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은 어느덧 노회찬 의원의 6주기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만 같다. 일례로 이번 22대 총선에서도 수많은 정치인과 정당에서 '노회찬 정신'을 부르짖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노회찬 정신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가 기획하여 최근 출간한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창비)에 그 답이 있다. <한겨레>에 '6411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매주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던" 6411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에 관해 연재했고, 그렇게 모인 75명의 목소리를 묶은 것이 이 책이다.
많이들 알다시피 6411번 버스는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 연설 때 처음 언급하면서 노동자에 관한 상징이 되었다.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이 버스에 타는 수많은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으므로 이 사회에서 투명인간과 다름없었다. 그런 투명인간'이었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의 저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삶과 노동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비로소 투명인간에서 벗어났다. 수많은 정치인이 부르짖지만 누구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는 노회찬의 정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7월 15일 이 책의 최초 기획자이자, 노회찬 재단에서 사업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이강준 실장을 만났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가 세상에 나오게 된 배경부터, 노회찬 재단이 하는 일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최근 노회찬 재단에서 기획한 <나는 얼마짜리입니까>가 출간되었다. 책 소개를 해주신다면?
"2022년 봄부터 <한겨레>에 매주 한 차례씩 '6411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노회찬 의원이 주목했던,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삶과 노동을 이야기하는 코너이다. 이들은 자신의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소외되어 있었고, 사회적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시대의 노동과 삶을 환기하고 조명해 보려는 취지였다.
여기서 핵심은 기자나 전문가나 정치인이 대신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의 말은 지나치게 과잉 대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민을 그들 스스로가 직접 쓰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게 매주 월요일마다 연재를 이어왔고 현재 111번째 목소리가 세상에 나왔다. 그중 75편을 묶었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나? 갈수록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시대인 것 같은데.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다는 게 결국 노동의 퇴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노동자 분들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그 순간이 바로 주권자 시민으로 전환하는 출발이라고 본다.
사실 연장 들고 일하던 분이 일간지에 글을 쓴다는 건 쉬운 결심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신문에 게재될 때, 그 이야기를 동료들과 나눌 때, 자신의 이야기에 사회적 반응이 올 때 어떤 성취감을 느끼시는 것 같다. 동시에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당사자들의 발언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지, 노동과 노동자가 왜 중요한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 이 프로젝트는 글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강연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으로도 이어져 있다고 알고 있다.
"필자로 참여한 분들 중 일부가 강연자로 나서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경희대에서 작년과 올해 1학기 때 필자들이 번갈아 주 1회씩 한 학기 동안 200명이 넘는 대학생을 상대로 특강을 하거나, 노회찬 재단에서 만든 강연 프로그램이나 언론 인터뷰에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엔 글로 시작했지만 이게 확장되면서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과 만나는 계기가 됐다. 글은 한 번이지만 여기에 관심이 있고, 글의 울림을 받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 연결을 통해 당사자들이 외톨이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간 침묵을 강요당하고, 배제되고 소외되면서 그야말로 투명인간으로 존재했던 분들이 스스로 공적 무대에서 발언하면서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책의 필진은 무려 75명이다.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사회복지사, 농부, 건설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기록했는데, 필진 섭외를 비롯해 책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필자 발굴에는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루트로 받고 있기도 하다. 우선 투고를 받는다. 6411voice@gmail.com으로 원고지 12매 분량의 글을 보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또 이 프로젝트에는 원고를 편집하고, 필자와 소통하며 조언하는 12명의 편집자문위원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회의를 통해 필진을 추천받기도 하고 편집자문위원들이 삶의 현장에서 섭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본인이 사는 빌라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께 글을 한번 써보시겠냐고 묻는다거나, 20년 동안 단골로 다녔던 미용실 사장님께 제안하기도 한다.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필진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하나의 정형화된 유형이 있는 건 아니고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고 두드리는 셈이다. 최근에는 노동에 국한하지 않고, 성소수자, 이주민, 재외동포, 난민 등 우리 사회에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는 다양한 분들까지 확대해서 발굴하고 있다."
