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23일 오후 4시 7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예술마을 바로 옆엔 동화경모공원이 있다. 이곳은 이북5도위원회가 (재)동화경모공원을 설립해 운영하는, 실향민을 위한 공동묘지 및 봉안당이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국가보존묘지 2호 노태우의 묘역이 있다.
동화경모공원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부지면적은 77만9925㎡(약 24만 평)로 3만 위 이상을 안장할 수 있다. 공원의 중앙로를 따라 올라가면 현충원의 현충탑처럼 상징탑이 세워져 있으며 왼쪽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노태우 대통령 묘역'이라는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3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거대 시설물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잔디밭 끝에 노태우씨의 묘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묘역'이라는 동판 표지판도 설치돼 있었다. 전체 묘역 부지는 1810㎡(550평)로 상당한 규모였다.
우물 모양의 1.8m 묘지석에 둘러싸인 묘는 봉분이 없는 평장묘였고, 돌기둥 형태의 사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묘지 앞에는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염원하며'라는 글귀가 쓰인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5월말 이혼소송에서 승소한 노씨의 장녀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의 '아빠 사랑해요'라고 쓰인 화환과 노각사모 9사단 전우지회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봉분이 없는 평평한 형태로 조성"이라고 했었지만
노태우씨 사망 당시 현충원 안장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노씨는 전두환씨와 함께 12.12와 5.18 내란과 군사 반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기에 국립현충원 안장 자격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과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뇌물 수수 및 방조죄)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사면·복권된 전두환씨 경호실장 안현태의 경우 2011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면서 사면·복권된 노씨 또한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 아니냐는 국민들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노씨는) 국립묘지법에 의해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없다"고 답변을 하였고, 따라서 노씨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다.
2021년 10월 26일 노씨 49재 후인 12월 9일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될 수 있었는데, 당시 유족 측은 "그동안 최소 규모인 8.3㎡의 묘를 포함한 부지를 청원해 왔다. 묘의 형태도 봉분이 없는 평평한 형태로 조성할 것"이라면서 공원 내 일반 묘보다 튀거나 면적을 많이 차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2021년 11월 4일 <이북도민연합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동화경모공원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 기간이었던 지난 10월 28일 L6 지역의 181기 사용료에 대한 1기당 가격과 평당 가격 등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11월 3일 현재 정부와 유족 측과 가격조정은 진행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8.3㎡가 아닌 1810㎡ 전부를 사용할 계획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후 12월 2일 동화경모공원 이사들은 이북5도청 통일회관에 모여 노씨를 동화경모공원에 안장할 것을 의결하고 동화경모공원은 고인 측과 파주시청, 관계당국 등에 "9일 고인을 3평 규모의 평장으로 임시 안장을 하고, 추후 국가보존묘지 신청을 하고 승인 후 묘역을 조성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노씨 유족 측의 '최소 규모로 조성할 것'이라는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 안장 전 국가보존묘지 신청도 계획돼 있었을 유추할 수 있다.
12월 9일 노씨는 안장식을 통해 동화경모공원 L6 구역 가운데 서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안장됐다. 동화경모공원 옆으로 흐르는 임진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구간으로, 서쪽을 바라보면 임진강 너머로 황해북도 개성(개풍구역)이 보인다. 안장식이 있기 전 11월 29일 노씨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평소의 아버지답게 국가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순리에 따르는 길을 택하려고 많은 분의 조언을 들었다"며 국가와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동화경모공원에 안장할 것임을 알렸다.
