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역네거리 옛 대전부청사 앞 지하상가 공동구 위에는 조형물이 하나 있다. 옛 대전부청사에 오랜 기간 유치권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위치가 구석진 탓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도 이 조형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조형물은 2017년에 설치된 '6월항쟁 기념탑'으로 "1987년 6월 함성, 독재타도 민주쟁취"라는 문구가 쓰여져있다.
이곳에 37년 전 항쟁의 주역들이 모였다. 지난 10일 오후 7시 우리들공원에서 진행된 제37주년 6·10민주항쟁 대전기념식 및 문화제에 앞서 이곳에 모인 항쟁의 주역들은 당시를 회상했다.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병국 이사장(당시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중앙위원, 대전 민가협 간사)은 "당시 치열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이 바로 6월 정신이다"며 민주주의가 퇴보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가장 고령인 김윤환 목사(당시 매포수양관 관장)는 당시 치열했던 항쟁과 일찍 세상을 등진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중앙위원이었던 오원진, 강구철, 충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윤재영을 떠올렸다.
전 대전민주평화광장 김필중 공동대표(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충남본부 총무위원장)는 "대전의 87년 항쟁은 대단했다. '고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살인 종식을 위한 범도민대회'가 87년 2월 2일 전국 동시 다발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행사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대전은 행사를 강행했고,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87년 최초 가두시위를 바로 대전이 했고 이에 전국회의가 열리면 다른 지역 참가자들이 대전을 높게 평가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완규 지도위원(당시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 중앙위원)은 "수많은 항쟁 참가 인파가 경찰을 몰아내고 시내를 장악했다.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항쟁에 임했고, 80년 광주와 같은 항쟁도 각오한 투쟁이었다. 바람도 우리를 도와 최루탄 연기가 되려 경찰 대열 쪽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기억을 생생히 전했다.
당시 충남대, 목원대, 한남대 학생으로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도 "학생들만의 시위가 아니라 시민들 모두가 함께 했던 시위로 기억된다. 저녁에 시위가 마무리될 때면 직장인들이 "학생들 내일 만나"하며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2주 넘게 시위가 이어졌지만, 학생들도 시민들도 한데 어우러진 시위였다"고 기억했다.
기념탑은 6월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2017년 6월에 시민들의 모금을 비롯하여 대전광역시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지원으로 세워졌다. 조성칠 전 대전시의회 부의장은 "기념탑을 보기 좋은 자리에 세우고 싶었는데, 중앙로역네거리 주변에 기념탑을 세울 수 있는 부지가 없었다. 그래도 항쟁이 치열했던 장소에 세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지하상가 공동구 위에 기념탑을 설치했다"며 기념탑 설치 당시 아쉬움을 전했다.
실제로 6월항쟁 기념탑은 구석진 위치뿐만 아니라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주변 공사 자제나 대형 쓰레기봉투가 기념탑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날도 공동구 입구의 부러진 타일이 탑 앞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날 기념탑 앞에서 당시를 회상했던 항쟁의 주역들은 6월 정신을 잘 계승하고 기념탑의 관리 문제 또한 잘 해결해 보자는 의지를 다진 후 오후 7시에 기념식장인 우리들공원으로 이동하여 제37주년 6·10민주항쟁 대전기념식 및 문화제에 참가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