경한다며 따뜻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쉬는 시간에 교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교감 선생님 본인도 하고 싶은데 B형간염 보균자라 하지 못한다며 아쉬워하셨다. 좋은 날 홍보 많이 하라고 하셔서, 전체 선생님들께도 손잡고 헌혈하러 가자고 메신저로 쪽지를 돌리는 오지랖을 부렸다.
앞자리 이 선생님도 하고 싶으나 빈혈이라 못 하시고, 다른 교무실의 황 선생님도 이상 지질혈증이라 함께 하고 싶어도 못하신다고 눈물의 이모티콘을 보내오셨다. 생각해 보면 친한 지인도 빈혈이라 못한다 했다. 피를 나누는 것이 남을 돕는 두 번째로 쉬운 방법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에게 이렇게 피를 마구 나눠줄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지닌 내가 복이 많은 거였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십 대 시절 헌혈을 함께 했던 친구도 여전히 열심이고, 이십 대 초반인 남동생은 벌써 29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여동생도 벌써 13회나 헌혈을 했다. 주변에 이리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많은 것 또한 내 복이다. 얘들아, 우리 다 같이 금요일에 헌혈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