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탑정호   대둔산의 맑은 물줄기가 흘러 들어와 머문다.
▲ 탑정호  대둔산의 맑은 물줄기가 흘러 들어와 머문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신라군과 당나라군이 백제 사비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김유신은 탄현으로, 소정방은 기벌포로 향했다. 성충과 흥수가 이를 예상하고 이 두 곳을 막아야 한다고 의자왕에게 충언했으나 무시당했다.

나당연합군이 온다는 소식에 백제 조정은 혼란에 빠졌다. 의자왕은 계백 장군에게 오천 결사대를 주어 막게 했다. 660년 음력 7월 9일, 계백 장군은 황산벌에 진을 쳤다. 신라군 오만 명을 맞아 네 번 싸워 모두 이겼다. 그러나 다섯 번째 싸움에서 백제군은 전멸했다. 싸움이 벌어진 지 단 하루 만에 계백 장군도 죽었다.

사비성 앞에 미리 도착한 당나라군은 신라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싸우느라 약속 날짜보다 하루 늦게 나타났다. 소정방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자 김유신이 화를 내며 백제와 싸우기 전에 당나라와 싸우겠다고 을렀다. 결국 그들은 화해하고 사비성을 공격했다. 의자왕은 버티지 못하고 사비성에서 탈출하여 웅진으로 달아났다.

장맛비가 잠시 멈추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 황산벌에 갔다. 탑정호 소풍길을 걷고, 계백장군유적지를 돌아보았다.

탑정호 소풍길

탑정호에 소풍길 6개 코스가 있다. 모두 걸으면 19km나 된다. 대부분 걷기 좋은 데크길이지만 다 돌기는 벅차다. 정해진 코스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입맛에 따라 골라 걸어도 좋다.
 
수변생태공원   호수 가장자리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다.
▲ 수변생태공원  호수 가장자리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수변생태공원에 차를 세우고 힐링수변데크산책로에 들어섰다. 데크길 양쪽에 연꽃 무리가 있다. 꽃은 피어있지 않고 푸른 이파리만 무성하다. 왜가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연잎 사이로 물고기가 튀어 오른다. 연잎 때문에 먹잇감을 구하지 못한 왜가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어르신이 빗자루 대신 엔진 송풍기로 데크를 청소하고 있다. 골든 리트리버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 개줄을 짧게 잡고 한쪽으로 비켜선다. 부지런한 부부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다. 데크길 옆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막아준다.
 
소나무노을섬   호수 가장자리에 만든 섬이다.
▲ 소나무노을섬  호수 가장자리에 만든 섬이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출렁다리에 다다랐지만,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소나무노을섬을 지나 둑길로 갔다. 둑 한쪽에 '논산탑정리석탑'이 있다. 고려시대 승탑이다. 탑정호가 만들어지며 물에 잠긴 어린사라는 절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탑이 정자를 닮았다고 해서 탑정호라는 이름이 생겼다.
 
탑정호 둑길 조형물   계백 장군 모습을 음각으로 만들었다.
▲ 탑정호 둑길 조형물  계백 장군 모습을 음각으로 만들었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둑길에서 음악분수 공연을 볼 수도 있다. 토요일 저녁마다 별빛 아래에서 음악의 향연이 펼쳐진다고 안내하고 있다. 계백 장군을 음각으로 본뜬 전시물도 있다. 긴 당파창을 높이 들고 우뚝 서 있다.
 
탑정호 출렁다리   호수 위에 만들어진 출렁다리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길다.
▲ 탑정호 출렁다리  호수 위에 만들어진 출렁다리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길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출렁다리 남문에 들어섰다. 다리 길이가 592.6m에 이른다. 호수 위에 만들어진 출렁다리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길다. 제법 출렁거린다. 바닥 일부가 철망으로 되어 있어 물이 훤히 보인다. 밑을 보고 걸으면 조금 어질어질하다. 다리 중간에 설치된 쉼터가 반갑다.
 