- 책으로 나오기까지 어려움이나 고민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책으로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즈음에 대략 100호까지 연재되었던 터라, 100호까지 묶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00개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점에서 어떤 상징성도 있다고 보았다. 다만 100편을 다 담으면 책이 너무 두껍다는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 75편만 넣기로 했는데, 처음엔 75편을 어떻게 고를 것인가가 주요한 고민이었다.
논의 끝에 100개의 목소리 중에 75개를 고르는 건 맞지 않다, 더 좋고 더 나쁘다는 차원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결국 1호부터 75호까지 순서대로 넣고 그 뒤의 목소리는 나중에 또 다른 책으로 묶는 것으로 결정했다.
처음엔 책에 필자들의 글과 함께 문인이나 전문가들의 서평을 담으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없애는 것으로 했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6411의 목소리가 주인공이다. 그 취지가 흔들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출판사에서도 흔쾌히 동의해 주어서 무사히 책이 나올 수 있었다."
- 75개의 사연 중에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하나를 꼽는 건 나로선 너무나 어려운 문제고, 다만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순서대로 한 편씩 읽는 것도 좋겠지만, 보다 보면 특별히 눈에 머무르는 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는 결코 노동현장의 우울함이나 억울함에 관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부족한 점이나, 개선되어야 할 부분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노동의 당당함을 표현한 글이나,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 노동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담은 글도 꽤 있다. 사람마다 노동의 의미, 삶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독자분들의 관심사와 맞거나, 특히 오랫동안 서성이게 하는 글이 있다면 그 필자의 목소리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시고, 활동을 응원하고, 행사가 있다면 함께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
노회찬이 평생 이루고자 했던 꿈
-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에는 닫는 글을 대신해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수락연설문이 실려있다. 당시 노회찬 대표께서는 6411번 버스의 의미를 통해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진보정의당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12년이 더 지난 지금 6411번 버스를 타야만 하는 노동자의 삶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다. 진보 정당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한 것 같고. 과연 노회찬의 정신은 아직 살아있는지, 과연 우리 사회가 노회찬 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지 여쭙고 싶다.
"10년이 굉장히 길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0년이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웃음) '노회찬의 정신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노회찬이 바라보고 노회찬이 머물렀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것, 그들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노회찬이 만들고자 했던 진보 정당이란 그들이 필요로 할 때 그들의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정신이 지금이 실현이 됐니, 안 됐니, 지금 진보정치가 어렵니, 정치가 어수선하니, 이런 차원의 문제를 떠나 그냥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고 보는 입장이다. 진보 정당은 물론이거니와 정치라는 것 혹은 정당이라는 것이 바라보아야 하는 근본적인 목표와 노회찬의 정신이 맞닿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꼭 노회찬이라는 말을 떠나 다르게 표현하더라도 이것이 노회찬이 삶을 통해 평생 이루고 싶어 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나와 노회찬 재단은 왜 현실이 금방 바뀌지 않냐고 한탄하거나, 미래를 낙관하거나 혹은 비관하기보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행동하고자 한다."
- 만약 노회찬 대표가 이 책을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런 질문을 진짜 많이 받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인 것 같다. 다만 나는 이 책 뒤표지에 실린 손석희 님의 추천사, '여기 글쓴이들은 그 삶 속에서 이미 노회찬의 대답을 듣고 있다. (중략) 글쓴이들이 모두 노회찬들이다'라는 대목을 언급하고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그러니 '이 책을 노회찬이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이 책에 실린 목소리 그리고 여기에 실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에 좀 더 집중해 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결국 노회찬이고, 노회찬의 생각이며, 노회찬의 대답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우선 이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와 이 책에 소개된 6411의 목소리에 관심을 부탁드린다. 우리가 이 사람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때 이들은 투명인간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이 되고,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함께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더불어 노회찬 재단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다. 노회찬 재단은 비영리 공익 재단 법인으로 회원들의 순수 회비로 운영된다. 아무쪼록 홈페이지(http://hcroh.org/
)에도 방문해 주시고 여건이 되면 회원으로도 가입해서 함께 같은 길을 걷는 동무가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