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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벗삼아 하루에 1000km 이상 달려도 피곤한 줄을 모른다. '우와, 우와, 진짜 멋있다'를 몇 번 하다보면 어느새 다음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덩치가 큰 캠핑카를 몰고 도심을 벗삼아 트램과 함께 달린다면 여행 장르는 호러물로 바뀐다.

캠핑카 운전할 때 트램이 옆에 있으면

유럽에서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어느 도시나 트램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트램을 뒤따르기도 하고, 트램이 나를 뒤쫓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트램을 기차나 지하철 정도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버스에 더 가깝다. 그러니 트램이 내 앞이나 뒤에 있으면 긴 버스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는 24m 길이의 트램 같은 버스가 운행 중이었다. 자동차가 보는 신호와 트램이 보는 신호가 다르긴 하지만 그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교차로에서도 차분하게 내 신호만 보고 운전하면 된다.
 
복잡한 신호등 왼쪽부터 트램, 자동차, 자전거 신호등이다.
▲ 복잡한 신호등 왼쪽부터 트램, 자동차, 자전거 신호등이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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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주의해야 할 점은 정차 중인 트램 옆을 지나가는 순간이다. 트램은 노면 위의 철로를 따라 달리기 때문에 차선을 마음대로 바꾸지 못한다. 만약 트램 정거장이 한 차선 안 쪽에 있다면 차선을 바꿀 수 없으니 그 위치에서 승객이 내린다.

정차 중인 트램 옆으로 지나가다가 내리는 승객을 칠 수도 있고, 무심코 트램 옆에 섰다가 앞뒤로 타고 내리는 승객들의 엄청난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트램 곁을 지날 때는 항상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
 
도심의 트램 정거장 트램 곁을 지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 도심의 트램 정거장 트램 곁을 지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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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여러 이유로 캠핑카를 타고 유럽의 구도심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힘들다. 도로가 좁아서 못 가는 길도 많고, 차체가 길어서 회전하는 것도 어렵고, 주차도 거의 불가능하다. 도심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캠핑카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이런 불편함은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각 도시마다 다양한 해결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캠핑장과 P&R Partplatz이다.

유럽의 도시 대부분이 강을 끼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도시라면 근처에 캠핑장이 있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캠핑장은 언제나 수요도 많으니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한나절 정도 도심을 여행하는데 캠핑장 예약까지 하는 것은 비용적으로도 부담스럽고, 일정도 복잡해진다.

그럴 때는 P&R Partplatz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를 주차하고(P) 대중교통을 타는(R) 주차장(Partplatz)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보통 도심에서 20~30분 정도 떨어져 있고, 트램이나 버스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주차비는 무료인 곳도 많고, 사용한 대중교통 티켓을 넣으면 무료 또는 할인을 해주는 곳도 있다.

도시마다 P&R 주차장이 대중교통 노선을 따라 몇 군데 있고, 독일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곳도 있을 테니 캠핑카로 유럽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각 도시마다 P&R 주차장의 위치를 미리 확인해 놓으면 쾌적하게 시가지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P&R Partplatz에 주차하고 트램에 올라탔다.
 P&R Partplatz에 주차하고 트램에 올라탔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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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가지에서 발견한 전쟁의 흔적

과거와 현재가 공종하는 도시 드레스덴(Dresden)의 구시가지를 여행하기 위해 P&R Partplatz에 주차하고 트램에 올라탔다. 트렘 창가로 보이는 드레스덴 외곽의 풍경은 전형적인 동독(GDR)식 플라텐바우(Plattenbau)가 만드는 약간 음산한 모습이다.

동독 정부가 빠른 속도로 대규모 주거지를 건설하기 위해 사용된 조립식 판넬 건축방식을 플라텐바우라고 하는데, 표준화된 규격과 디자인으로 동독 전역에 똑같은 모습의 건축이 들어서 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바로크 또는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오래된 집은 알트바우(Altbau)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의 신축 빌라 같은 집은 노이바우(Neubau)라고 부른다. 드레스덴이 가진 절묘한 아름다움은 200년 이상의 건축사가 한 자리에 차곡차곡 쌓여 나란히 서 있는 데서 온다.
 
드레스덴 구시가지 200년 이상의 건축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 드레스덴 구시가지 200년 이상의 건축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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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 강을 기준으로 북쪽은 구시가지이고 남쪽은 신시가지이다. 두 지역을 연결하는 아우구스투스 다리에서 구도심을 바라보면 과거 신성로마제국 선제후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슐로스(Schlossplatz) 광장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드레스덴 성 옆에는 가톨릭 궁전 교회가 드레스덴 구시가지를 지키는 근위병 같이 서 있다.

