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건설 반대합니다. 11차 전력수급계획 수정해주십시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대한 국회 공청회 도중 방청석에서 나온 외침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덕군 주민이었다.
26일 오후 국회기후변화포럼(대표: 한정애 의원, 정희용 의원)과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가 주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 국회 공청회'가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국회기후변화포럼은 여야 33명 의원들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로, 대표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고, 연구책임위원은 김성회 민주당 의원이 맡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는 한정애, 김성회, 송옥주, 권향엽, 박지혜, 이재강, 서왕진, 이만희 의원 등이 참석했다.
한정애 의원은 인사말에서, "우리는 지금 탄소중립의 시대와 AI 시대를 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 반도체, AI 등 관련 산업의 전력소비량이 2026년에는 2022년 대비 두 배가량 늘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달 31일 정부에서 발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보면, 이러한 미래 전력수요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전력공급방안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RE100 등 수출기업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과연 충분한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 의원은 "신규 원전 건설에 따른 주민 수용성이나 장기건설 기간에 대한 한계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차치하더라도, 실제 요구가 폭증하고 있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속도'는 보이지 않고 원전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의 주요내용과 향후 과제'에 대해 중앙대 교수인 정동욱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위원장이 주제발표를 했다. 정동욱 위원장은 제11차 전기본 개요 및 실무안 주요내용,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대한 평가, 향후과제, 맺음말 순으로 발표했다.
정 위원장은 "수요 전망을 해보니까 목표년도 2038년에 129.3GW로 연평균 1.8%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공급목표량을 잡아보니까 157.8GW로 나왔다. 공급전망을 조사해서 신규설비 규모를 산정했더니 10.9GW로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목표년도 2038년에 전원구성과 관련하여 2022년 현재 원전이 29.6%, 재생에너지가 8%인 것을 2038년에는 원전 35.6%, 재생에너지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4.4% 등의 전력믹스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수요예측과 전망에 대해 너무 과다하게 산정하지 않았나 하는 비판을 듣는다. 10차 전기본에 비해 연평균 0.3% 증가했는데, 이는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으로 인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더 심각한 것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의하면 2050년 필요 전력수요가 1200TWh 수준인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연간 4~5% 수준으로 확대 공급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다"라고 했다.
그는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수준에 대해 욕 많이 먹었다. 70%가 안 되는데 70%라고 했다는 말씀 많이 들었다. 태양광과 풍력만 보게 되면, 3배 좀 넘는다. 중요한 것은 3배냐 2.8배냐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갔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재생에너지의 분포와 관련하여 태양광은 OECD 대비 75.4%인데, 풍력은 6.1%밖에 안 된다. 풍력이 매우 미흡하여 향후에 재생에너지 확대는 풍력발전소를 확충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순간, 정동욱 위원장은 자신의 정면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영덕군 주민을 보면서, "갑자가 저기 보니까 까만 글씨로 들고 있네요, 팔 아프게. 화력발전소 건설 반대하세요? 점점 화력발전소도 없어지게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에 영덕군 주민은, "핵발전소 건설 반대합니다. 11차 전력수급계획 수정해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정동욱 위원장은 "아... 괴롭습니다. 석탄도 싫다, 원전도 싫다고 한다면, 재생에너지만 가지고 한다면, 2050 탄소중립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실질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조선시대처럼 불 다 꺼지고 하면 경제활동 되겠습니까? 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저는 진도를 나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발표를 마무리 하면서, "에너지원 선택을 두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많다. 이러한 갈등을 시장제도를 통해 흡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패널 토론이 있었는데, 국회기후변화포럼 공동대표인 김일중 동국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토론자로는 신동원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 김윤경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최경숙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 황태규 민간발전협회(GS EPS 상무), 남태섭 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유재국 국회입법조사처 선임연구관, 문양택 산업부 전력산업정책 과장이 참석했다.
김윤경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실무안은 특정 전원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원 간의 대체성과 보안성을 함께 고려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미래 불확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전력수요 전망치와 실제 수요 간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오차율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해 여러 항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가 중요하다"며 "현 상황에서는 최선의 수요 전망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의 경우, 의욕적인 숫자라고 평가했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할뿐더러, 지방자치단체와 사업체 역시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신동원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11차 전기본이 주요 리스크를 반영했는지 봐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기술발전 속도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는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화석연료를 언급했다.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수입해오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이나 불안정성 역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연구위원은 "에너지 전문가들이 말하길 탄소중립이 없었으면 에너지 계획은 단순했을 것이다"라며 "그러나 기후대응과 글로벌 기후정책 규제는 돌이키기 어려우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연구위원 역시 커져가는 RE100 요구나 녹색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재생에너지가 확대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선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매우 절실하다고 짚었다.
