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뚜렷한 사계절의 나라는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스쳐 지나가는 계절이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터넷에는 날씨를 알 수 없는 사진이라며 롱패딩과 나시, 가벼운 후드 차림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 장면이 종종 언급되기도 합니다.
일상생활 뿐 아니라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열리는 진해군항제와 농작물의 재배지 이탈현상 등 우리 생계와도 연관이 깊습니다. 이런 급격한 기후변화와 이상기후현상을 마주한 사람들은 날씨의 변화에 기분이 영향을 받고 정서적 고통을 겪으며 심리적인 안정에 위협을 받는다고 호소합니다.
2017년 미국 심리학회에서는 이렇듯 심각한 기후 현상들이 개인의 불안과 우울을 증폭시키는 현상을 두고 '기후우울'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짜증과 불평, 불만을 넘어서 슬픔이나 두려움, 절망, 무력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정책브리핑에 따르면 기후우울은 1. 기후위기가 촉발하는 정서적 고통, 자연재해 트라우마 등의 스트레스 반응 2. 면역체계 약화와 오염된 물과 공기로 인한 질환 등 신체화 증상 3. 급변하는 날씨에 따른 우울감,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 이전 세대에 대한 반감 등 우울하고 불안한 심리 4. 재해로 인한 이주 및 생계 수단 상실 등 관계 결속력 약화와 같은 정신건강에 위험 징후가 나타나는 모든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기후우울증은 자연재해나 이상기후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뿐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에게까지 쉽게 확산됩니다. 국제보건기구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기후우울의 위험성과 확산성은 특히 위험이 미치는 영향이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게 전이되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저위도국가뿐 아니라 저소득국가에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키며 이들 국가의 정신건강복지가 미흡한 점이 더욱 피해를 가속화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기후우울 외에도 환경불안, 솔라스탤지어, 기후슬픔, 생태슬픔, 외상전스트레스 장애 등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 신조어도 여럿 정의되며 기후와 삶의 질 사이 연관성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미디어 그리스트는 2021년 구글에서 '기후 불안'에 대한 검색량이 565% 급증했다고 밝혔고 2022년 영국 배스대 연구팀의 보고에 따르면 성인 1338명 중 43.3%가 기후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해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우울은 사회문제현상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통계청에서 실시한 기후변화 건강적응에 대한 조사결과, 기후변화로 인해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응답한 대상자가 약 70%에 달하며, 우리나라 성인의 기후불안 수준과 특성을 파악한 한국보건사회연구(한국인의 기후불안 수준 및 특성)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기후불안이 높고, 기후불안이 증가할수록 환경친화적 행동이 증가하는 순기능을 보인다"고 보고되기도 합니다.
"기후변화는 정신건강과 웰빙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급변하는 기후를 보며 인류는 슬픔, 두려움, 절망, 무력감과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경험합니다. 이런 고통이 신체화돼 심혈관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 암과 같은 병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정신건강 지원 체계를 갖춘 기후행동이 필요합니다." - 세계보건기구(WHO)
기후위기는 생존뿐 아니라 일상적인 행복감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나 환경적 영향력을 넘어 개인의 우울과 삶의 질에 대한 위협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적인 지원체계가 촉구되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기후우울증을 극복하고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일환으로 영국에서는 기후변화와 정신건강의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자연환경과의 접촉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활용하는 "자연처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월별로 자연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전하는 자연처방전 달력 활동과 같은 방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미국 뉴멕시코 주에서는 산책로 처방을 통해 긍적적인 신체활동과 동시에 자연을 경험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외에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생활습관을 실천하거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다음으로는 지역사회와 같은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흔히 중독증상이나 우울증등의 치료를 위해 집단 상담을 받거나 회복 커뮤니티에 나가 소통하는 것 역시 기후우울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좋은슬픔네트워크'나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는 기후고통을 나누는 '클라이밋 카페'가 곳곳에 지부를 둔 정식단체로 성장한 예시도 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에 참여하며 정확한 정보를 나누고 주변과 공유하며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거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이 기후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후우울증을 정신질환으로 생각하고 명상이나 요가와 같은 여느 마음관리활동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여 정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증상이 심각해질 경우에는 정신 건강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물론 기후우울이 자연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합니다. 통계청에서 매년 기후와 행복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우리나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치유의 숲 조성 모델을 개발하거나 산림치유 정책발전을 위한 연구개발에 힘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급변하는 기후에 대해 불평만 하기보다 개인의 작은 행동이 모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천, 인식확산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 중요성을 알리는 일들 모두 기후우울을 극복하고 우리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수반될 때 우리는 일상의 행복을 지키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