중세부터 이어져 온 드레스덴의 오랜 역사를 상징하듯 모든 건물들은 까맣게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얼핏보면 도시의 중후함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드레스덴은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전쟁도 많이 겪었다.

신교와 구교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30년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프로이센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7년 전쟁에서도 격전지였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도시 대부분이 폐허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불타버린 도시를 시민들이 나서서 재건한 것이 지금의 드레스덴이다.
 
 드레스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
 드레스덴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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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 검은 재는 도시의 상흔이다.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드레스덴 성모교회(Frauenkirche Dresden)는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서 있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교회다. 이 교회는 원래 유서 깊은 가톨릭 교회였지만,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이 독일 전역에 퍼지면서 드레스덴도 루터교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후 개신교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후 2005년 완전히 복원되었다.

폭격 이후 삶의 터전을 완전히 잃은 상황에서도 드레스덴 주민들은 부서진 건축 잔해를 각자의 집에서 소중하게 보관했고, 성모 교회의 재건이 시작되자 갖고 있던 벽돌 하나까지 내어 놓았다. 그 결과 검게 그을린 돌과 새로 보태진 하얀 돌이 맞춰졌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교회의 정문에는 마틴 루터가 손에 커다란 성격책을 들고 중세 말기 부패한 사회를 고발하고 있고, 교회 뒷편에는 2차 세계대전 폭격의 흔적이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에는 지금도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비판하며 모두와 함께 하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비극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억해야 할 비극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답고 좋은 것들만으로 우리의 삶의 채우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성모교회의 내부처럼 말이다.
 
드레스덴 성모교회(Frauenkirche Dresden)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서 있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교회다.
▲ 드레스덴 성모교회(Frauenkirche Dresden)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서 있는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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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내부

교회 내부는 내가 상상했던 루터 교회가 아니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이후 성상파괴운동으로 이어질 만큼 예술을 빙자한 우상 숭배를 금지했는데, 재건된 성모 교회의 내부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했다. 교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앞으로 서양미술사 강의에서 바로크 시대의 교회 건축은 이곳을 예시로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내부 바로크 양식이 가진 화려함의 극치이다.
▲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내부 바로크 양식이 가진 화려함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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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앙 제단은 대리석과 황금으로 눈부시게 화려한 부조가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는 그리스도에게 천사가 내려오는 장면이었는데 천사의 날개가 황금으로 치장되어 있어서 정말 황홀한 장관을 연출했다. 그리스도의 발끝에는 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도 조각되어 있었는데, 예배시간에 기도하다가 졸음이 오면 제단을 바라보며 움찔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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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 상단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오르간보다도 화려한 고트프리트 실버만(Gottfried Silbermann)이 있었다. 제단 아래 그리스도의 부조와 통일감을 이루면서 연주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위대한 예술품이었다.

옆 동네에 살던 바흐도 이 오르간을 직접 연주했다고 한다. 오르간이 울려퍼지고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제단을 비추면 없던 신앙심도 만들어 질 것 같은 웅장함과 화려함이 나를 압도했다. 바로크 예술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나는 바로크 예술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천장은 서유럽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돔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으니 로마 건축의 영향이었을 것 같다. 1만 2000톤의 사암이 8각 지지대에 올려진 돔은 7년 전쟁 당시 프로이센의 포격도 견뎌냈다고 한다. 돔 안쪽에는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예수의 제자들로 보이는 아름다운 천장화가 그려져 있었다.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천장화
 드레스덴 성모교회의 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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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서 드레스덴은 전투와 전쟁이 많았던 도시 정도로 등장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드레스덴은 '엘베의 피렌체'로 불린다. 피렌체에 버금가는 예술적 역량이 집중된 곳이라는 뜻이다.

피렌체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면, 드레스덴에는 츠빙거 궁전에 있는 고전회화 미술관(Gemäldegalerie Alte Meister)이 있다. 엔제리너스 커피의 두 천사를 떠올릴 수 있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이 미술관과 인연이 있다.
 
<시스틴 마돈나> 라파엘로 산치오 1512 드레스덴 고전회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아기 천사들
▲ <시스틴 마돈나> 라파엘로 산치오 1512 드레스덴 고전회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아기 천사들
ⓒ 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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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https://ninesteps.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드레스덴#캠핑카#가족여행#드레스덴성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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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에서 아이들과 책을 읽고 어른들과 그림을 읽으며 일상을 여행처럼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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