2022년 5월 4일, 보건복지부는 노씨 묘역을 국가보존묘지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고시했고 동화경모공원은 묘역 조성에 착수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34조에 따르면 분묘는 묘지 크기, 상석, 비석 등 시설 규모에 제한이 있으나, 국가보존묘지의 경우 이에 대한 제한이 없다. 본묘 설치기한 30년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노씨 묘역이 국가보존묘지가 되면서 550평 규모의 주변 묘역을 노씨 묘지를 위해 꾸밀 수 있게 된 것이다.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노태우 묘역
노씨의 묘역이 국가보존묘지로 지정된 후 이장과 묘역 조성이 시작됐다. L6 구역 가운데 서향이었던 묘를 구역 북편 끝자락으로 옮기고, 방향은 남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묘지가 바라보는 방향의 남쪽의 넓은 공간은 잔디광장과 넓은 계단을 조성했다. 그 계단은 아래에서 보면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케 했다.
노태우씨와 전두환씨의 경우 1997년 4월 17일 내란죄·반란죄 등이 확정돼 각각 징역 17년과 무기징역을 받았다. 이로 인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라 전직 대통령 예우가 완전 박탈되고, 현충원 안장 자격도 사라졌다. 하지만 2021년 10월 26일 노씨가 사망하고 국가장이 치러졌으며, 그의 묘는 국가보존묘지가 됐다.
노씨의 묘역 규모를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이 나았겠다"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립묘지법 제12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직에 있었던 사람은 264㎡(약 80평) 이내에 안장될 수 있다고 돼 있다.
전직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은 규격에 맞는 264㎡에 안장돼 있고,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은 서울현충원에 각각 264㎡, 258㎡로 묘역이 조성돼 있다.
대통령 묘역 규모가 제한되기 전에 사망한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은 서울현충원에 각각 363㎡, 580㎡로 묘역이 조성돼 현충원에 안장되지 않은 노씨의 경우 박 전 대통령 묘역의 3배, 현행 국립묘지법의 7배가 넘는 묘역이 조성됐다.
박정희의 3배
그리고 노씨는 전직대통령 예우가 박탈됐음에도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등 다시 전직 예우를 받고 있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제5조의3에 따르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의 경우 행정안전부로부터 묘지관리에 드는 인력 및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즉 노씨의 묘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경비 인력비, 관리 인력비, 시설 유지비 등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동화경모공원 측 또한 안장 논의 과정에서 "벌초비 등 국가장에 따른 보존묘지유지비는 매년 행정안정부에서 지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2021년 12월 7일 <이북도민연합신문> 보도).
<오마이뉴스> 보도 후 23일 직접 연락을 해온 노재헌 변호사 측 관계자는 "행안부로 부터 지원을 받은 바 없다. 묘역 이용료와 묘역 조성 비용 전부 유족 측이 부담했다. 세금으로 지원 받는 것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동화경모공원의 경우 실향민 또는 파주시민이 안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사회의 결정으로 실향민이 아닌 노씨의 유해가 안장됐다. 노씨가 현역 군인 시설 파주에 위치한 9사단장을 역임했고, 동화경모공원 조성이 노씨가 대통령 재임 당시 이뤄졌다는 게 주요 사유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듯 노씨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키면서 최전방 9사단을 수도권으로 불러들여 파주의 안보에 심각한 공백을 만든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안장된 L6 구역은 원래 181기가 안장될 수 있는 곳이나, 노씨의 묘역 조성으로 그럴 수 없게 됐다.
노씨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발언한 "나 노태우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말은 참으로 유명하다. 노씨의 유족들도 노씨의 묘를 보통 묘로 조성할 것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조성이 완료된 지금의 모습은 보통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노씨의 병환이 깊어진 당시 노씨의 과오를 사과하며 조성된 여론으로 노씨는 전씨와 다르게 마지막 가는 길을 국가장으로 치를 수 있었다. 장녀 노소영 관장은 노씨 사망 당시 유산으로 남은 집을 동생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담요 하나만 챙겼다고 했다.
하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2심에서 그는 아버지가 선물한 비자금 300억 원으로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1조3808억 원이라는 재산분할 판결을 받았다. 묘소에 놓여있는 '아빠 사랑해요' 화환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7월 둘째주에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통일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