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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화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노인 문제를 알기 쉽게 이해하고 생각해보기 위해 다양한 노년 관련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편집자말]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소풍> 중
  영화 <소풍> 중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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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노년을 둘러싼 복합적 문제들

최근작인 <소풍>은 연기 공력으로 치면 도합 200년에 가까울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배우가 출연하고 노년층의 '아이돌'로 불리는 가수 임영웅의 노래 '모래 알갱이'가 삽입되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기존의 노인 관련 영화가 여러 문제 중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치매, 돌봄, 죽음 등의 소재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번 영화는 노년이 겪는 매우 다양한 문제를 입체적으로 그린 점이 흥미롭다.

60년 만에 고향으로 찾아간 은심(나문희 분)을 중심으로 은심의 사돈이자 오랜 고향 친구인 금순(김영옥 분), 첫사랑 은심을 마음에 품었던 옛 동창 태호(박근형 분)가 만나 오랜만에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해후의 기쁨도 잠시, 각자의 자식 문제, 건강 문제, 그리고 은심이 오래 전 도시로 떠나야 했던 이유가 되었던, 고향 사람들과의 깊은 감정의 골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며 갈등이 표출된다.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는 노년층의 뼈아픈 고민을 표현하면서도 바다와 논밭이 펼쳐지는 서정적인 시골 풍경, 투닥투닥 농익은 정을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을 함께 담아내 시각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훈훈해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요하다

자식들로 인한 시련, 홀로 삶을 이어가는 고독과 질병, 돌봄, 존엄사 문제까지 언급하며 대한민국 노년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 영화지만 그 어떤 소재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이 영화 속 '친구 관계'다. 영화에서는 은심과 금순을 옛 시절 친구이자, 자식보다는 멀고 남보다는 가까워 어쩌면 더욱 편할, 사돈 관계로 설정했다. 그래서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는 금순과 동행하는 은심의 귀향도, 또 그곳에서 일어나는 태호와의 재회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렇듯 인위적이지 않은 관계 맺음과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아픔을 공유하는 친구들과의 어울림을 영화의 큰 축으로 삼아 노년기의 삶과 감정을 확대 조명한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새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 친구다. 3~40대에는 일과 가정생활에 충실하느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서서히 거리감이 생긴다면 50대가 넘어가면 사회생활과도 멀어지며 동료들도 쉽게 만나기 어려워진다. 가정주부로 생활해 온 여성들은 집 근처에서의 각종 모임을 통해 새로운 친분을 쌓으며 친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던 남성들은 그마저도 힘든 편이다.

그럼에도 친구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하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느 새 가족은 책임져야 할, 혹은 돌봐주어야 대상으로 더욱 다가오게 되고 그러한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그들에게는 말하지 못할 근심을 나누려면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한 명이 훨씬 귀해지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영화는 노년기 친구들과의 마음 나눔에 대한 소중함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대화를 통해 잔잔히 피력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다면
 
  영화 <소풍> 중
  영화 <소풍> 중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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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친구와의 우정을 그린 가벼운 내용인 듯 했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생의 말년기를 어떻게 보내고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에 대한 묵직한 생각거리를 던진다. 영화를 만든 김용균 감독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상당수의 노인들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죽음을 맞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 아프면 무조건 병원으로 실려 가고, 또 집에서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며 노인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이 시대의 죽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제 이런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고민이 더욱 깊어질 시대가 본격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생의 마지막을 단짝 친구와 함께하는 영화 속 결말은 처연한 삶을 살아온 노년들의 존엄하고 자기 주도적인 선택인 것 같아 당당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현실에서 이런 결말은 비극적이라 하겠지만 영화적인 미학 추구에 있어서는 성공한 듯 보인다.

저예산 영화 <소풍>은 입소문을 타고 35만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필자가 관람하러 갔을 때도 출연한 배우들과 비슷한 연배의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서 '나도 나이들었지만 나이든 사람 이야기는 보기 싫다'고 말하는 노인들을 꽤나 접했었는데 그렇게 노화를 거부하기보다는 함께 영화를 보며 각자의 나이듦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노년의 시간을 더욱 생산적으로, 소중하게 쓰는 방법이 아닐까.

태그:#노인, #영화, #소풍, #나문희,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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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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