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전문가로 세상 사람들을 만나면서 요즘 부쩍 ESG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와 교계는 상대적으로 ESG 무풍지대로 느껴진다.
ESG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며 마음만 먹으면 간단한 검색으로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시대 핵심 의제임을 파악할 수 있다.
초등학생까지 포함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을 ESG를 매개로 만나면서 자주 질문을 받고 거의 매번 말해야 하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왜 갑자기 ESG가 부상했냐'이고, 또 하나는 'ESG가 언제까지 갈까'이다. ESG가 혹시 일과성 유행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ESG가 결코 갑자기 부상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이 흐름은 쭉 간다. 물론 흐름의 부침은 있을 것이다.
사회 속에 교회가 존재하는 만큼 교회 또한 이러한 흐름 바깥에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신뢰와 내부의 신학 동력이 동시에 상실되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19를 만나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에 휘말려 들어간 한국 교회에 ESG는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다.
ESG신학 혹은 ESG교회는 생태교회와 결을 같이 하지만 다른 맥락을 갖는다. 당연히 생태교회 또는 녹색교회의 지향은 올바르다. 지구온난화를 중심으로 전면화한 기후위기, 미세플라스틱 등 엄연한 전지구적 문제를 외면한 채 신앙생활만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사회적 관점으로나 신앙의 관점으로나 정당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외면한 채 개인의 신앙생활을 경건하게 하고 성도의 교제에만 힘쓰도록 권면하는 목회는 존중받지 못할 것이며 그런 교회는 안팎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점차 쇠퇴할 것이다.
아주 편협한 기복신앙에 매몰돼 있지 않다면 교회가 어떤 형식으로든 교회를 넘어선 생태 문제에 관여하고 신학적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교회 안'의 폐쇄성을 이런 '교회 밖'의 연대성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시대 상황은 교회를 어떤 식으로든 개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비록 교회가 원하는 개혁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미래가 더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교회는 ESG 중에서 E를 수용한 상태다. ESG에서 핵심은 E이지만, E는 S와 G의 도움 없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본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문제의식은 옳지만, 툰베리 식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환경 문제를 환경적 고려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게 ESG 관점이다.
생태교회라 해도 대체로 문제의식이 툰베리 수준에 도달하기 힘들 것이다. 생태교회의 순기능이 엄연하지만, 잣대를 가혹하게 들이대면 싼값에 모종의 기후 면죄부를 판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 당연히 칭찬받을 만하다. 강조점은 일회용컵을 안 쓰고 태양광 패널을 까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창조세계 보전'이라는 전래의 구호를 미지근하게 웅얼거리는 것으로는 번영신학에 물들고 세속 커뮤니티로 전락한 적잖은 기성 교회에 타격을 줄 수 없다. 생태적 교회는 교회의 근본 구조를 변경함 없이 크리스마스 장식 바꾸듯 생태적 느낌의 휘장을 드리우는 것으로 달성할 수 없다. 생태교회를 넘어서 ESG교회로,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개발 수준의 환골탈태를 기획하지 않는 한 한국 교회의 소멸은 기정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재개발에 훨씬 못 미치는 개념인 리모델링은커녕 유지보수도 하지 않으며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생태적이고 ESG적인 근본 전환 없이는 교회의 중장기적인 생존을 담보할 수 없음은 물론 교회가 생태 및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에 기여할 수 없다는 데서 어려움이 중첩된다. 스스로에게 유익하지 않을 뿐더러 타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교회를 '교회'라고 불러야 할까.
ESG교회는 길을 잃은 한국 교회에게 주어진 새로운 침로일 수 있고, 새로운 부흥의 발판일 수 있다. ESG교회의 구체적 모습을 그리는 논의를 이제 시작할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이 글은 기독교계 협동조합 언론 가스펠투데이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