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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안양천 살리기를 통해 배운 것은 '희망'의 소중함입니다. 이렇게 되살아나리라고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거든요."

안명균 안양군포의왕 시민햇빛발전 사회적 협동조합(아래 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그는 태양광 조합을 설립하기 전까지 20년 환경운동을 하며 안양천 살리기 시민운동을 주도해왔다. 안양천... 지금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산책길 생태하천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5급수보다 20배가량 더러운 전국에서 가장 오염된 하천의 대명사였다.

"더러운 걸로 전국 1, 2등을 하던 하천입니다.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 BOD)가 200ppm 가까이 되던... 참고로 5급수가 10ppm보다 맑아요. 5급수의 20배가량 더 오염되어 그 물에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하던 하천이었죠." (안명균 이사장)

그런 안양천을 살리자는 운동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중반, 사람들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안양천 똥물을 어떻게 되살려? 살아나겠어?"

그러나 시민들의 간절한 노력에 기업들이 협력하고 지자체가 열심히 일하기를 10여년, 안양천은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참게가 돌아오고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도 돌아오고. 겨울철에 천연기념물 원앙이 천여 마리가 날아옵니다. (정말요?) 사람들은 잘 모르죠. 그런 변화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노력을 했길래 그런 변화가 생겼냐는 질문에 안명균 이사장은 '정말 고생많이 했어요' 하는 짧은 한마디로 대신했다. 그는 안양천의 경험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도 '희망'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기후위기, 막막하죠. 이거 정말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그런데 이걸 작지만 시민들 힘을 모아서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가다보면 저는 결국 이 기후위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거다..."

민원 방지 위해 직접 시뮬레이션까지... 이들의 노력  
 
 안양 4호기 시민태양광 가동 전경 (2024.2)
안양 4호기 시민태양광 가동 전경 (2024.2) ⓒ 안양군포의왕 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그렇게 2013년 350여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태양광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냥 협동조합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배당이 단 1원도 지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공부지에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자금으로 태양광을 짓기 시작한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난관을 수없이 만났다.

"1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1호선 의왕역을 지나자마자 햇빛발전소 큰 게 보입니다. 그게 저희 1호기예요. 왕송호수 공원 주차장에 태양광을 처음으로 올렸는데..."

그린벨트 훼손부담금을 내라, 실무공무원들의 입장이었다. 그린벨트이자 공원인 왕송호수 주차장에 태양광 시설물을 올렸으니 법에 따라 훼손 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거다. '아니 이미 녹지를 훼손해 지은 공영주차장 위에 올리는데 무슨 부담금이냐'고 반박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법이 그렇다'는 답변 뿐, 결국 시민들은 중앙부처인 국토교통부에 유권해석을 신청했다. 몇 달 간 지리한 행정공방이 계속됐다. 결과는 '내지 않아도 좋다'.

"공익적으로 필요해 만든 주차장은 이미 훼손 부담금을 면제받았고, 면제받은 것도 법적으로는 훼손 부담금을 낸 것으로 본다, 즉 또 낼 필요는 없다. 이게 국토부 입장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태양광 발전소 전체에 대해서는 훼손부담금이 면제되었고, 다만 태양광 발전을 위해 세운 기둥 자리만 훼손 부담금을 내고 있다. 시민들 입장에선 그마저 아쉬운 대목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의왕 왕송호수 태양광 시설물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그린벨트 공원 내 태양광 시설로 기록된다.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민원 우려였다. 그린벨트가 아닌 공공부지 주차장에 시민태양광을 세우려다 보니 그 앞에 아파트가 있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태양광 빛반사로 인한 주민 민원이 들어올 우려가 있으니 '태양광 빛반사 피해가 없다는 시뮬레이션 결과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시뮬레이션 자료를 준비하려다 보니 6천만 원의 용역비가 필요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시민들은 몸으로 떼우기로 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 태양광 패널을 들고 해당 아파트 앞으로 가서 공무원들과 함께 현장 실험을 했다.

"패널을 주차장에 세워놨어요. 그리고는 담당 공무원 두 분께 아파트 1층부터 15층까지 다 올라가 보면서 빛 반사가 되는지 안 되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그 분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1층부터 15층까지 다 올라갔다 내려오시더니 '하나도 반사 안 되고 오히려 옆에 주차한 차 유리가 훨씬 번쩍거리더라'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태양광 발전소를 세웠고 결국 그 자리에 대해 누구도 빛반사 민원을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태양광 발전소를 세운 그 주차장 부지에 제일 먼저 차를 대고 계시죠. 응달이고 시원하니까요."

