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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는 서울시의 이름을 달고 운영되는 미술관이 7곳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SeMA 벙커, SeMA 백남준기념관. 

이 중 119년이 된 건물에 깃든 미술관이 있다. 바로 남서울미술관이다. 지금의 남서울미술관은 1905년 벨기에 영사관으로 탄생했다(사적 제254호). 처음 있던 자리는 지금의 장소가 아니라 회현동이었다.

그런데 1977년 영사관 터를 포함하는 일대가 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되면서 197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이 확정되었고, 1982년 마침내 외관은 원 모습으로 복원하고 실내 공간은 건축가 김수근의 의견에 따라 일부 변경하여 지금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미술관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968년 영사관을 불하받았던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무상임대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런 연원을 품은 남서울미술관을  지난 21일 찾았다. '길드는 서로들'이라는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남서울미술관 전경 현재 <길드는 서로들> 전시가 열리고 있다(~7월 7일까지).
남서울미술관 전경현재 <길드는 서로들> 전시가 열리고 있다(~7월 7일까지). ⓒ 전영선

종강으로 방학을 맞이한 막내와 함께 나들이 갈 미술관을 찾다 미술관을 의인화한 전시글에 꽂혔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중구 회현동, 지금 우리은행 본점이 있는 자리이다. 나는 1905년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영사관으로 지어졌다. 건축물로서는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사람으로 치면 올해 119살이 된 셈 ... (중략) ... 사람들은 나의 이국적인 겉모습만 보고 매력적인 건축물이라 일컫는데 이것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 나의 진짜 매력은 내 안에서 '나'라는 건축을 매개로 일어나는 관계맺기이다."(남서울미술관 홈페이지 전시글 중에서)

미술관을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쓴 전시글은 색달랐다.
 
"보통 전시가 열리기 2~3주 전 내 안의 곳곳에서는 작품 설치를 위한 가벽이나 좌대가 만들어진다. 나는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벽은 원벽에 가벽을 덧댄 것이다. 내 안에 임시 구조물들이 만들어질 때 나는 종종 아슬아슬한 마음이 든다."(남서울미술관 홈페이지 전시글 중에서)
 

전시글을 읽고 나니 미술관과 작품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나갔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찾게 된 남서울미술관은 사당역 6번 출구로 나와 100미터 남짓 걸으면 나타난다. 
 
남현예술정원 사당역 6번 출구로 나서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공원. 노후화된 수경공원을 2019년 광장형 휴게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남현예술정원사당역 6번 출구로 나서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공원. 노후화된 수경공원을 2019년 광장형 휴게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 전영선
 
예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미술관 마당에는 여러 개의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뭘까 싶어 다가가 보니 적힌 문구가 재미있다. 알고 보니 전재우 작가의 설치 작품이었다. 

'미술관 외부는 눈으로만 보지 마시고, 손으로도 좀 만져 주시길 바랍니다', '남서울미술관은 춤도 전시 감상의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문구들이 익살스러웠다. 전시장에서 주로 접하는 위압적인 태도와는 전혀 다른 문구에 뜨거운 햇살을 맞아가며 안내문을 하나하나 읽었다.

캐나다에서 유년기와 대학 시절을 보냈다는 전재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유독 소통에 몰입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말하자면 미술관과 관람객이 좀 더 유쾌하게 관계맺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안내문에 쓰인 문구들은 바로 그런 고민의 소산물로 보였다. 미술관을 방문한다면 외부뿐만 아니라 실내 곳곳에 설치된 그의 노력을 꼭 눈여겨보길 바란다.   

막내는 전재우 작가의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위트 있는 문구와 유머가 있는 발상에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2층 창가에서 발견한 안내문에서는 바닥에 괴어 놓은 팸플릿을 보고는 둘 다 웃음이 빵 터졌다.
 
전재우 작가의 설치 작품  안내문에 쓰인 문구대로 바닥에 팸플릿을 괴어 놓아 웃음이 터졌다.
전재우 작가의 설치 작품 안내문에 쓰인 문구대로 바닥에 팸플릿을 괴어 놓아 웃음이 터졌다. ⓒ 전영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작품은 김봉수의 <길들이고 길들여지고>였다. 이 작품은 20분 동안 상영하는 영상물로,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설치 작품에 대한 느낌을 두 무용가가 퍼포먼스로 표현한 것이다. 

육중한 미술관 문을 밀고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상은 전시 작품과 건축이 함께 길들여지는 과정을 몸으로 표현한다. 전시 작품 앞에서, 오래된 미술관 다락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는 무척 흥미로워서 현대무용에 대한 매력을 흠뻑 느끼게 했다.
 
김봉수의 <길들이고 길들여지고> 미술관 다락에서 펼친 퍼포먼스. 건축에서 서로 다른 재료들이 건축물을 지탱하듯 무용가는 서로의 신체를 감각으로 길들이며 동작을 지탱한다.
김봉수의 <길들이고 길들여지고>미술관 다락에서 펼친 퍼포먼스. 건축에서 서로 다른 재료들이 건축물을 지탱하듯 무용가는 서로의 신체를 감각으로 길들이며 동작을 지탱한다. ⓒ 전영선
 
그 외에 단순한 은색의 색종이로 화려한 조형물을 탄생시킨 도이재나(정도이, 정재나)의 <원과 원: 마디>도 인상적이었고, 무거운 돌들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려 우두커니 버티는 축대를 작품으로 형상화 한 서지우의 작품들도 인상적이었다.  
 
도이재나 작가의 <원과 원:마디> 얇게 자른 은색 색종이를 고리로 만들어 엮은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연결을 시각화했다.
도이재나 작가의 <원과 원:마디>얇게 자른 은색 색종이를 고리로 만들어 엮은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 연결을 시각화했다. ⓒ 전영선
 
서지우의 <우두커니> 축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뒤쪽 좌대에는 앞에 놓인 조각 상단부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펼쳐서 늘어놓았다.
서지우의 <우두커니>축대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뒤쪽 좌대에는 앞에 놓인 조각 상단부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펼쳐서 늘어놓았다. ⓒ 전영선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40여 점이다. 참여 작가는 모두 7명. 

무더운 이 여름, 119살의 건물이 뿜어내는 아우라와 그 속에 녹아든 작품들을 둘러보며 미술관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미술관 내부는 더위를 가시고도 남을 만큼 시원하고 교감을 나눌 만한 작품도 있으니 이만한 공짜 피서가 따로 없을 듯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남서울미술관#길드는서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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