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은둔 청년', 사회적 연결망 없이 단절됐다는 뜻의 '고립',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한 '은둔' 그리고 앞선 두 단어와 묘한 이질감을 가진 '청년'을 한데 묶어놓은 말이다.
고립 은둔 청년이었던 H는 스물 일곱 살이다. 지금 그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다. 사람들은 H를 배려심이 깊고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자와 H의 인연도 그의 관심에서 시작됐는데, 동갑이라는 사소한 공통점을 그가 찾아내 지금까지 친구의 연을 이어온 것이다. H는 이러한 변화의 시작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에서 찾는다.
지금부터 풀어낼 이야기는 한때 세상에 거리를 두고 살던 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
리커버리 센터를 만나기까지
"처음 센터를 찾아갔던 게 2021년 7월쯤?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여름이었던 것 같아. 그때 나는 대학에서 휴학과 복학을 몇 번 반복하다가, 다시 돌아올 의지를 잃어버린 상태였어. 군대도 정신과 사유로 사회복무 판정을 받았는데, 신청도 안 하고 있었고.
보통 일과는 집에서 게임 하는 게 전부고, 가끔 알바를 구해도 금방 그만뒀어. 전반적으로 삶의 의욕이 떨어진 시간을 보냈지. 인간관계도 거의 없었고 1~2주에 한 번 외출하는 것 외에는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어."
H가 처음부터 고립을 택한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고립될 만한 이유'로는 그의 은둔생활을 설명할 수 없다. H의 어머니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또 사립대 체육 교육과 교수인 아버지의 핏줄을 따라서, 그는 흔히 말하는 '근수저'를 타고났다. 공부에도 재능이 있어서 소위 명문대 출신이란 간판도 갖고 있다.
"부모님 영향으로 서울대 체육대학을 가려 했었어. 그 학교는 실기보다 성적이 중요해서 열심히 공부했지. 흔히 말하는 교문 열고 들어와서, 제일 늦게 닫고 나가는 학생?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딱히 없었어. 운동을 하면 근육이 달라붙는 게 눈에 보이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눈에 바로 보이니까 동기부여가 됐어.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수능 성적도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어. 서울대 체대는 물론이고 다른 원하는 학교도 골라 갈 수 있었지. 그런데 막상 원서를 넣을 때가 되니까 '내가 정말 체대를 가고 싶나?' 회의가 생겼어. 내가 원래 철학, 음악 같은 교양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대 인문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을 설득하기 힘들어서 결국 연세대 상경대에 진학하게 됐어."
H는 왜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을까.
"어릴 때부터 가족에게 내 얘기를 하는 게 힘들었어. 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난 거의 외동처럼 지냈어. 아버지는 항상 바쁘셨어. 어머니가 강압적인 분이시거나, 큰 갈등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야. 그런데 몇 번 부모님 뜻을 거스르는 얘기를 했을 때, 내 의견이 관철됐던 적이 없었어. 학습된 무력감 같은 게 생긴 것 같아. 그 이후 감정적으로 부모님과 다툼이 잦았고 회피 성향도 심해졌지. 그래서 결국 입시에서도 내가 원하는 선택을 못 하게 된 거야.
아무튼 대학에 들어갔는데, 진로도 맞지 않고 인간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많이 느꼈어. 고등학교처럼 가만히 있는다고 친해질 공간이 아니니까. 과에서 가만히 있으면 얘기를 하고 친해질 사람이 없었고, 관심 있는 버스킹이나 재즈동아리도 들어가 봤는데 여전히 관계를 맺기 힘들었어. 이런 문제들이 겹치면서 수업도 가지 않고 기숙사에서 게임만 하다가 밤늦게 자는 일상을 반복했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회의감도 들었지만, 왠지 주어진 삶을 그대로 따르기는 싫었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할 '누군가'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걱정해 주셨는데, 앞서 말했던 관계적 껄끄러움 때문에 속내를 깊게 드러내진 못했어. 그냥 적당히 괜찮다고 말해 넘겼어. 그러면서도 어디서라도 해결책을 찾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혼자 이곳저곳 뒤져봤던 것 같아. 철학에 빠져보기도 하고, 정신과를 방문해서 가벼운 우울증을 진단받기도 했어.
약물치료도 했는데 차도가 없어서 병원을 몇 군데 옮겨봤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어. 결국 어머니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 고민을 많이 하다가, 청년재단에서 운영하는 리커버리 센터를 내게 알려주셨어.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어. 거절할 의욕조차 없어서 그냥 끌려갔다는 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다. '고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공생으로'라는 슬로건을 따라서, 자립 준비 청년과 고립 은둔 청년의 회복을 돕는 사단법인이다.
갓 태어난 새끼 고래는 숨 쉬는 방법도, 헤엄치는 방법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미 고래와 무리의 다른 고래가 물 위로 올려주고 헤엄치는 방법도 알려주며 그들을 돕는다. 흔히 사람들은 고립 은둔 생활을 그들의 '선택'이라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충분한 선택지를 주지 못했다.
센터에는 공동생활 숙소가 있다. 그곳에서 7~8인의 크루가 함께 지낸다. 크루는 영어 'crew'를 음역한 말로, 센터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을 한 배를 탄 승조원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평일에는 센터에 출석하고, 주말에는 숙소에서 함께 부대끼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개인주의 시대에 다른 사람과 생활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크루들에게는 그렇게 불편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 또한 성장의 과정이다. 또 센터에서 언제나 자리를 지키며 그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는 코치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다고 H는 말한다.
