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수염풍뎅이에요."
26일 밤, 천막농성장 바닥에 유난히 눈에 띄는 풍뎅이가 있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음 날 이를 본 유진수 금강유역환경회의 사무처장이 "깜짝 놀랐다"면서 "이 친구가 수염풍뎅이"란다. 수염풍뎅이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다. 평소 농성장 주변엔 "멸종위기종이 발에 채인다"고 농담을 했는데, 이렇게 귀한 친구들이 흐르는 금강으로 모여들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4년 동안 모래나 땅속에서 식물 뿌리를 갉아먹고 사는 수염풍뎅이 애벌레들은 모두 수장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종을 지정한 환경부가 세종보를 재가동한다면 명백한 '야생동물 보호법 위반'이다. 이미 벌어진 상황도 있다. 공주보 담수로 멸종위기종인 물떼새 알을 수장시킨 것이 바로 환경부다. 그래서 환경부 장관을 고발하기도 했다.
수염풍뎅이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가 아니라 강에 사는 뭇생명들이 금강을 지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떼새와 수달, 수염풍뎅이와 같은 생명들이 2018년 세종보의 수문을 전면개방한 뒤 6년 동안 거세게 흐르는 강으로 돌아와서 '함께 금강을 지켜내자' 하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금강이 살아야 세종이 산다… 보 철거 촉구 1차 전국 결의대회 열려
지난 27일,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4대강 16개보 해체와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1차 결의대회를 열었다. 낙동강과 영산강, 한강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 활동가와 시민 200여 명이 함께 자리했다. 세종 천막농성장에서 환경부까지 행진한 뒤 규탄대회를 열었다. (관련기사 :
세종보 하나 남았다.. 여기 뚫리면 12년전 MB시대 후퇴 https://omn.kr/2984y)
함께 참여한 낙동강과 영산강 활동가와 시민들은 더 힘차게 연대했다. 아마도 결의대회가 열리기 전날, 낙동강은 녹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어서일 것이다. 수문이 다 닫혀있는 낙동강은 매년 녹조가 창궐했고,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성물질이 공기 중으로 전파돼 인근 아파트 거실에서 검출되기도 했다.
4대강 16개 보 절반이 낙동강에 턱턱 들어앉아 물길을 다 막고 있는데 그 활동가들, 시민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낙동강은 원래 고운 모래와 습지가 잘 발달된, 금강보다 크고 아름다운 강인데 길목마다 막혀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투쟁해 오고 있다.
영산강도 윤석열 정부 들어서 계속 담수된 상태로 갇혀있다. 4대강 중 유일하게 금강의 이 구간만 흐르고 있다. 그마저도 닫으려는 환경부를 저지하려고 시민들이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며 물떼새를 조사하지만 정작 세종보 수문을 올리겠다는 환경부가 잘못되었다고 국민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환경부장관에게 시민들의 요구가 담긴 입장문을 받으러 나오라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공문을 보내고, 전화를 해서 소통을 하자고 했지만 그들은 어쩌면 입장문만 받고 끝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의지는 없고 행정편의에만 맞추려 하는 태도였다면 틀렸다. 환경부는 언제까지 귀를 막고 모른 체 할 것인가.
죽은 강을 두고 경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산·강으로
4대강사업을 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이렇게 말했다.
"보를 만들었다고 해서 물이 썩느냐. 물이 썩도록 보를 만들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국민들에게 이렇게 안전하고 행복하고 생명의 강으로 돌려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종보가 생기고 나서 강에 녹조가 생기고 썩기 시작했다. 악취 때문에 창문도 못 열었다, 운동도 못할 정도로 심했다, 수상활동을 하던 선수들이 피부병과 발진에 시달렸다는 민원과 제보는 세종시민들이 알려준 이야기다.
지금도 천막농성장에 오는 분들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수문이 닫혀있을 때 소수력발전소의 낙차 소음과 시궁창 펄에서 나는 악취에 시달렸다고, 하지만 2018년에 수문이 열린 뒤에는 괜찮아졌다고.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사람들은 금강의 평소 모습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흐르는 강, 냄새도 안나고 녹조도 없는 강, 고라니도 보고 새들도 보는 강으로 말이다.
환경부는 세종보 수문을 닫으면 수면이 넓어지고 경관이 개선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죽은 강을 바라보는 것이 경관일까? 흐르고 살아있는 강을 봐야 경관으로 가치가 있는데, 강물이 정체되어 썩고, 녹조가 핀 강을 조망하는게 진짜 경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은 강에 오리배 띄우고 수륙양용차 띄워봐야 사람들이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수문 닫고 오리배 띄워 건설업자들, 권력자들 배나 채워주겠다지만 본디 강은 모두의 것이다. 마음대로 열고 닫으며 이익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강 주변을 사는 이들이 언제든 누리게 하는 것이 맞다.
"금강아 흘러라! 설악산 이대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에 대응하는 활동가를 만났다. 곧 착공이 시작된다고 한다. 지리산에도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해서 활동가들이 나온단다. 새만금, 가덕도까지 강과 산, 바다와 갯벌을 지키려는 투쟁들이 처절하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우리는 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농성장은 생명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을 연결하고, 연대하는 장이다. 서로 얼싸안고 손을 잡는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온 시민들이 같이 잡는다. 우리는 서로 손과 손을 잡으며 이 투쟁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의 맞잡은 손은 누구보다 뜨겁고 넓게 연결되고 있다.
'흘러라'는 이제 연결의 언어가 되었다. 작은 강끼리 연결되고 큰 강물을 이뤄 흐르듯이, 강의 윗물과 아랫물이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금강 천막 농성장에서 자연스럽게 새만금을 얘기하고 설악산을 이야기한다. 더 연대해야 한다고, 더 이어지고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연결한다. 어떤 현장도 우리는 이렇게 연결한다.
이대로, 흘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