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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다니다 보면 종종 소소한 체험으로 관람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전시를 만나곤 한다. 지난 19일 금요일 방문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소원을 말해봐 Make A Wish>는 오랜만에 만난 그런 전시였다. 

'가벼움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회복해야 할 것들에 주목하는 전시'로 기획된 이 전시에는 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전시 소개 바로가기). 전시 작품은 모두 45점. 그중 체험 전시는 3점이다. 그런데 이 3점이 이번 관람에서 유독 인상에 남았다. 

첫 번째 체험은 이원우 작가의 <상냥한 왕자>. 이 작품은 근육질이 다부진 왕자 입상에게서 솜사탕을 받아가는 체험이다.
 
이원우 작가의 <상냥한 왕자> 솜사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품이다. 왕자의 입상 아래에 솜사탕을 만드는 통이 설치되어 있다.
▲ 이원우 작가의 <상냥한 왕자> 솜사탕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작품이다. 왕자의 입상 아래에 솜사탕을 만드는 통이 설치되어 있다.
ⓒ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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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행복한 왕자'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행복은 고정되지 않고 변화무쌍한 뜬구름처럼 잡기 어려우니 타인이나 세계와 관계 맺을 때 따뜻하고 상냥한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행복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판을 보니 솜사탕은 전시기간 중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진행된다고 쓰여 있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작가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전시기간 내내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솜사탕을 건네받는 것만으로도 각별한 감정이 들었을 듯한데 좀 아쉬웠다. 

두 번째 체험은 신민 작가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가는 반복해서 종이를 붙이는 작업을 내면의 수행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런 수행의 과정을 관람객에게  넘겨서 작품이 완성되도록 유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작가는 입상을 세울 뿐 그 입상에 종이를 붙이는 작업은 오롯이 관람객의 몫인 것이다. 

직접 쓰고, 붙이고, 돌고
 
신민 작가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가가 세운 입상에 관람객이 다양한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 붙이는 체험형 작품이다.
▲ 신민 작가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작가가 세운 입상에 관람객이 다양한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 붙이는 체험형 작품이다.
ⓒ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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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그린 드로잉과 함께 벽에 쓰인 안내문을 보니, 종이에 쓸 수 있는 문구는 소원이어도 좋고, 수다여도 좋고, 고백이어도 좋았다. 무엇을 쓰든 상관없었다. 그 문구를 종이에 쓰고 입상에 갖다 붙인 후 탑돌이처럼 입상 주위를 한 바퀴 돌거나 문구를 쓰다듬으면 체험은 끝난다. 전시가 이미 석 달이 지나서인지 입상에는 수많은 종이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사소한 행위였지만 이 작품은 막내에게도 내게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소원이 이뤄질지를 염려하기 전에 그런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절반은 날아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관객들이 소원을 적고 붙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기도와 치유의 과정을 겪을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 의도가 충분히 전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모녀의 소원 막내는 공동체를 위한 소원을,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을 빌었다.
▲ 모녀의 소원 막내는 공동체를 위한 소원을,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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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체험은 홍근영 작가의 <불행수집가>였다. 이 작품은 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 관람객이 자신의 불행을 점토로 빚어 전시 공간에 마련된 단상 위에 직접 올려놓는 참여로 구성된다. 

관람객이 점토를 올려놓은 낮은 단상 주변으로는 작가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이 조각들은 고대 로마의 여신, 이집트의 파라오, 인도의 원숭이 신 등 다양한 모티프를 형상화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 조각에 신성에 기대어 살아가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투영했다고 한다.
 
홍근영 작가의 <불행수집가> 불행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흙으로 빚어 단상 위에 올리는 참여로 구성되는 작품이다.
▲ 홍근영 작가의 <불행수집가> 불행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흙으로 빚어 단상 위에 올리는 참여로 구성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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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를 빚을 수 있는 작업대 위 벽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불행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불행을 흙으로 빚어 주세요. 모양은 당신이 만들고 싶은 모든 것입니다. 크기도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의 불행만을 생각하며 만들어 주세요. 모두 완성되었나요? 옆에 놓인 저울 위에 당신이 만든 것을 올립니다. 불행의 무게를 확인하고 당신이 만든 것에 무게를 표시해 주세요. 그것을 가지고 다음 공간으로 입장하여 주세요. 마지막으로 당신이 만든 것을 좌대 위에 놓아주세요. 그리고, 당신은 불행으로부터 벗어나세요."

막내는 체험에 참여하지 않고 나는 체험에 참여했다. 벗어나고 싶은 불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색상의 점토를 플라스틱 상자에서 꺼내 손으로 주물렀다. 그리고 불행의 근원을 생각하며 점토를 빚었다. 점토를 빚으며 다시는 그 근원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점토의 무게를 재고 그 숫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형상화해 올려놓은 단 위에 나의 불행도 올려놓았다.

이 행위는 사소했지만 퍽이나 만족스러운 경험을 선사했다. 불행을 폐기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불행수집가'라 칭한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홍근영 작가의 <불행수집가> 관람객들이 불행을 형상화해 올려 놓은 점토 조각들.
▲ 홍근영 작가의 <불행수집가> 관람객들이 불행을 형상화해 올려 놓은 점토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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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북서울미술관은 지하철 7호선 하계역 1번 출구로부터 35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꽤 멀게 느껴지는 거리이지만, 조금만 걸으면 공원이 금세 나타나기에 실제론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경 노원구에 위치한 북서울미술관은 공원 산책로가 미술관 출입구로 이어지는 개방형 건물의 미술관이다.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전경 노원구에 위치한 북서울미술관은 공원 산책로가 미술관 출입구로 이어지는 개방형 건물의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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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방문해도 좋지만 이곳은 주차 공간이 넓어 차로 방문해도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여느 시립미술관에 비해 휴게 공간도 잘 구비되어 있다. 이번에 와 보니 유휴 공간을 아예 전시장처럼 꾸며 놓았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북서울미술관 2층 휴게실 이곳에는 현재 람한 작가의 <외톨이>가 전시 중이다.
▲ 북서울미술관 2층 휴게실 이곳에는 현재 람한 작가의 <외톨이>가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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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층에 위치한 도서 자료실은 꼭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어린이 도서 코너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실내가 꽤나 넓고 쾌적해서 전시를 관람 후 쉬어 가기에 너무 좋다. 이곳에 들러 주변 전망을 바라보며 전시 관련 도록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관람의 좋은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북서울미술관 도서 자료실 3층에 위치한 도서실에는 푹신한 1인용 소파가 창가에 여러 개 마련되어 있다.
▲ 북서울미술관 도서 자료실 3층에 위치한 도서실에는 푹신한 1인용 소파가 창가에 여러 개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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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8월 4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공휴일은 제외)이다. 관람시간은 평일은 오전 10시~오후 8시, 주말은 오후 10시~오후 7시까지이다.

체험을 원하는 관람객이라면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소원을말해봐#체험전시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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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고 아름다운 나무 같은 사람이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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