"센터에서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생활 패턴이 바뀐 것. 원래 새벽 늦게 자고 오후 2시쯤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해서 햇빛을 볼일이 잘 없었지. 그런데 숙소에서는 오전 9시에 일어나서 산책하고, 일과 중에 몸을 움직이니 밤 되면 저절로 잠이 왔어. 정말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정상적인 삶이었지.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집으로 돌아가서도 유지될 것 같지는 않았어. 그때만 해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활력이 없었거든."
센터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쿠킹런치'가 있다. 크루들이 매일 점심마다 모여 함께 밥을 만들어 먹는 활동이다. 메뉴 선정부터 장보기, 요리 후 뒷정리까지 모든 과정에 빠짐없이 함께한다.
이처럼 프로그램 하나에도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부여하는 게 리커버리 센터만의 특징이다. 매 끼니를 준비한다는 것이 번거롭고, 또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요령을 부리고 일을 대충 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는 감정이 상하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크루들은 관계를 배우고,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볼 수 있다.
매주 금요일이 되면 크루들은 야구장으로 향한다. 올해로 창단 5주년을 맞이한 '리커버리 야구단' 훈련을 위해서다. 먼 거리를 승합차로 이동하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몸을 움직이기가 쉬운 일은 아니기에, 아직은 어색한 몸짓으로 연습에 임한다. 왜 하필 야구라는 스포츠를 선택하게 됐을까. 종목에 대한 접근성도 낮고 경기 한 번을 위해 들이는 품도 크지만, 오히려 그러한 불편함이 있기에, 리커버리 센터는 야구를 정식 프로그램으로 택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절대 혼자 할 수 없거든. 또 야구 배트나 배팅 티처럼 이런저런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훈련도 한정적인 장소에서 밖에 못 하니까 마음먹고 하기가 상당히 번거롭지. 그럼에도 야구로 종목을 정한 이유는 그 불편하고 귀찮은 지점을 극복하는 경험이 우리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야."
센터를 통해 얻은 변화들
"그렇게 1년 정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어떤 코치님이 내가 변했다는 얘기를 해줬어. 처음엔 얼마 못 가서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꽤 오래 지속됐다고 해. 원래 나는 귀찮은 걸 싫어하고,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남들의 눈치를 잘 보고, 머릿속으로 핑계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었지.
그런데 센터에서 지내면서 내가 남들을 위해 수고를 하는 이타심과 책임감이 생긴 것 같아.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게 보였나 봐. 내가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센터에서 상주하신 코치님들의 모습 때문이야. 나한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일상에 담긴 섬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본받고 싶고, 자기 중심성을 깨트리고 싶었어. 그때부터 나도 코치로 다른 누군가를 섬기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마음속에 심어졌어."
H는 지난 4월부터 코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고립 은둔 청년으로 센터에 와서,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를 맺고, 이제는 베푸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리커버리 센터에는 H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을 몇 명 더 찾아볼 수 있다. 자립은 결코 홀로 서기 위함이 아니다. 개인이 성숙한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삶을 이끌 수 있게 돼 다른 누군가와 '공생'하는 것이 자립의 진정한 목표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 일은 4월부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 건 이번 주가 처음이거든. 처음에 코치직을 제안받았을 때는 오히려 부담이 없었는데, 이제 정말 눈앞에 맞닥뜨리니까 '잘할 수 있을까?' 이런 불안감도 생기는 것 같아. 물론 센터에서 지금까지의 여정 그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얻은 게 정말 기쁜 일이라 생각해. 아직 부족한 것도 많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점점 찾아보려고.
고립 은둔 청년을 위해서는 센터라는 공간도 필요하지만, 그곳에서 함께하는 코치의 역할이 중요해. 언제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정말 크거든.
처음에 나는 크루로 오래 있었으니까, 코치가 돼서도 하는 일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고민도 있었어.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게 오히려 좋은 거 같더라고.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항상 하던 대로 자리를 지켜주는 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니까."
한때 고립 은둔 청년으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어떤 선과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려 해. 사실 그 기준이라는 건 우리 사회가 만든 것이야. 그러한 선과 기준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사람이 고립 은둔 청년이라고 생각해.
이것은 분명히 사회적 문제야.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버리면 그건 잘못된 진단인 거지. 고립 은둔 청년은 스스로 문제를 빠져나갈 힘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들을 방치한다면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안으로 파고들게 돼 있어. 편견을 거두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해.
또 우리에겐 사람들과 같이 부대끼고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해.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실수하고 실패도 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야지. 취업이나 인간관계,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좌절에서 끝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붙잡고 일어서거나 잠시 걸터앉을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해."
H는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있을 쿠킹런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메뉴는 잔치국수. 30인분가량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메뉴를 미리 정하고 전날에 사전 작업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H의 머릿속은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재료를 손질하려 애쓰는 모습과,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행복해할 크루들의 표정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난다고 그는 말한다. 고립 은둔하던 시절에 H의 머릿속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언제나 자신을 향하던 시선이 스스로를 찌르고 어둡고 좁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시선은 다른 누군가를 향한다. 나를 가득 채우던 자리를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때, 비로소 자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을 보기 위해 근처 마트로 향하는 H의 발걸음은, 그 어떤 순간보다 더 자유로워 보였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4일에 이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