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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서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서 혹등고래가 상징조형물이 됐다. 그 배경에는 여서도 해역에 출몰했다며 전래된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여서 8경 중에 경암노도가 있다. 여서도에는 고래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고래가 물을 뿜는 모습을 형상화해 스토리텔링한 것이다. 여서도와 혹등고래, 여서도의 문화자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그럴싸하다. 

이전의 여서도는 섬의 탄생배경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완도군지에 기록된 여서도의 유래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고려 목종 10년, 탐라 근해에 일주일 동안 대지진이 발생했다. 천지가 진동하고 지축이 뒤틀리면서 화산이 폭발하더니, 이내 바다에서 큰 산 하나가 불쑥 솟았다. 완도군 최남단 여서도에 마치 정설처럼 붙여진 이야기, 완도군지에 기록된 여서도의 탄생배경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다. 제주 서쪽으로 '비양도'라는 섬이 있다. 여지도서의 옛 기록에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으로 서산(瑞山)이라고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도 편에 보면 거기에는 제주섬 비양도의 기록이 있다. 고려 목종 5년, 6월에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산에 네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아 나와 닷새 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엉기어 기와 돌이 됐다. 

고려 목종 10년, 다시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에 솟아 나왔다.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가서 보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지동이 우렛소리 같아 무릇 일곱 날 아침과 밤 만에 비로소 개였다. 산의 높이가 백여 길이나 되고 주위가 40여 리나 되는데, 초목이 없고 연기가 그 위에 덮이고 바라보기에 유황 연기 같아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어느 날, 여서도와 비양도의 섬 둘레길 표지판에 자랑스럽게 그 이야기가 새겨졌다. 한때나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 완도의 여서도와 제주도의 비양도에서는 근래에 선사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다. 학계에서도 놀랄만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것으로 완도의 여서도와 제주도 비양도의 탄생배경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졌다. 선사 시대 유물 발굴로 두 섬의 탄생배경이 허구로 드러났기 때문.

지난 2015년 여서도 패총의 발굴 성과로 완도군의 선사 시대 인류의 활동상이 전개되는 듯 했지만, 해양문화 선점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갔다. 완도군의 관심분야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서도는 요절한 천재시인 김만옥의 고향이다. 이 기회에 여서도를 요절한 시인을 찾아 떠나는 여행문화를 추구하는 문인들의 성지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크다. 

인근의 강진에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있다. 주구장창 영랑시인만을 추종했던 강진군이 26년 전 영랑과 동시대를 살다 간 김현구 시인을 재조명했다. 현구의 시문학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시문학파 활동한 회원들을 기념한 기념관이 생겨났다. 강진군은 어느새 시인의 고장이 됐다.

해남군도 마찬가지다.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고정희 시인을 기억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문인'들의 참배 행렬로 시인 생가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문인들의 성지가 됐다. 장흥은 소설가 이청준의 고향이다. 장흥군은 소설가의 성지다. 

완도의 보길도는 국문학의 비조 고산 윤선도의 자취가 있으니 외딴섬 여서도에는 사수도 해역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아득한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득한 옛날 사수도 해역에서 터전을 이룬 선사 인류에서부터 완도의 바다는 문명이 싹트고 있었음을 알리는 것도 좋은 소재일 것 같다.

한때는 지자체마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붙여서 지역 알리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없는 이야기도 사실인 것처럼 각색해서 모든 곳에 붙여 넣기에 바빴다. 여전히 그 행태를 유지하는 지자체가 더러는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변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와 문화를 바로 잡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재미로 풀어가려는 이야기 하나 때문에 중요한 역사적 근거 자료가 신빙성을 잃을 수 있다. 그러면 지역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지역에 있는 청산도의 고분, 범 바위의 전설, 고금도의 이순신 가묘 등 스토리텔링의 분위기가 이제는 먹히지 않는 시대가 됐다. 새로운 관광정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해양문화에 더 알차고 확실한 역사적 배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여서도의 고래조형물에 더해 그 섬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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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지승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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