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이 독일에 살고 있어요."
"독일 어디에 살아요?"
"라이프치히에 살아요."
"거기가 어디에요?"
독일의 도시하면 떠오르는 곳은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같은 대도시들이다. 대도시라는 공통점 외에도 모두 독일 통일 전에 서독 지역이었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익숙한 도시들일 것이다.
반대로 옛 동독 지역의 도시들은 상대적으로 도시 규모가 작다. 통일 이후 30년이 훨씬 지났지만,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라이프치히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과거 동독 지역이었던…'이다.
교육과 예술의 도시, 라이프치히
나에게 라이프치히는 과거의 동독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베를린을 제외하면 동﹒서독의 경계에 대한 인식도 없다. 나에게 라이프치히는 약간의 환상을 품게 만드는 교육과 예술의 도시이다.
국어교육과 역사를 전공했고, 태양전지 연구원인 동생의 영향으로 물리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호치민에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는 나에게는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위대한 인물들의 면면만으로도 기대와 설렘을 안겨주는 도시이다.
철학과 수학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음악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 (Johann Sebastian Bach)와 펠릭스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양자역학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와 막스 보른(Max Born), 미술의 막스 클링거 (Max Klinger)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 활동했던 곳이 바로 라이프치히이다.
독일의 소도시는 단순한 의미의 소도시가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에 가까웠기 때문에 독일의 소도시들은 한때 각 분야별로 제국의 역량이 집중되었던 곳이며, 이곳 라이프치히는 작센주에서 주도인 드레스덴과 함께 가장 강성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과 분단을 겪으며 한때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으나, 2024년 현재는 독일에서 젊은층의 인구 유입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될 정도로 옛 영광을 되찾고 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부동산 가격도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고 한다.
유럽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구도심 지역과 신도심 거주구역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는데, 동생 내외가 살고 있는 5층짜리 신축빌라의 월세가 2700유로라고 하니 부동산 문제는 전세계가 동시에 겪고 있나 보다. 어쨌거나 세상만사가 다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라이프치히까지는 딱 400km이다.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이지만, 3.5t 캠핑카로는 안전 속도가 90km 이하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빠르게 달리면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독일은 바람이 정말 많이 분다.
바람이 얼마나 많이 부는지는 독일 전체 전력 생산의 25%를 풍력 발전이 담당한다는 사실로도 실감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네덜란드 풍차마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프랑스가 원자력의 나라라면 독일은 풍력의 나라다.
최소 150m 이상의 대형 발전기가 바람개비처럼 꽂힌 들판을 5시간 동안 하염없이 달려서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마침 가벼운 비도 내렸고, 섬머타임 중이라 저녁 6시가 되어도 정오처럼 날이 밝은 중에도 가로수 사이로 시원한 공기가 풀냄새를 얹고 차 안으로 들어 왔다.
호치민에서 느낄 수 없는 깨끗한 공기 맛이다. 라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시차 적응에 실패하여 새벽 5시면 눈을 떴는데, 그 차갑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 폐가 깨끗하게 정화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르웨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도 그 깨끗한 공기 맛이다. 이제 이런 세상이 된 것이다. "저 노르웨이에 깨끗한 공기 마시러 가요." 우리 할머니가 들으시면 정신 차리라고 등짝 후려칠 소리지만, 호치민에는 없다.
과거사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독일
동생네 근처에 미리 찾아 놓은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를 하고 앱을 통해 결제를 했다. 해외에 나가서 앱으로 주차비를 결제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두려울 수도 있지만, 세상만사 다 그렇듯이 남들이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주차장 운영 업체도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몇 가지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있다.
이 주차장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앱이 두 가지이다. 입구에 친절하게 앱 설치를 위한 QR코드가 안내되어 있다. 하나는 Paybyphone이고, 하나는 Parkster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EasyPark이라는 앱을 사용했다. 아이폰을 기준으로 앱스토어는 나라마다 마켓이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이 한국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위의 앱 중에서 Paybyphone은 독일 앱스토어에만 등록이 되어 있고, 나머지 두 개는 한국 앱스토어에도 등록이 되어 있다. 그래서 Parkster 앱을 설치하고 결제는 페이팔(PayPal)로 했다. 요금은 24시간 기준으로 승용차는 10유로 캠핑카는 25유로였는데, 주차장마다 모두 다르니 미리 확인하고 주차하면 된다. 참고로 라이프치히 기차역 주차장은 승용차 24시간 5.5유로였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부리고 구도심 산책에 나섰다. 라이프치히의 구도심은 구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1.5km 안에 모여 있어서 가볍게 걷는다면 한나절만에 훑어 볼 수 있다.
집을 나서니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사용했던 교실 의자들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야외 조각이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있었다. 교육의 도시이니 공부 열심히 하자는 말인가? 야학이 있던 자리인가? 하다가, 이정도 넓이라면 5층 빌라를 두 동은 지을 것 같다는 전문 부동산 개발업자 같은 생각을 하며 작품을 보고 있으니,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다. 이곳은 독일이었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감추거나, 외면하거나, 왜곡하는 게 일상다반사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그들의 과거사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기억하라(Gedenkt)'로 시작해서 '잊지 말라(Vergesst es nicht)' 끝나는 라이프치히의 의자 조형물은 1938년 11월 9일에 벌어진 '수정의 밤' 사건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이날 나치 독일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유대인의 상점과 집, 휴대교 회당인 시나고그를 조직적으로 파괴했다. 이 당시 파괴된 시나고그는 수백 곳에 이르렀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이라는 이름은 파괴된 유대인 건물들의 유리창 파편이 거리 곳곳에 흩어져 반짝이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 참혹한 비극적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문학 시간에 배우는 '승화'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는 단어다.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Holocaust) 이후 100년이 흘렀다. 역사에서 인류는 무엇을 배웠을까? 오늘 이 순간에도 이스라엘 군은 팔레스타인에서 작전 중이다. 나치도 유대인과 전쟁을 한 게 아니라 작전을 펼쳤었다. 나치가 원했던 것은 유대인 멸종이었다. 팔레스타인 인들이 지구에서 사라져야 끝나는 걸까?
다음 날 방문한 라이프치히 옆에 있는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Dresden) 구도심 한복판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규탄하는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SOLIDARITÄT MIT DER ZIVILBEVÖLKERUNG IN PALÄSTINA UND ISRAEL"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인간은 희망과 절망을 함께 안고 산다. 호모 사피엔스 종(種)의 매력이라고 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