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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교통부 출입구 맞은편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세워졌다.
지난 5월 2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교통부 출입구 맞은편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세워졌다. ⓒ 김선재
 
지난 5월 24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6동 국토교통부 출입구 맞은편에 파란색 천막 한 동이 세워졌다. 천막에는 임시로 제단이 설치됐고 영정사진 여덟 위가 놓였다. 모두가 전세사기 희생자들이었다. 이날 '대전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 소속 회원 10여 명은 분향소를 차리고 고인을 추모하며 명복을 빌었다.

곧이어 점심시간이 됐다. 출입구에서는 국토부 관계자로 보이는 공무원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대책위 장선훈 공동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청사에 계신 공무원 여러분. 저희는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벌써 여덟 번째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저희 뒤로 그 8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분향소를 마련해 놨습니다.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내주셔서 그분들에게 꽃 한 송이 정도는 전달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추모에 돈이 들어갑니까"

5월 13일 전세사기 문제 주무부처인 국토부 박상우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실언을 쏟아냈다. "전세를 얻은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는 이른바 '덜렁덜렁' 발언이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 발언에 다시 한번 깊은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국토부 앞 천막 분향소는 국토부에 대한 항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향소가 차려진 3시간 동안 이곳을 들러 분향 헌화하는 공무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희는 덜렁덜렁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해야 저희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저희를 살려낼 방안을 마련해 주시겠습니까? 어제도 피해자 단 한 명도 없는 토론회를 개최해 놓고 '실효성이 없다. 이거는 실행할 수 없다. 선 구제를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렇게 반대만 하십니까?

3시간이 넘는 동안 분향소에 들러서 추모해달라고 그렇게 외쳤는데, 단 한 명도 와주지 않으셨습니다. 국토부는 누구를 위해 그 안에서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세입자들은 전세사기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가족들은 참담한 심정에 밥 한술 못 넘기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국토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추모를 해달라고 저희가 요구하는 게 돈이 들어갑니까? 아니면 세금이 들어갑니까? 선 구제를 반대하는 그 이유도 결국 세금인데 그 세금을 누가 냅니까? 저도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매달 월급쟁이로 생활하면서도 세금 한 번 밀린 적이 없는데, 제가 낸 세금은 부실 건설사를 살리는 데 쓰이고, 그에 1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으로 (저를) 살려달라고 요구하는데. 왜 그거는 반대를 하고 계십니까? 분향소에 들리셔서 단 10초라도 아니, 단 5초라도 묵념과 헌화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말 정부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85조 원을 풀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비용은 정부 추산 5조 원, 대책위 추산 5천억 원 정도이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는 피해자를 구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가진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을 주택도시기금으로 공공 매입하고, 최우선 변제금에 해당하는 보증금의 30%를 피해자에게 변제하는 방안이 골자였다.

하지만 피해자 일부 구제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에 대해 5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채권의 가치 평가가 어려운 문제 ▲ 가치를 산정한다고 해도 제시된 가격에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문제 ▲ 금년 주택도시기금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예산이 없는 문제 등이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이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개정안은 그대로 폐기됐다.
     
2023년 7월 2월 시행된 특별법은 2년을 시한으로 정했다. 이후엔 자동으로 효력이 사라진다. 특별법으로 피해를 구제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피해자들은 속만 끓이는 중이다. 지난 7일 장선훈 공동위원장을 만나 심경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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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통장 압류해봤자 잔액 '42원'... 바보라서 사기 당했겠나" https://omn.kr/244h4

'이렇게까지 알아봤는데 사기 당한 거면, 뭔가 문제가 있다'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장선훈 공동위원장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장선훈 공동위원장 ⓒ 정성일
 
"지난 1년 사이 수습되거나 바뀐 점은 전혀 없고요. 대전의 다가구는 어차피 기존 특별법상으로도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개정안에 피해 구제 내용이 들어가길 원했었는데, 솔직히 이번에 폐기된 법안에도 많이 실리지 못했어요. 아무리 저희가 국회에 가서 기자회견을 하고 규탄 집회를 하더라도, 그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라든지 기관으로까지 전달되기가 힘들었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어요."

다가구주택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도 손 쓸 방법이 거의 없다. 일단 경매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 먼저 임대차 계약을 맺은 선순위 임차인은 경매를 통해 배당을 받으면 보증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후순위 임차인은 앞선 임차인이 배당을 받으면 그만큼 본인이 회복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경매를 멈추려면 같은 건물에 사는 모든 임차인이 동의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우선매수권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우선매수권을 통해 건물을 낙찰받아 팔아버리든 아니면 LH에 양도해서 매입임대로 거주라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건물에 거주하는 모든 세입자가 동의해야 가능한 방법이다. 문제는 일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자기가 정확하게 몇 순위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지난해 9월쯤 원래는 제가 회사 발령 문제 때문에 서울에 집을 알아봐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계약기간이 한 반년 정도 남아 있다 보니까 집주인한테 전화를 했죠. 그랬더니 명의가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바뀐 법인 대표에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 통화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좀 느낌이 이상하다 싶긴 했었는데 통화는 결국은 했습니다.