신 연구위원은 "에너지 정책의 효과는 10년~20년 후에야 계획들이 이행되면서 혜택을 받는다"며 "지금 현명하게 계획을 세워야 향후 10~20년 후에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지금 수정을 할 수 있을 때,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보완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환경운동연합의 최경숙 에너지 기후팀장은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핵진흥정책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분개했다. 그는 "원전이 무슨 장난감 쇼핑하는 것처럼 'SMR도 담았고요, 대형원전 3기 담았고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너무 절망감을 느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이 철학도 고민도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대해 저는 너무 분노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이어서 "(철학적) 고민이 있어야 수요관리가 가능하고 미래 전력산업의 나아갈 길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고민이 11차 전기본에 담겨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팀장은 또한 "현재 윤석열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한마디로 핵진흥 정책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핵진흥정책을 돕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현재 원전 26기 중에서 19기가 운전 중인데, 10차 전기본에서 38년까지 30기 운영계획이었으며, 11차 전기본에 신규 대형원전 3기 추가와 SMR 건설이 추가됐다. 그렇게 하려면 노후 원전을 모두 수명연장 해야 한다. 설비교체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원전을 계속 가동할 가치 있느냐, 경제성 평가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런 경제성 평가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정 교수가 말씀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현재 고리원전 2, 3, 4호기, 한빛원전 1, 2호기, 울진원전 1, 2호기, 월성원전 2, 3, 4호기 등 모두 수명연장을 추진 중이다. 근데 월성원전 4호기에서 사용후 핵연료 저장수조에 있던 물 2.3톤이 배수구를 통해서 바다로 흘러나갔다.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함에 있어서 최신 안전기술 적용도 없이 중대사고 평가도 누락돼 있고, 주민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안에 지진이 났는데, 지진대에 대한 연구조사도 없이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하면 우리나라도 후쿠시마와 같은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 하겠다는 것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이다. 더 이상 원전 가동은 안 된다. 우리나라가 정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애국가 가사대로 '하느님이 우리나라를 보우하셨기 때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밀양에서 할머니들이 어떻게 투쟁하셨는지 아시죠.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말 들어보셨죠. 그런 일이 또 일어나야 됩니까? 국가가 왜 계속해서 폭력을 저질러야 하는가? 어느 시민들은 계속 폭력에 희생되어야 하는가? 말도 안 된다. 그래서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것 안 된다. 국회가 나서서 이런 문제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의 토론을 듣고 나서 정동욱 총괄위원장은 "원전건설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 말을 이어가려고 하자, 최 팀장은 "불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불만이 아니라 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아까 영덕 주민께서 의사를 표시하시는데, '불 끄고 조선시대로 돌아갈 거냐'고 하는 건 조롱입니다. 그 표현 정정하셔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정동욱 위원장은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이에 좌장을 맡은 김일중 동국대 명예교수가 개입하면서 "발언을 하려거든 좌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서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패널 토론이 끝나고 방청석에서 질문과 발언이 이어졌는데, 영덕군 주민이 손을 들고 발언에 나섰다.
그는 "10차 전기본부터 우려가 많이 있었다. 핵발전으로 인한 현안지역이 될뻔 했었고 주민들이 굉장히 고생해서 국가계획이 바뀌어서 다행히 백지화가 됐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잊을만 하면 원전 관련 보도가 있다. 원전으로 인해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충분한 검토 후에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전기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민의 삶이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욱더 계획에 대해 심사숙고 해주시길 바란다. 주민의 삶이 크게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계획이 강행되면 주민은 또다시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청회를 마무리하면서 한정애 의원은 "전기본에 대한 생각은 다양하게 다르리라 생각한다. 11차 전기본이 결론적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대외적인 상황을 보면, G7국가들이 2035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점차 없애기로(phase out) 약속했다. 우린 당장 G7국가는 아니지만,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 있는데 이 압력을 언제까지 모른 척 할 수 있는가? 언젠가는 2030년이 되기 전에 그 대열에 끼어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고민들을 녹여 전력수급 기본계획안으로 정리해야 한다며 발언을 마쳤다.
덧붙이는 글 | 나눔뉴스에도 같은 내용으로 송고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