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항생제 내성 질환'으로 매년 약 70만 명이 사망하고 있으며, 이런 문제가 계속될 경우 2050년에는 그 수가 연간 1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극에서 다수의 항생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효소가 발견됐다. 나아가 이 효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규명됐다.
극지연구소(소장 신형철)는 14일 "페니실린의 '천적'은 남극에도 있었다"면서 "이준혁 극지연구소 박사 연구팀과 이화여자대학교 공동연구팀이 2020년부터 약 3년간의 연구를 통해 미생물 스테노트로포모나스 종(Stenotrophomonas sp.)에서 항생제를 억제하는 효소 'CESS-1(class A β-lactamase)'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극지연구소는 "항생제 내성 기작에 관한 연구는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신규 항생제 개발을 위한 기초 작업이며, 사회·경제적으로 막대한 가치를 갖는다"고 평가하면서 "신규 항생제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스테노트로포모나스 종'은 전 세계에 넓게 분포된 미생물로, 2012년 남극에서도 발견됐다. 최근에는 병원, 보건소 등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CESS-1'은 페니실린이 속한 계열(β-lactam 계열)의 여러 항생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효소이기에 위험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알려졌다시피 페니실린은 1928년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항생제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한 항생제 중 하나다.
이에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CESS-1 효소의 구조, 활성 조건을 확인해 페니실린을 비롯한 5종의 항생제와 반응하는 기작을 찾아냈다.
특히 연구팀이 발견한 CESS-1 효소가 중이염과 기관지염 등에 다양하게 쓰이는 'cefaclor 항생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이는 효소와 항생제 사이 결합 부위의 독특한 구조적 특징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준혁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남극 생태계는 춥고 고립된 환경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거듭하면서 인류에게 유익한 생명자원을 품게 됐다"면서 "남극에도 있는, 남극에만 있는 자연의 지혜를 배우고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해양수산부 연구과제인 '극지 유래 생물자원을 활용한 항생제 후보물질 개발' 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International Journal of Antimicrobial Agents> 저널에 지난 4월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