'혹시 전세 보증금 언제 좀 돌려주실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좀 머뭇거리더라고요. 솔직히 약간 불안했었고, 의심하던 상태였다가, 10월 초에 이웃분한테 쪽지를 받았어요. 우리 건물이 전세사기 피해 건물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죠.

그래서 이웃분과 모여서 얘기를 해봤더니 선순위 보증금과 순위 안내가 다 엉망이었던 거죠. 저는 3순위라고 안내받고 계약했는데 실제는 9순위더라고요. 계약 당시에 건물이 신축이었어요. 입주 시기가 유사하다 보니까 계약하러 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입주해 있던 세대가 없었거든요. 계약하고 한 달 뒤 제가 입주를 했으니, 그러니까 그 한 달 사이에 엄청나게 계약을 몰아서 한 거죠."

      
대전 지역 전세사기 피해자 중 96%가 다가구주택에서 피해를 봤다. 국토부로부터 피해자로 결정된 사람은 2200명 정도, 대전시에 피해 접수를 한 사람은 2500명 정도, 대책위가 파악한 피해자는 3500명가량 된다.

다가구 주택은 전체 건물에 주인이 한 명이다. 세입자는 정확한 순위를 알고 싶어도, 집주인이 알려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보 불균형이 여기서 발생했다. 악의를 가진 집주인은 임차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제가 계약했던 날짜로부터 한 달 이내에 한 13세대가 계약을 했는데요. 모두가 다 3순위로 안내받았더라고요. 더 웃긴 건 맨 마지막에 계약한 세입자인데요. 피해자는 본인이 4순위로 안내받았데요.

계약 전에 제가 진짜 꼼꼼하게 알아봤거든요. 그러니까 확정일자 열람원도 다 떼봤어요. 서류에 제 앞에 한 8명 있어서 물어봤죠. 그랬더니 '계약 확정일자 받고, 입주 안 하고 전입신고 안 한 거다.'라고 하면서 슥슥 지우다 보니 실제 3순위로 맞추더라고요. 그때는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피해를 인지하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까지 알아봤는데 사기를 당한 거면 뭔가 문제가 있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 깊게 알아봤어요. 다가구 주택은 정부에서 만든 제도인데, 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을 보호할 명목으로 법 개정이 단 한 번도 된 적이 없더라고요. 30년 동안요. 진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개인적으로는 최후까지 해결이 안 되면, 국가배상소송도 할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에 끊지 못하면 10년 뒤에 또 일어날 것 같다"
      
 국토교통부에 항의 중인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국토교통부에 항의 중인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 대전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
 
특별법 개정안에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가구 주택 후순위 임차인이 가진 임차보증금 반환 채권은 실제로 가치를 평가하기가 까다롭다. 또한 주택도시기금도 사용처가 정해져 있기에 기금을 통해 지원받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정말 용납할 수 없는 점은 따로 있었다.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의지 문제였다.

"개정안 내용에서 정확하게 '피해 금액의 30%를 선구제한다'고 표기했더라면 논란은 적었을 거예요. 그런데 '채권을 매입한다'는 멘트는 누가 봐도 애매한 멘트였죠. 또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 예산이 별도로 책정돼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국토부나 LH에서 별도의 예산이나 기금을 따로 만들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것도 '주택도시기금 등'이라고 명시된 부분이 있으니 꼬투리 잡힌거죠.

하지만 피해자들은 '추가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해주면 안 되냐'고 말하는 거예요. 정부가 피해자를 구제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있었다면 충분히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건데요. 그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 의지가 있었다면 세부 시행안이나 부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집행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정부가 발표한 '주택 경매 차익'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는 평가다. LH 감정가와 실제 경매 낙찰가 차이만큼을 피해자에게 안분해 어느 정도 피해 회복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경매에 나온 건물이 인기가 많은 지역에는 낙찰가가 높아 안분 금액이 적거나 없을 확률이 높다. 분명히 예상되는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해결 방법보다는 끝까지 해결하겠다는 해결 의지가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장 위원장은 끝으로 이번에야말로 전세사기 근본 원인을 제거해서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는 역사가 엄청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어요.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까지 나오는데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2018년 원광대 근처에서 대규모 전세사기가 일어난 적이 있거든요. 그때도 다가구였어요. 그러니까 애초에 전세사기를 막지 못해서, 그냥 넘어가서 피해 규모가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번에 끊지 못하면 5년 뒤에 또 일어날 거고 10년 뒤에 또 일어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결국에 10년 뒤면 제 아들이 자취를 할 때고 원룸을 구해야되는 시기가 올 건데, 지금 내가 끊지 못하면 다음에 또 발생할 거니까 '이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1년여 후면 특별법 효력이 끝난다. 그 사이 법이 개정되어 제대로 된 구제를 받아야 하지만 정치권 사정상 그마저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대책위는 '더 이상 죽음으로 탄원하게 하지 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장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인지한 즉시 혼자 고민하지 말고 대책위나 지자체 지원센터로 연락해 도움을 받으시라"고 강조했다. 전세사기 해결이 정치권에서 공회전하는 사이 피해자들의 속은 계속해서 타들어가는 중이다.

#대전지역전세사기#전세사기#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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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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