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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오적(왼쪽부터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모습(대구 조양회관 전시 사진)
 을사오적(왼쪽부터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의 모습(대구 조양회관 전시 사진)
ⓒ 조양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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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날을 '을씨년스럽다'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을사늑약'이 강제되면서 백성들의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을 '을사년스럽다'로 표현하다가 '을씨년스럽다'로 전이된 것이다. (주석 1) 

면암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다. 1905년 11월 초 특파대사로 한국에 온 이토 히로부미를 11월 17일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지휘하는 무장한 일본군이 궁궐을 포위한 상황에서 고종에게 조약 체결을 강요했다. 고종이 끝내 거부하자 이토는 대신회의를 소집했다. 

이때 한규설과 민영기를 제외한 나머지 대신들은 을사늑약에 찬성했다. 이완용·이근택·이지용·민영기·권중현으로 을사5적이다. 이로써 조선은 외교권이 박탈되고, 사실상 국권을 일제에 빼앗겼다. 고종은 11월 22일 미국에 을사조약이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무효임을 선언하는 밀서를 보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이미 일제의 한국침략을 용인했던 미국 정부는 밀서의 접수를 거부하고 이같은 사실을 일본 정부에 알렸다.

당초 저들의 사신이 이번 새 조약을 위해서 왔으니 우리 정부에서 몰랐을 리 없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온 나라에 통고하여 백성에게 반드시 죽으려는 의리를 보이지 않았고, 마침내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때인 한밤중에 회의를 개최하였으니, 그들의 행위를 보면 나라 팔아넘기는 일의 대부분은 이미 이루어졌다.

의석(議席)에 임하여 폐하께서 비록 곤욕과 협박을 당하더라도 친위(天威)를 한 번 떨쳐서 손토로(孫討虜)가 책상을 찍던 것처럼 참정 및 여러 대신이 목숨을 버리고 통절하게 배척하며, 선정(先正) 김상헌(金尙憲)이 화의서(和議書)를 찢던 것처럼 머리는 벨 수 있어도 조약을 맺지 못하게 했다면, 저들이 비록 군사를 벌여 세워서 우기고 협박하더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하물며 각국 공관의 이목이 옆에서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 인사들이 떨쳐 일어난다면 저들이 또 어떻게 모두 도륙하겠는가.(…)그런데 계책을 미리 정하지 않고 있다가 두려워 벌벌 떨고만 있으니, 폐하께서 비록 윤허하지는 않았으나 마침내 유약하고 온순한 태도를 면치 못하였고, 참정이 비록 굳게 거절하였으나, 겨우 가(可) 자를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것이 왜적이 감히 명을 거스르고 협박하게 된 이유이며 박제순 등 여러 역적이 감히 마음대로 허락하게 된 것이다.

박제순 이하 여러 역적은 본디 왜적의 창귀로서 나라 팔아먹는 것을 잘하는 일로 여기고 기탄없이 태연하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진실로 만 번 능지처참해도 오히려 죄가 남을 것이다. 한규설은 정부의 장관으로 있으면서 일을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하고, 또 그 각료를 바로잡지 못했으니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를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또 저 왜적은 조금 강성함을 믿고 기세가 교만하여 이웃 나라를 겁박해서 원한 사는 것을 능사로 하며, 맹약 파괴하는 것을 장기로 삼아 의리를 생각하지 않고 각국의 공론도 돌보지 않으면서 오로지 병탄하려고 방자한 행동을 꺼리지 않고 있다. 세상에 만약 제환공과 진문공 같은 임금이 있다면 이와 같은 것들을 어찌 그냥 놓아두고 섬멸하지 않겠는가.

지금 주상의 위가 바뀌지 않았으며 인민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각국 공사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조약을 맺은 문서가 다행히 폐하의 윤허와 참정의 인가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들이 믿는 것은 다만 역신들이 강제로 조인한 가짜 조약에 불과하다.

마땅히 먼저 박제순 이하 오적의 머리를 베어서 나라 팔아넘긴 죄를 밝히고, 외부대신을 교체하여 일본 공관에 조회하여 거짓 맹약의 문서를 없애버리도록 하고, 또 각국 공관에도 급히 공문을 통해 모두 회합한 다음, 일본이 강국임을 믿고 약소국을 겁박한 죄를 성명(聲名)해야 할 것이다.(<면암집>)

        
주석
1> 김삼웅, <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은 백년>, 14쪽,  시대의 창, 200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면암 최익현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최익현평전#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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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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