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집단휴진을 강행한 뒤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를 겨냥해 "의사들의 요구를 받지 않을 시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집회 참가자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가더라도 그 전에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겠다"며 "(현 정부 정책으로는) 결코 한국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여의도에서 연 '의료농단 저지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정부 독재에 맞서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 의료를 반드시 살리자"며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 수준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의대정원 증원과 의료농단 패키지 강요, 전공의와 의대생들에 대한 부당한 발언을 즉각 멈추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이날 ▲ 의대 정원 증원안 재논의 ▲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 전공의·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을 즉각 소급 취소 등을 요구하며 전국서 집단휴진을 강행하고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의협은 총궐기 참석자를 약 4만 명으로, 경찰은 약 1만 2000명으로 추산했다. 집회에는 의협뿐 아니라 대한의학회·전국의과대학교교수협의회·한국여자의사회 등 의료계 단체들도 참여했다.
임현택 "후진 관치의료 바꿔야"... 의대생 학부모 "아이들 사회 헌신 꿈 물거품"
이날 오후 2시께 병원 문을 닫은 의사들과 의대증원에 반발해 거리로 나온 전공의·의대생과 학부모 등은 '의료농단 교육농단' '의학교육 훼손' '의료붕괴 저지'라고 적힌 손팻말, 허리띠, 종이모자를 착용하고 뙤약볕 아래 섰다.
연단에 오른 의료계 대표자들은 "민간 병원에 의료를 의존하는 국가가 지난 4개월간 매일 초법적 명령을 남발한다", "3년은 너무 길다", "전공의와 학생, 교수들에게 정부가 덫을 놓고 협박한다"며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쥔 임현택 회장은 연단에 올라 "정부는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사직한 전공의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도망간 노예 취급하며 다시 강제 노동시키겠다고 한다"며 "이제 우리 14만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자들을 심판하고, 관치주의 후진 의료에서 전문가주의, 선진의료라는 대변혁을 이뤄야 한다"고 성토했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정부가 전공의 사직을 금지하고, (소속 병원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에서 일하면 처벌하겠다고 협박하더니, 월급도 주지 말라고 한다. 전공의와 그 가족은 굶어 죽으란 말인가"라며 "정부가 (병원과 전공의 등에) 법을 적용하는 태도가 폭력적"이라고 질타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의사들은 주6일 100시간 근무를 4년간 해야 전문의를 딸 수 있고, 전공의 없이는 병원을 돌릴 수 없는 미친 나라에서 정부는 주4일제 근무를 논의하는 위원회(일·생활 균형위원회)를 만들었다"며 "의사가 공공재라던 국가는 (정작) 의료를 사유재산인 민간병원에 의존하면서 의료시스템은 세계 꼴찌로 돈을 쓰고 문제만 생기면 다 '의사 탓'을 한다"고 규탄했다.
사직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전면휴진을 실행·검토 중인 의대 교수들은 정부가 자신들까지 협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석균 연세대 의대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정부는 병원에 교수 휴진으로 손해가 발생하면 구상권을 청구하고, 병원이 휴직을 방치하면 건강보험 선지급 대상서 제외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했다"며 "이제 정부만 믿고는 더 이상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이 됐다. 우리 교수들이 무도하고 일방적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은 응급실 등 필수부서를 제외한 529명(54.7%) 교수들이 집단휴진에 돌입했다.
학부모의 호소발언도 이어졌다. 이날 의대생과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자녀가 있다고 밝힌 한 학부모는 "질 높은 의학 교육을 바탕으로 사회에 헌신하는 의사가 되겠다던 우리 아이들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 학부모는 "국민 혼란을 일으킨 해외직구금지 정책은 3일 만에 철회하면서 왜 의대정원 문제는 눈과 귀를 막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냐"며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말고 제발 의대생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제자리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법기술 압박 중단해야"... 성난 민심에 언론 인터뷰 거절도 빈번
집회 시작 1시간 전부터 여의도 환승센터 앞 대로와 여의도 공원은 의대증원에 반발하는 참가자들로 붐볐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10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의료계 집단행동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의식한 듯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 "조심스럽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다만 인터뷰에 어렵게 응한 이들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의료계와 협의를 통해 의료정책이 추진돼야 하며 전공의들에 대한 정부의 '법기술적' 압박은 중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라고 밝힌 허아무개(30대 남성)씨는 "쟁점이 의대증원만 있는 것처럼 외부에 보여 답답하다. 많은 의사들은 (의대증원) 이전에도 '의료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의견을 계속 말했다"며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큰 청사진을 먼저 그리면 이를 토대로 각계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되는데 지금은 미봉책만 들이밀며 의사들에게 희생하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씨는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또 다른 병원노동자들이 구조조정 등 피해를 보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받고 "엄밀히 말하면 전공의들은 수련생인데도 노동착취를 당해왔고, 이를 그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다"며 "오직 미래를 보고 노동착취를 감수하던 전공의들이 미래가 없어져 사직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본인들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한다며 의료정책을 강행하는데 전공의들도 자유롭게 사직할 수 있다"며 "이 상황을 법기술적으로 문제 걸고 나선 건 정부"라고 덧붙였다.
흉부외과 전공의라고 밝힌 김아무개(30대 남성)씨는 "최근에 논란이 됐던 정부의 무통주사·페인버스터 병행금지 조치 사례처럼 정부가 단편적인 사고로 현재 의료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분만할 때 흔히 쓰이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비급여)를 같이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급여기준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가 산모들의 반발이 거세자 병용을 허용하되 환자 본인부담률을 상향(80%→90%)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학년 의대생 학부모라고 밝힌 양아무개(50대 남성)씨는 "이대로 가다가는 의료교육이 질적 저하를 넘어 교육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여 참여했다"고 말했다. 개원의라고 밝힌 우아무개(50대 후반 남성)씨는 "어차피 사태 해결책은 요원해 보이고 의사들은 환자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돌아가더라도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