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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목회자 모임에서 탁구대회를 했다. 물론 상품도 내걸었다. 소금도 있었고 고구마도 있었고 김과 산양유도 있었다. 그중에는 원목도마도 있었다. 최규형 목사가 직접 나무를 다듬어 만든 나무도마였다. 그 분에게는 도마를 만드는 특별한 재주와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종종 그런 도마를 만들어서 선물도 하고 판매도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혹시 나무도마는 물에 젖어 있어서 세균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더욱이 베트남이나 태국이나 중국에서 수입한 원목 도마에서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된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플라스틱 도마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드 캠퍼스의 연구팀에 따르면 대장균 같은 질병과 관련된 세균은 나무도마보다 플라스틱도마에서 더 오래 살아 남았다. 생고기를 사용한 후 물로 세척한 실험에서도 플라스틱도마가 나무도마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살모넬라균을 증식시켰다."(76쪽)
 
장원철의 <주방 오디세이>(글항아리·2023)에 나오는 내용이다. 플라스틱도마보다 나무도마가 살균력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 책은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우는 모든 도구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젓가락과 숟가락, 칼과 도마, 냄비와 밥솥, 프라이팬과 밥상, 냉장고와 유리제품, 도자기 그릇과 스테인리스 그릇 그리고 식기세척기 등.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 칼과 도마, 젓가락과 냄비가 품고 있는 삶의 풍경들, 장원철(지은이)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 칼과 도마, 젓가락과 냄비가 품고 있는 삶의 풍경들, 장원철(지은이) ⓒ 글항아리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몇 권의 책을 쓰고 번역하다가 장사를 시작했다. 남문 그릇도매상가에서 5년간 업소용 그릇과 주방 도구 등을 판 게 그것이다. 물론 그릇 말고도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등 음식점이 필요한 온갖 물건을 다뤘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꺼낸 이야기들을 버무려서 맛깔나게 쓴 게 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중국의 젓가락이 우리보다 크고 일본은 우리보다 작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니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그는 이렇게 소개한다. 중국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반찬을 상 가운데에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반찬을 집기 때문에 젓가락이 길고, 일본은 독상 형태로 각자가 자기 먹을 반찬을 집기 때문에 그게 작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중간 유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듯 여러 가지 재밌고 새롭게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중에는 여성들이 읽으면 깜짝 놀랄 만한 내용도 있다. 천명을 타고난 고귀한 왕가에서는 제사 음식에 여인의 손끝이 닿는 걸 무례하고 해괴한 일로 봤다는 게 그것이다. 지금도 명문가에선 그 전통이 남아 있어서 몇몇 음식은 종손이 직접 만든다고 한다. 그런 종갓집에 시집가는 여성들이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는 걸까?

물론 그런 가치관이 민가로 가면서 점차 알맹이가 빠졌다고 한다. 모든 음식을 여성의 노동으로 마련하고 제사상에 진설하는 것만 남자들이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살짝 아쉬운 대목이 그 부분이다. 언제 어느 과정에서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까지 추적하기에는 사료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 자체를 별로 대수롭게 생각할 게 아니라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밥 짓기에서 해방된 전기밥솥의 역사에 대한 부분도 실감나고 , 1970년대에 김치 볶음밥이 유행하기 시작한 이유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더욱이 여름철이면 빙수가 유행하는데 19세기 초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겨울에 채굴한 얼음을 어떻게 보관했는지 또 물이 얼 수 있는 곳에 부동산이 생긴 이유도 잘 설명해 준다. 이 책은 그야말로 '부엌에 관한 작은 역사'라 해도 손색이 없다.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 칼과 도마, 젓가락과 냄비가 품고 있는 삶의 풍경들

장원철 (지은이), 글항아리(2023)


#여성들의명절스트레스#김치볶음밥유행한이유#부엌에관한작은역사#장원철의주방오디세이#플라스틱도마나무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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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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