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샘이 고장났다. 글을 읽다 하품을 하면 차오르는 좁쌀만 한 눈물이 자연스레 사라져야 마땅한데 언젠가부터 그대로 고인 채 볼록렌즈가 되었다. 하품이 연이어 나오기라도 하면 눈물은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우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처음엔 눈물이 왜 안 없어지는지를 몰라 손등으로 대충 훔치다가, 그래도 물기가 남기에 흡수력이 더 나은 옷소매로 훔치다가, 기어이 휴지로 꾹꾹 눌러내고 나서야 글씨가 제대로 보이는 일들이 잦아졌다.
매일 글을 읽어야 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울게 된 나는 동네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내 얼굴을 네모난 기계 위에 올려놓게 하더니 진찰 결과 눈물샘이 막혔으니 큰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큰병원에 가보세요'는 환자가 죽을 병에 걸렸음을 암시하는 대표적 대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분위기에 화답하듯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큰병원에 갈 만큼 제가 그렇게 심각한가요?'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긴 막대기를 들더니, 이런 걸 코 안으로 넣어서 뚫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선 어렵다고 했다. 그 어려운 걸 여기서 자기가 해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면 난 굳이 큰병원까지 안 가고 그 의사에게 내 눈물샘을 맡기려 했지만, 의사는 나한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큰병원에 간 결과, 눈물샘이 아직은 반만 막혔으니 약물치료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반전이 있었다. 눈에 안구건조증이 있는데 눈물이 항상 고여 있어 오히려 잘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안구건조증 특유의 뻑뻑한 증상을 느낀 적이 없던 터라 더 놀라웠다.
아, 몸의 놀라운 자체치유능력이여! 나의 눈이 눈물샘을 막아 수분을 확보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단 생각을 하니 감동의 눈물이 차올랐다. 앗, 또 수분 보충 완료. 인간의 뇌는 늘 항상성을 유지한다더니, 병원에 왠만하면 가지 않는 나를 잘 아는 내 뇌가 내 몸뚱이를 열심히 관리중인 듯하다.
엊그제 남편 김관장의 선배님 노모 팔순 잔치에 갔다. 돌잔치처럼 귀여운 아가도 없고, 돌잡이 같은 이벤트도 안 하고, 가장 중요한 상품 추첨도 없이 귀 따가운 뽕짝만 불러대는 통에 지루해진 나는 또 하품과 함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해결이 안 돼 휴지를 동원해 계속 닦아내고 있는데, 같이 갔던 김관장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의 팔순 잔치에 와서 뭘 그렇게 울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감성 충만한 하객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물샘이 고장나서 불편하단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그덕에 안구건조증을 못 느끼고 살 수 있으니 고장난 눈물샘이 복덩이처럼 느껴진다. 아니, 안구건조증이 있는 눈에는 고장난 눈물샘이 특효약이라고 주장할 판이다. 큰불은 맞불로 끈다는 말이 있다. 맞다, 병도 병으로 고쳐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인생첫책 출판사 블로그에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