대명산 일출전망대 전망   전망대에 서면 탑정호가 보인다.
▲ 대명산 일출전망대 전망  전망대에 서면 탑정호가 보인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출렁다리를 건너자마자 큰길로 나서면 대명산 오르는 들머리다. 소풍길 2코스 '대명산 일출길'이 시작된다. 길은 오르락내리락하며 심심하지 않다. 나무가 우거져 조망은 별로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뒤에 일출전망대에 섰다. 호수가 훤히 보였다. 바람이 불어 뜨거워진 몸을 식혀주었다.

대명산 날머리는 딸기향농촌테마공원이다. 사계절 놀이터와 딸기테마관과 힐링생태체험관이 있다. 여름에만 여는 물놀이장에서 어린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계백장군유적지

수변생태공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계백장군유적지가 있다. 계백 장군의 넋이 서려 있는 곳이다. 계백 장군 묘와 그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 백제시대 군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백제군사박물관이 있다.

평일이어서인지 구경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벌초하는 사람들만 바쁘게 움직였다. 충혼공원에 오르면 계백 장군 동상이 있다. 탑정호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말을 타고 큰 칼로 호수를 가리키고 있다.
 
충장사   계백 장군 영정을 모셨다.
▲ 충장사  계백 장군 영정을 모셨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동상에서 내려오면 충장사가 있고, 충장사 오른쪽에 계백 장군 묘가 있다. 옛날부터 이곳에 큰 무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황산벌 싸움에서 죽은 계백 장군과 그의 부하들이 함께 묻혀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곳이 수락(首落)산 정상이다. 계백 장군의 머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덤 일대를 가장(假葬)골이라 부른다. 황산벌 싸움이 끝난 뒤 백제 유민들이 시신을 거두어 가매장했다고 한다. 계백 장군 위패를 모신 충곡(忠谷)서원이 수락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400m 떨어진 곳에 있다. 충곡서원은 1680년에 세워졌다.

또한, <선조실록> 146권에 "前代忠臣, 如新羅之金庾信·金陽, 百濟之成忠·階伯, 高麗之姜邯賛·鄭夢周之墓, 亦似當封塡, 禁其樵牧(전대의 충신으로서 신라의 김유신·김양, 백제의 성충·계백, 고려의 강감찬·정몽주의 무덤도 또한 봉분을 만들고 나무하고 소 먹이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라고 기록하여 계백 장군 묘가 실재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 선생 등이 1966년에 이 무덤을 계백 장군 묘로 단정했다. 계백 장군이 죽은 지 1,30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묘로 밝혀진 셈이다. 1976년에 주민들이 묘역을 정비하며 '전백제계백장군지묘(傳百濟階伯將軍之墓)'라는 비석을 세웠다. 1989년에는 '계백장군 유적전승지'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비석에서 '전할 전(傳)'자를 뗐다.
 
계백 장군 묘   무덤은 수수하다.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 계백 장군 묘  무덤은 수수하다.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큰 봉분이 있다. 무덤은 수수하다.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군더더기가 없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은 백제의 마지막 충신답다. 처자식 목을 베고 싸움터에 나간 계백 장군의 비장함이 푸른 잔디와 소나무에서 묻어난다.

집에 오는 길에 충곡서원에 들렀다. 계백 장군과 사육신 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대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담벼락에 기대어 안을 들여다보니 안쪽 대문 양쪽에 배롱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돈암서원 배롱나무꽃   충곡서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돈암서원에 들러 배롱나무꽃 사진을 찍었다.
▲ 돈암서원 배롱나무꽃  충곡서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돈암서원에 들러 배롱나무꽃 사진을 찍었다.
ⓒ 정명조

관련사진보기


논산에는 서원과 향교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10개의 서원과 노성향교 등 3개의 향교가 있다. 배롱나무가 논산에 많은 까닭이기도 하다. 한여름에 논산에 가면 붉은 배롱나무꽃이 사람들을 반긴다. 충성을 다한 이들을 추모하는 듯 짙은 핏빛이다.

#계백장군유적지#탑정호#논산#출렁다리#배롱나무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