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
반려견 훈련사이자, 보호자이기도 한 나에게 싫어하는 계절을 묻는다면,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여름이라고 대답한다. 첫째로는 너무 더워서 반려견과 함께 다양한 활동 자체가 제한되는 탓이고, 두 번째는 이 반려견 훈련사라는 직업을 하면서 유독 여름에 여러 사건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듣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여름이란 어딘가 모르게 민감한 계절이 돼버렸다. 게다가 이상기후로 매년 역대급 더위를 기록하고 있고 여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그런 여름이 시작됐다. 이 글을 읽고, 현명하고 건강하게 반려견과 여름을 보냈으면 한다.
사람에 비해 개가 열에 취약한 이유
내 주변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여름에 열로 인한 사고는 드물지 않다. 이 직종에 있으면서 매년 여름마다 들릴 정도로 잦은 편이다. 2008년도, 내가 활동하던 반려견 동호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기로 유명한 그레이 하운드 5마리와 사는 보호자가 있었다.
이 견종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에너지 발산을 해줘야 한다. 그는 이 5마리를 데리고, 사람이 드문 바닷가로 피서를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고 한다. 개들을 차에 두고 보호자만 휴게소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실수로 땡볕 아래 차 에어컨이 꺼져 있었단다(여름철 차 안 온도는 40도를 금방 넘는다). 네 마리는 폭염 고열로 인해 열사병 사망, 1마리는 살아났지만 후유증으로 호흡기 질환이 생겼다고 했다.
10~20여분 만, 짧은 시간에 일어난 끔찍하고 슬픈 일이었다. 그레이 하운드 같은 견종처럼 털이 짧은 견종은 열에 더 취약한 데다 에어컨도 작동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다. 다소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충분히 발생하는 일이다. 보더콜리나 허스키들도 여름철 차량에 잠깐 놔뒀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주변에서 더러 보인다.
여름철에 개들이 더 위험한 이유는 개들의 평균 신체 온도가 37.5~39도 정도로, 사람보다 약 1-2도나 높은 탓이다(사람은 36.5도). 또 인간에 비할 때, 개들은 열을 뿜어내는 땅 지면에 압도적으로 가까이 있다. 지면부터 어깨 높이까지를 기준으로, 소형견들은 30cm 이하, 크다고 하는 대형견들도 60cm 정도이니 인간에 비해선 정말 많은 열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여름 더운 날, 산책하기 전에 지면을 한 번 만져보길 권하고 싶다. 생각보다 뜨거워 놀랄 것이다. 열을 품은 땅에 본인의 얼굴과 심장을 내려 30cm 거리, 60cm 거리까지 가까이 간다고 상상해 본다면, 개들이 느끼는 여름이 사람보다 훨씬 뜨겁고 더울 것임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개들은 사람에 비해 열을 배출하는 것도 어렵다. 사람은 땀샘에서 땀을 흘리며 체온을 낮추지만, 개들은 사람과 달리 신체에 땀샘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발바닥에만 집중적으로 땀샘이 위치해 있고, 혀 헐떡임으로 조절한다. 그래서 개들은 대부분 선풍기로 열을 효율적으로 식히지 못한다. 그보단 바닥이 차가운 게 훨씬 효율적이다.
현대에 열에 더 취약한 이유는 견종의 영향도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나 알래스카 말라뮤트처럼 추위에 적응한 견종들이 한국의 여름에 곤욕을 치른다. 뿐만 아니다. 현대의 많은 견종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특정 외모와 성격 등등 목적을 가지고 선택 번식하여 개량한 견종들이 많다.
개들은 보통 자신이 태어난 지역 기후에 맞춰 열과 추위로 몸을 스스로 지키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량한 견종들은 이런 기능이 대부분 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쭈그린 인상을 가진 불도그(불독)는 여름이 아닐 때도 호흡이 어렵다. 대부분의 불도그는 그래서 잘 때 코를 곤다. 자연에선 불도그 같은 동물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인간이 그런 품종을 만들면서 신체 능력도 변화한 것이다.
한편, 반려견과의 산책은 무조건 자주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날씨에서 산책은 오히려 해가 되는 것이 더 많다.
되도록 이른 오전이나 늦은 저녁과 밤 사이에 산책을 시키고, 낮에는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실외에서 배변을 보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꼭 물을 챙겨야 한다. 차가운 물수건으로 털이 없고 가장 민살이 있는 배 부위나 발바닥을 마사지하듯 적셔주는 것도 체온을 떨어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개들의 '생존본능' 자극하는 폭죽소리... 여름철 더 주의해야
여름은 휴가와 피서, 각종 행사들이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때, 이런 현장에 반려견과 함께 가면서 일어나는 사고들이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행사 진행 음악 소리나 폭죽 소리에 개들이 놀라서 도망가 버리는 경우다.
나는 이런 사고를 전형적으로 인간이 개를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사고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대부분 본능적으로 개를 사람처럼, 즉 '의인화'해서 생각한다. '사람인 내가 즐거우니까 내 개도 즐겁겠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특히 사회성이 부족하고, 예민한 반려견이라면 그곳은 즐겁기커녕 매우 공포스러운 장소일 것이다.
행사장에선 큰 스피커와 행사 진행으로 소리들이 울린다. 사람이 느끼기엔 둥둥거리는 소리가 더 흥이 나게 할지도 모르지만, 개들 입장에선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게 아니라 긴장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거기다 많은 행사들에서 폭죽놀이를 진행하곤 한다.
이 폭죽놀이는 인간 입장에서 볼 때야 예쁜 거지, 개들에게는 전쟁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폭죽 소리만 들으면 포탄 소리와도 비슷한 것이다. 이는 개들의 '생존본능'을 자극하게 되고, 그래서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힘으로 탈출을 해 도망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이 경우 반려견이 패닉 상태가 돼 최대한 축제 현장과 멀어지려고 힘껏 도망치고는 한다. 결과적으로 정말 힘들게 찾거나, 결국 못 찾는 안타까운 경우도 더러 생기는 걸 봤다. 나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폭죽을 터뜨리는 행사에는 가급적 반려견을 데려가지 말라고 보호자들에 말씀드리고 있다.
피서도 마찬가지다. 피서지에 가게 되면 보통 평소보다 더 놀아주게 된다. 특히 놀이를 좋아하는 개들은 뇌에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뇌가 '각성'이 되는데, 이때 자기 몸의 통증을 모르거나 상태를 조절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한 여름에 계곡이나 수영장에서 계속해서 놀아주다가, 놀 땐 괜찮았는데 며칠 뒤 열사병을 겪거나 심하면 생명을 잃기까지 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나는 좋은 마음에 했는데 상대에겐 악영향을 끼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드물다. 여름철 발생하는 사고들은 올바른 지식과 준비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고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반려견과 사는 데엔 지식이 필요하다. 보호자란 단어는 무겁다. 내가 반려견을 사랑하고 아껴준다고 해서 붙일 수 있는 단어도 아니다. 말 그대로 여러 의미로 반려견을 보호할 수 있어야 보호자인 것이다. 보호하려면, 반려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지식이 도움이 되어 조금이나마 시원하고 안전하게 반려견과 여름을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