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은 이겼지만 재판장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선고 내용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럴 거면 왜 재판을 공개하는가"
9일 오후 2시 5분께 광주지방법원 별관 앞.
일본 전쟁범죄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유족을 지원하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관계자, 그리고 기자들이 분주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이 사건 법정에서 재판장이 낭독한 주문(主文·판결의 결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각자 메모한 수첩 등을 꺼내 들고 들은 내용을 맞춰 본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유족 등 원고가 11명에 달해 저마다 인정되는 손해배상 액수가 달라 더욱 애를 먹었다.
소송 당사자는 물론 지원단체 관계자 역시 소송에서 이겼으나 원고마다 1심에서 인정된 손해배상금이 얼마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통상 민사 사건의 경우 약 1분에 걸쳐 재판장이 주심을 낭독하는데, 이 순간은 법정 안이 고요해진다. 그런데도 재판장이 마스크를 착용한 데다 목소리마저 작아 주문이 방청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이 경우 판결문이 소송 당사자들에게 송달되기 전까지 소송의 결론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이날 법정을 찾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국언 이사장은 "법정에서 선고 내용을 들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내용을 모르겠다. 당사자별로 인정된 손해배상금은 나중에 판결문을 살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법정에 나와 있는 사람이 알아듣든지 말든지 혼자 중얼거릴 거면 공개된 법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며 "법원이 국민을 존중한다면 판사들에게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주문을 낭독하도록 개선을 권고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같은 법정에선 보증채무금 사건 등 다수 사건의 선고가 이뤄졌지만, 재판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작고 또렷하지 않은 판사 목소리, 오보로 연결되기도
앞서 광주지법에서는 지난 2월 경찰관 비리 사건 선고를 다룬 언론들이 무더기로 오보를 내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 2개월인데, 1년 6개월로 표기한 기사가 쏟아진 것이다. 주문을 낭독하는 재판장 목소리가 작았던 데다 발음마저 또렷하지 않은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후 소송 당사자 및 언론에 제공된 판결문에서 해당 경찰관에게 선고된 형량이 확인된 뒤 오보는 정정됐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09조에서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원칙적으로 공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송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함으로써 여론의 감시하에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송당사자의 인권을 보장하며,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나, 일부 법정에선 실질적 의미의 재판 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