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정부 측 대리인이 진실화해위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고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관련기사 :
창원지법, 전향적 민간인학살 배상금 판결... "실질적 피해 회복")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정문식 부장판사, 사해정‧홍대훈 판사)는 창원‧진주유족회가 냈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피고(대한민국)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의 주장을 배척했다. 유족들이 법무법인 '믿음'을 통해 지난해 11월 소송을 냈고, 법원이 13일 선고했다.
재판부는 14일 나온 판결문에서 진실화해위가 2023년 7월 창원, 8월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했고 "조사보고서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자료가 된다"라고 판단했다.
반면 정부법무공단은 "과거사 청산을 목적으로 하여 주로 간접증거나 전문증거에 의존하여 내려진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만으로 이 사건 희생자들을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사건 진실규명결정의 근거 자료가 되었던 해당 희생자의 유족들 및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이 대부분 일치하고, 그 진술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인 데다가 희생자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및 희생자가 사망한 시기에 관하여도 모두 일치하여 진술하고 있다"라며 "진실규명결정에 의하여 확인된 사실들을 근거로 이 사건 희생자들이 피고 소속 공무원들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부당하게 학살되었거나 다치는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이 사건 진실규명결정에 의해 확인된 사실들이 신빙성이 없어 위 인정사실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경찰‧군인 등) 공무원들의 행위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생명권, 적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피고(정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해 이 사건 희생자들과 그 유족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밝혔다.
또 정부 측은 소멸시효(3년)가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위자료 액수와 관련해 재판부는 "희생자들 본인은 물론 가족을 잃은 박탈감,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경제적 빈곤과 대물림 등으로 말미암아 그 유족들이 겪은 막대한 정신적 고통", "상당기간 계속되었을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어려움", "불법행위의 내용과 정도, 불법의 중대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약 74년 이상의 장기간 세월이 경과하여 그동안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사정을 위자료 산정할 때 참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희생자 본인 1억원, 배우자 5000만원, 부모‧자녀 1000만원, 형제자매 500만원으로 위자료 액수를 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했다.
정부법무공단의 주장과 관련해 유족들을 대리했던 박미혜 변호사는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만들어 조사를 통해 진실규명 결정을 한 것이다. 진실화해위 1기 때는 대체로 조사보고서를 인정을 했지만 2기 때는 받아들이지 않고 전체 조사자료를 다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라며 "같은 정부인데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유족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은데 재판 지연으로 보여 우려스럽다. 이번 선고에서는 재판부가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