그게 끝이 아니다. 민원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건물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할 때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 넓다란 옥상 부지는 어르신들의 게이트볼 장소였다. 당연히 태양광 패널을 받쳐줄 기둥을 곳곳에 세울 수 없었다. 게이트볼 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둥을 모두 외곽에 설치했고 게이트볼 경기장 안에는 기둥이 없도록 시공비를 더 들여 세웠다. 중간에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었지만 안명균 이사장은 이후 결과를 자신 있게 말한다.

"저희 햇빛발전소가 만들어진 다음에 게이트볼을 즐기시는 어르신들 숫자가 2배도 훨씬 넘게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각종 편견이나 관행을 하나하나 넘으며 가지않은 길을 걸어온 안양군포의왕 조합은 10년 만에 8호기의 햇빛발전소를 지었고 조합원수는 1115명에 달한다. 배당금 없는 사회적협동조합 구조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이들은 태양광 수익이 나면 배당금 대신 재투자를 하거나 사회적 공익활동에 써왔다. 지역 아동센터에 미니태양광을 설치해 전기요금을 절감시키도록 했는데, 여기에도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었다.

"지역아동센터들이 대부분 임대예요. 건물주가 따로있는데, 건물주가 태양광 짓는걸 허락하지 않는거예요. 그래서 적절한 아동센터 찾는 게 어려웠어요. 결국 교회 부설 아동센터 3곳에 설치해 드렸습니다."
 
 지역아동센터 미니태양광 기부사업 (2023)
지역아동센터 미니태양광 기부사업 (2023) ⓒ 안양군포의왕 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안명균 이사장은 지금의 현실에 대해 매우 심각하다며 걱정했다. 전 세계는 지금 한 해에 50%, 100%씩 재생에너지를 늘려가는데 우리는 오히려 신규 설치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틀 전에 국회에서 아주 따끈따끈한 법안이 발의됐어요. 프랑스 파리처럼 모든 신규 주차장에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시키는 법안이죠. 이번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29명이나 모여서 기후위기 탈탄소 경제포럼을 만들기도 했고요, 우리가 불가능하다던 안양천을 되살린 것처럼 결국 이런 노력들이 빛을 발할 거라고 봅니다."

그에게 칭찬하고픈 사람들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는 사실...이득도 안 생기는데 여기 참가해준 저희 1115명의 조합원들이 가장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께 칭찬을 어떻게 드려야 될지 모를 정도로 저는 이 분들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2019년 11월 의왕 왕송호수 시민태양광 착공식
2019년 11월 의왕 왕송호수 시민태양광 착공식 ⓒ 안양군포의왕 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인터뷰를 들으면서 나는 한 명의 축구선수를 떠올렸다. 그는 축구를 정말 잘하는 선수였다. 어떻게 잘하냐면 그 선수가 있음으로 인해 11명의 선수 전원이 축구를 잘하고 결국 이기게 만든다. 그 선수로 인해 수비도 세지고, 공격루트도 더 다양해지고. 그런데 그 선수의 진가를 감독 빼고는 알지 못했다.

이동국처럼 헤딩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안정환처럼 개인기가 뛰어난것도 아니고 발이 빠른 것도 아니기에 결국 그 선수는 주목받지 못 했다. 하지만 그 선수는 계속 자신의 축구를 했다. 매일 축구일기를 쓰며 자신을 분석하고 내일의 경기를 그렸다. 훈련 또 훈련,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그 선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선수가 바로 박지성이다. 나는 시민태양광 조합이 축구의 박지성 같은 존재라고 본다. '시민 태양광'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나눔을 일상화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길이다. 이게 있어야 재생에너지를 마음껏 늘려가고, 그 혜택이 공유된다. 덴마크가 그렇게 재생에너지로 50% 전력 비중을 넘어섰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미래가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지상파 최초의 주7일 기후방송인 '오늘의 기후'는 매일 오후 5시부터 7시30분까지 FM 99.9 OBS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고 있습니다. 최근 오늘의 기후 유튜브 독립채널이 개설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오늘의 기후 채널' 검색하시면 매일 3편의 방송주요내용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시청은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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