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A(26)씨는 올해 노량진을 떠났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계속하는 게 낭비라고 느껴져서다. A씨 외에도 공무원의 꿈을 접은 이들이 많다.
지난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직 공무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비중은 2023년보다 6.1%P 하락한 23.2%로, 2.4%P 상승해 29.7%를 기록한 일반기업체에 밀려 2위를 차지했다. 2006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공무원 인기가 예전 같지 못한' 그 이유가 무엇인지, 청년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낮은 임금, 연금 불안 공무원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A씨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접은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임금이었다. 특히 현재 8년 차 공무원인 A씨의 친오빠가 200만 원 중반대의 월급을 받고, 생활에 턱없이 부족한 월급을 메우기 위해 초과 근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을 보며 생각을 완전히 굳혔다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9급 1호봉은 세전 222만 200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공무원보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또 "공무원의 최대 장점으로 연금을 꼽곤 하는데, 우리 세대는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이어 "법원 공무원인 오빠를 보니 승진 적체가 너무 심하더라. 업무에 있어 전혀 성장이나 만족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높은 경쟁률도 이유로 들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의 평균 경쟁률은 21.8대 1로, 1992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이긴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장수생'들도 많다. 따라서 합격을 위해서는 고시원 생활이 필수일 정도로 큰 노력이 필요한데, 공무원 시험의 특성상 그 노력이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매달려 시험에 합격해도 초봉은 최저임금과 비슷하고, 승진도 어렵고, 연금도 불안하니 공무원 시험은 '하이 리크스 로우 리턴' 즉 '가성비가 안 나오는' 선택지인 것이다.
"수직적 조직 문화, 감정 노동... 안정성만 보고 택하기에는 무리"
공무원 시험 준비를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타 직종으로 눈을 돌린 다른 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모두가 '낮은 임금'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 외에 수직적인 조직 문화, 민원 업무로 인한 감정 노동, 반복 업무로 인한 효능감 및 성취감 저하도 이유로 들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공무원을 희망했던 고아무개(22)씨는 "원래 안정성을 보고 공무원을 꿈꿨지만, (위에 적힌) 단점들이 크게 드러나고 해결도 난망한 상황에서 그걸 다 감수하고 공시를 준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아무개(23)씨도 "해결되지 않는 적은 급여와 민원인 갑질 문제를 다 알고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기업 취업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고, 정아무개(24)씨는 "합격 난이도 대비 가치가 없는 임금과 업무 환경에 겹쳐 나라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공무원 인기 하락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인회계사시험을 준비하는 정아무개(23)씨도 "공무원으로 돈을 모아서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느냐"며 저임금 현실을 지적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걱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워낙 좁아 공무원을 생각 중"이라는 배아무개(24)씨는 "뉴스에서 연금 고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과연 공무원을 계속 준비하는 게 맞을지 걱정"이라고 답했다. 또 "충주시 김선태, 양산시 하진솔 주무관처럼 적성을 살려 큰 성과를 내는 일도 있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지 않느냐"며 "만약 힘들게 합격했는데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큼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무척 난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외에 "이직은 생각하기 힘들 것 같다", "그만두면 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처우 개선 요구 외면하는 사이... 공무원 꿈 접는 청년들
공무원 처우를 둘러싼 개선 요구가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22년 8월 공무원노조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내년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한 사실상 삭감"이라며 "물가 인상률을 반영한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관련 기사:
[영상] "이 돈으론 '3포 인생'... 정부, 한심하다" 공무원 양대 노조의 일갈 https://omn.kr/20ini). 그러나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이 청년들은 공무원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공무원 준비 비중이 처음으로 2위로 추락했다.
통계청 결과 발표 하루 전인 지난 7월 15일에도 공무원노조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 공무원 임금 기본급 31만 3000원 정액인상 ▲ 하위직 정근수당 인상 ▲ 점심값 1만 원을 위한 정액급식비 8만 원 인상(현 점심값 6360원) ▲ 직급보조비 3만 원 인상 등을 촉구했지만(관련 기사:
[오마이포토] '대한민국은 인구절벽, 공무원은 월급절벽' https://omn.kr/29fo5), 감세와 긴축을 기조 삼고 있는 현 정부에서는 시행이 어려워 보인다.
다른 일자리가 늘어 공무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대졸자가 올해 상반기 4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평균 취업 소요 기간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척박한 근무 환경을 이유로 공시생이 줄어든 것은 분명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들은 공무원을 점점 더 외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