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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시민추모제 화성시청 분향소 앞 진행한 두 번째 시민추모제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시민추모제 화성시청 분향소 앞 진행한 두 번째 시민추모제
ⓒ 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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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아리셀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23명이 사망했다. 시신은 불에 타서 누군지 알아보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채 영안실에 모셔졌다. 장례를 치러야 했던 가족 중 누군가는 가족의 몸을 온전히 찾지 못하여 화장 후 바다에 뿌렸다. 찾지 못한 일부의 몸이 아리셀 공장 어딘가에 있을 수 있으니 죽어서라도 온전한 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리셀 중대재해가 사람들을 할퀸 지 한 달의 시간이 지났고, 20명 고인들의 가족은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를 구성했다. 에스코넥 대표이사이자 아리셀 대표이사인 박순관 대표를 교섭에서 만난 건 한 번이다. 아리셀 박중언 본부장도 회사측 위임 변호사와 노무사를 대동하고 함께 교섭 자리에 앉았다.

교섭에 나타난 대표와 본부장, 하지만 
 
화성시청 분향소 화성시청 분향소 옆에 시민추모제 참가한 유족들이 남긴말
▲ 화성시청 분향소 화성시청 분향소 옆에 시민추모제 참가한 유족들이 남긴말
ⓒ 권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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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단 한 번의 교섭 자리에서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은 사태 수습을 위해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냐고 하니, 유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죽음의 이유와 진실을 알고 싶은 것임을 그 이전에도, 그날도 충분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아리셀 측은 경찰이 조사 중이니 그 문제는 두고, 보상이나 지원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요지의 입장을 전했다. 

이후 회사는 제대로 된 자료도 주지 않고, 얼굴도 보이지 않고 있다. 유족 측은 사측이 가족협의회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가 개별 유족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유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사측의 개별협상 제안 문자는 교섭을 하겠다고 나온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3~4일이 지나 다시 문자를 보냈다. 장례를 치르는 날 회사의 문자를 받은 유족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문자의 내용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길림성 노동자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는 설명서를 보내왔고 라오스인에게 중국어 제안서를 보내왔으며, 이사가 아닌 직원에게 이사라고 부르더니 자녀가 없는데 자녀 장학금을 특별히 주겠다는 제안을 개별로 보내왔다(관련 기사 : "회사의 태도가 참사" 참사 취재하던 기자, 남편을 잃다).

노무사가 "저는 (주)아리셀로부터 유가족과 합의업무를 지원하고 있는 공인노무사 A입니다"라며 자기소개를 하고 사실관계도 틀린 문자를 보냈다. 또 다른 B 노무사는 이견이 있으면 경청할 테니 말해보라며 문자를 보냈다.

유족들은 사측이 나오라는 교섭 자리에는 나오지 않고, 유족들이 알고 싶어하는 사고의 진실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보상금액만 계속 묻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회사 측이 다시 잘 설명하겠다며 보낸 추가 문서는 처음의 문서와 내용적인 면에서 다를 바 없고, 다만 이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게 유족들의 평이다. 

A 노무사가 설명한 제안에 합의하는 유가족이 없어서인지, 아리셀 측 교섭단으로 나왔던 변호사와 노무사가 나서서 유가족들에게 다시 설명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리셀 대표이사와 본부장은 변호사와 노무사 뒤에 숨었다.

회사의 재설명 자료에 담긴 사실관계는 또 틀렸다. 아리셀 희생자 중 정주노동자 한국인 5명을 빼고 18명의 이주노동자들은 네 종류의 비자(H2, F4, F5, F6)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아리셀 측이 적시한 이주노동자 희생자 수, 비자별 인원이 맞지 않다. 비자 종류도 잘못 기재해 놓았다.

그리고 유족 등에 따르면, 7월 둘째주 초 아리셀은 개별적으로 '화재사고 보상관련 사측 합의 제시안' 문서를 보냈다. 여기서 합의금 산정방식을 얘기하며 출입국관리법 조항을 언급했는데,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재외동포(F-4비자, 일명 동포비자)는 '단순노무행위'를 할 수 없다"며 "단순노무행위를 할 경우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강제퇴거대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관련 기사 : [단독] 화재참사 아리셀, 합의안에 "강제퇴거 대상" 적시). 

고인들이 포장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 업무에만 종사하지 않았을 가능성들이 드러나고 있는데도 아리셀 측은 포장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 업무였기 때문에 불법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유족들은 고인들이 포장이 아닌 용접이나 검수 등 다른 일을 했고, 포장 작업에는 간혹 지원 업무를 갔다고 증언한다.

죽기 전부터 존재가 사라진 노동자들
 
투쟁일정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을 위한 활동들 안내, 투쟁기금 모금 안내 웹자보
▲ 투쟁일정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해결을 위한 활동들 안내, 투쟁기금 모금 안내 웹자보
ⓒ 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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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측은 고인들의 일부가 아리셀에 일용직 노동자를 파견한 인력업체 메이셀 소속이라며 재해자 숫자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유족들에게 유류품을 전달하면서 말한 인원 수, 문서에 적힌 재해자 수, 설명지에 근무일 수로 밝힌 재해자 수가 동일하지 않다.

아리셀 회사 측과 앉아서 직원 수를 한 명 한 명 같이 세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노동자는 유령인가? 노동은 했으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가? 몇 명이 일한 사업장이라는 거 하나 밝혀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기도 하다. 존재조차 인정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위해 비용과 시간을 써서 안전을 보장하는 회사는 없다.

아리셀 중대재해 해결을 위해 이제 유가족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뜨거운 여름에 습기가 온몸을 무겁게 만드는 요즘, 길거리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에스코넥-아리셀 대표이사와 본부장을 찾아서, 에스코넥으로 아리셀로 노동부로 집으로 유가족들이 찾아가고 있다. 정부는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아리셀 백서'를 만든다거나, 피해자들을 행정 밖으로 밀어내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

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의 투쟁은 존재했던 사람들을 지우는 기업과 정부를 향한 싸움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권미정씨는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용균재단#권미정#아리셀#에스코넥#아리셀중대재해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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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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